며칠전 공주 이인면 초봉리에 있는 유림 의병 정란사적비를 소개하고, 비문을 우리말로 올려보겠다 약속했습니다.‘유림 의병정난 사적비’란 120년 전 동학이 발발, 동학과 농민군들이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다가 우금티를 넘지 못하고 실패한 혁명으로 남은 우리 민족사의 비극에 관련된 내용입니다.당시에 동학과 농민군들을 격퇴시키는 데 관군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힘이 부치자 일본군들의 화력까지 빌려서 전쟁을 했습니다.그 과정에서 공주 유림들과 주민들이 의병을 조직해 동학교도들을 패퇴시키는데 일조를 했습니다.‘유림 의병정난 사적비’그 당시의 유림의병들이 왜 전쟁에 참여하게 됐으며, 어떤 명분과 의리로써 싸웠는지를 살펴보게 하는 내용이 적힌 비석으로 1994년에 공주 노인회와 유림의 후예들이 만들어 세운 비
모든 분야에서 불경기라고들 합니다. 우리같이 산에 사는 사람 눈에도 결코 경기가 좋거나, 넉넉해보이지는 않습니다.지난 저녁 멀리서 오신 거사님 가족과 시내서 칼국수를 먹는데 “참으로 맛있게 드셨다” 하시며 가족들이 좋아하십니다. 내 보기에도 그 정도면 맛이 좋습니다.그런데 거사님의 아드님 하는 말이 “ 님 저희 사는 고장에도 서너 테이블로 칼국수를 시작한 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맛이 있어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다보니 한 달 뒤에는 옆의 가게를 더 얻고, 다시 몇 달 뒤에는 가게를 더 늘리더니, 일 년이 안가서 뒤쪽으로 터를 사서 4층 건물을 지었습니다.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연신 줄을 서서 차례가 되도록 기다리면서도 즐거워했는데, 4층 건물을 올리고 나서 식당에 가보니 예전과는 영 맛도
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산다지만, 아직 못가본 곳도 많고 알지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원효사가 위치한 우금티고개는 120년 전 동학운동이 일어났을 때 승승장구하던 동학군과 농민군이 우금티 전투를 끝으로 패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그 우금티에서 대략 7킬로미터 부여 방면으로 가면 이인면 초봉리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큰길가에 비석이 하나 서 있고, 커다란 팽나무와 거무스레한 바위가 몇 개 있습니다.평소 지나면서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하였던 자리가 바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이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고, 팽나무 역시 400년의 수령을 지닌 보호수임을 알았습니다.오늘 검바위로 불리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그 옆으로 서 있는 비석을 확인하러 다녀왔는데,?비석은 '유림 의병
대한불교 조계동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주지 원경) 는 15일 오전 10시 생전예수재 회향법회를 봉행, 6년여 만에 마곡사 괘불탱이 법당 밖에 걸려 불교도들을 크게 기쁘게 했다.생전예수(미리 닦음)재는 윤달이 드는 해에 사람들이 불전에 공양 올려 자신이 살아생전에 지은 모든 업장을 참회하여 씻어 버리고, 사후에는 왕생극락을 발원하는 불가의 고유의식으로 마지막 날 괘불탱이 법당 밖에 걸린다.마곡사는 49일 동안 생전예수재 기도를 하고, 15일 충주 석종사 혜국스님을 초청해 회향법회를 봉행했다.한편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열 때 사용하던 대형 불화를 말하며, 마곡사석가모니불괘불탱 (麻谷寺釋迦牟尼佛掛佛幀)은 보물 제1260호로,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운암리 마곡사에 있는 조선 후기인
마곡사 오층석탑은 국가보물로 지정된 탑입니다. 이 탑 위의 상륜부에는 청동으로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풍마동’이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이 풍마동은 세계에서 오직 세 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마곡사 탑 위에 있는 것입니다. 풍마동은 여러 번의 수난을 겪었다고도 전하는데,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가져가려다가 천우신조로 그 자리를 지켰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왜놈들에 의해 두 차례 탑이 도굴되기도 하였기에 그 안에 남아있던 사리기나, 용기가 거의 없어진 상태입니다.1970년대 이후로 몇 차례 점검과 보수를 하는 동안 풍마동은 라마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 졌는데, 오늘 풍마동의 유래와 역사 그리고 만들어진 재질 등에 대한 세미나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여러 발표자들에 의해 풍마동이 고려 말에 건조
11월 11일 오전 11시 공주시 금학동 우금티 동학혁명탑에서는 천도교 중앙총부 박남수교령과 교인들 및 대전 충청지역의 천도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120주기 우금치 동학혁명군위령식이 열렸다. (사진)이날 박남수 교령은 동학운동과 우금티의 역사를 소개하고, “올해 120주기를 맞이하여 우금티를 성역화 내지는 탑을 개?보수하는 사업에 힘을 쓰고자 하였으나, 뜻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그리고 “내년에는 반드시 과업을 이루고, 충남도지사와 공주시장 등이 참석하는 위령식을 봉행하겠다”고 밝혔다.이날 참석자들은 동학이 주장한 12개조문의 폐정개혁안을 함께 낭독하고, 분향했다. 이어 이정희선도사가 나서서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로 훼손되어 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며 “앞으로는 동학과 관련된 우금
우금티 동학혁명탑에 있는 비문이 한자와 한글이 섞여 있는데다 몇 군데는 박정희대통령 이름 등이 정으로 쪼아져 훼손되어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한자를 읽는다 해도 문맥이 안 통할 수 있기도 하고, 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몰라서도 내용을 모를 수 있는 상황입니다.나는 그런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다가 지난 10월 3일 2회 우금티 영산재를 봉행하면서 작은 한글 안내판을 세워 두었습니다.오늘 우금티를 올라가 보니 안내판에 몇 개의 쪽지가 붙어있는데, 세 사람의 글은 대단히 부정적인 말로 그와 같은 비문을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어떤 글은 '역사를 모독하지 말라'라고까지 할 정도로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안내판과 사람에 대해 자기의 마음을 표출합니다.그리고
오면 가야하고, 오지 않으면 갈 일도 없는 것. 이번 추석날 우리들이 보여준 오고 감이 바로 우리들 생사거래의 한 모습입니다.적적하던 부모님들 집에 모처럼 어린 아이 소리도 들리고, 야단법석을 이루어 시끌벅적하더니 하나 둘 본래 온 곳으로 돌아가고 난 지금 적적하고 고요함만이 남습니다.그처럼 사람의 나고 죽음과, 살아있다 하는 생의 모습도 어디에선가 이 세상에 왔고, 언젠가 이 곳을 떠나야 하는 이 소식 속에 생사와, 거래의 역연한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라는 안다 하지만, 이도 역시 며칠 지나면 한바탕 꿈속에 일처럼 아련해 지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실체가 없는 무상한 모습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우리는 날마다 왔다 가고, 순간순간 태어
‘서유기’라는 책은 현장법사가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기 위하여 오공과 팔계와 오정 등을 데리고 81번의 고난을 겪고, 5천 48일간의 여정을 거치며 다녀오는 구법 소설입니다.팔계는 이름 그대로 여덟 가지 계를 지키는 의미의 사람이고, 오정은 맑음을 깨달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오공은 만물의 공함을 깨달았다 하여 오공입니다.만물의 공함을 깨달은 오공이지만, 자기 자신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는지 걸핏하면 제 뜻에 안 맞는다고 성질을 부리고, 현장법사를 두고 떠나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장법사의 구도 여행에서 없어서는 안 될 최고의 조력자입니다.그런 오공의 불같은 성질을 제어하고 다스리는 방편으로 관음보살이 펼치신 ‘긴고주’라는 진언이 있으니 오공이 머리에 모양 나게 뒤집어 쓴 금고는 평소에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던져두고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색깔로 허공에다 그린들 물이들며날센칼 수면위를 벤다고 잘라질까허세도 벗어놓고 아만도 내려놓고물같이 허공같이 살다가 돌아가세?위에 구절은 나옹스님의 시로 알려져 있는데 ‘나옹록’을 찾아봐도 원문이라 할 수 있는 한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하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글귀인데 그에 댓글로 운을 맞추어 세간에 돌아다니는 글 을 윤문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나옹스님은 려말선초의 훌륭한 스님으로 중국에까지 유학하여 불법의 진수를 전해받고 와서 고려국의 공민왕사까지 지내신 분입니다.나옹스님에게는 조금 괴퍅한 누이가 하나 있어서 스님이 머무는 절에
원효대사가 지으신 발심수행장에 ‘일인장락’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한번 참으면 즐거움이 길다’라는 의미로 우리가 사는 세상 사바세계는 능히 감인대堪忍待를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그런 세계임을 적시하는 말입니다.‘감인대’란 감내하고, 참아내고, 기다리라는 의미이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바세계를 가리켜 불교에서는 ‘감인토’라 부르고 있습니다.지금 나라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그것을 바꾸어 보겠다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겠지” 하고 묵묵히 자기 일에 종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도 아니면 오불관언 하는 자세로 절대 무관심하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를 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중에 가장 위험한 생각은 절대무관심
동화작가 정채봉님의 ‘내 가슴 속 램프’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어느 마을의 시장에 사람의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정치가를 찍었더니, 돈 다발이 찍혔습니다. 돈 많은 사장님을 찍었더니, 술과 여자가 찍혀 나왔습니다. 어떤 남자는 늑대가 찍혀 나오고어떤 여자는 여우가 찍혀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장에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흉기가 찍혀 나올 거야!” 사나이가 카메라 앞을 지나갔습니다.‘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이 찍혔을 뿐, 사나이는 단지 미역 한 꾸러미만을 들고 시장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아마 험상궂은 남자는 이제 막 첫 아이를 얻고 출산하느라 기운이 지친
옛날 우금고개 좌측 ‘뱁새울’이라는 마을에는 김서방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가 착하고 효성이 지극했답니다. 김서방은 가난하긴 했어도, 부모 모시는 일에는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그런데 왜 하필 모든 효자들에게는 부모가 큰 병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비가 큰 병이 들었습니다.생각 끝에 김서방은 깊은 산속에 약수를 떠다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날마다 약수를 떠다 드렸는데, 어느 날 밤 꿈에 한 늙은 노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로 가면 금송아지가 있으니 그것을 팔아서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려라”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김서방은 늙은 노인이 말한 대로 그곳으로 갔더니 금송아지가 있었습니다. 김서방은 금송아지를 내다팔아
백성들이 괴로움을 받는 것은 지도자의 법이 바르지 못한데 있다오.그러므로 아시요.지도자가 나쁜 행을 하면 백성들도 따라 할것이요.마치 소떼가 물을 건널때처럼.길잡이 소가 바르게 가면그 뒤를 따르는 소도 모두 따르나니그것은 길잡이 소를 따라가기 때문이요.중생들도 또한 그와 같아서대중들에게는 반드시 길잡이가 있나니만일 길잡이가 바른 법을 행하면그 뒤를 따르는 이들은 말 할 것도 없다오. -증일 아함경- 비록 짧은 경구이지만, 지도자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 잘 밝혀주고 계신 가르침입니다. 웃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말도 그에 버금가는 우리네 속담이라 볼 것이니 스스로 밝고 맑고 선한 연후에 남들에게 선하기를 권할수 있는 법.정치적인 지도자의 도덕성과 청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사월 초하룻날 불자님들이 법회 후에 불기며 향로 촛대를 닦으시는 일을 하였습니다.요령도 그때 닦아 놓으셨는데, 처음 닦고 나서 반짝거리는 모습이 마치 얼굴을 들이대도 그대로 비칠 정도로 번쩍입니다.일단 광약을 천에다 묻혀서 때를 벗겨낸 다음 신문지와 마른 수건들을 사용하여 팔이 아프게 몇 번을 닦으면 모든 일이 마무리됩니다. 결국 광약은 때를 벗기는 도구인 셈입니다.그런데 그렇게 깨끗하고 반짝이는 요령을 오늘 오전에 불공을 모시느라 사용을 하고 보니 손에 저와 같은 검정이 묻어납니다.때를 벗긴 광약을 아무리 몇 번 닦아내도 제대로 닦아내지 못한 상태로 저렇게 있다가 오래지 않은 시간이 경과되면서 그것이 다시 때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니 참으로 누가 무엇을 닦았다
옆 사진은 공주시청 좌측으로 있는 묘암사 법당 안에 마애지장보살상과 보살상이 있는 전각 뒷면을 촬영한 것입니다.이 마애지장보살상이 왜 주목을 받는가하면, 이번에 공주시에서는 시청 청사를 증축하는 과정에서 좌측에 있는 해지개마을을 사들여서 주차공간으로 활용하는 계획에 ‘묘암사’라는 절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시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묘암사까지 사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공주지역의 불자의 한사람으로서는 묘암사가 헐어져서 주차공간으로 사용되기보다 사찰로서 유지, 발전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일단 시청으로부터는 긍정적인 언질을 받은바 이제는 공주지역의 불자들이나, 뜻있는 인사들이 마음을 모아서 묘암사의 보전을 위하여 무언가 해야 할 때입니다.나는 묘암사 자체도 중요하지만, 묘암사 법당 안에 있는
'모순(矛창모 盾방패순)'의 뜻은 위의 풀이대로 창과 방패라는 의미인데 이 말은 말이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또 어떤 일이나, 상태가 서로 배치되어서 말은 가능한데, 뜻은 맞지 않는 관계에 있음을 비유한답니다.유래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나라 방패와 창을 파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상인은 자신의 물건 가운데 방패를 하나 들고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방패는 얼마나 튼튼하고 단단한지 그 어떤 창도 뚫지 못할 정도로 강합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창을 들고 자랑을 시작했습니다. "이 창은 얼마나 날카로운 지 꿰뚫지 못하는 방패가 없습니다." 라고 물건을 선전하자 구경하던 노인이 이렇게 물었습니다."당신이 파는 창과 방패는 매우 훌륭한 것이겠소.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이 드는
봄이 오는 길목 삼월의 첫주는 놀람과 슬픔과 안타까움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한지 두달이 채 안되어서 돌아간 김호철 경무관의 소식이 그것입니다.김 서장은 부임하고 나서 두 달 여 동안 자신이 가진 최선의 역량을 다했습니다. 그는 공주경찰서 경찰관들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대민봉사와 치안활동에 전념을 다해 줄 것을 부탁하고, 몸소 일선에서 직접 진두지휘도 하면서 주야를 가릴 것 없이 사건사고나 업무를 보고받았습니다.그리고 바로 그 자리에서 명쾌하게 처리해 나가는 훌륭한 지휘관이었던 것으로 세간에서는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공주경찰서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주로 경찰청에서 주요 업무를 기획하고 청장을 보좌하는 등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혁신기획단에 들어가서는 경찰관들이 근무 중
충남 공주 욱정 중추원 참의 겸 충남도 평의원 김갑순씨는 원래 성질이 온후관대하야 여러 가지 공공사업에 다대한 공헌이 많은바 금번에는 특히 일반고아와 걸인을 구제할 목적으로 당지 금정에 고아구제원을 설립하고, 지난 12월 31일부터 1월 3일까지 자기가 친히 다니면서 적신을 못 가리고 호구할 길이 없어걸식하는 사람 18명을 모집하여 방금수용중이며, 광목 2필까지 매수하여 착복까지 재봉 중 이라하며, 일변으로는 시내 각호에 통기하야 걸인이 있거든 자기 집으로 보내달라고 권유하며, 일변으로는 각 부호에게 통첩하여 고아 구제원을 영구적 기관으로 설치하기를 협의 중 이라는 바 일반 인사는 동씨의 특지를 칭찬할 뿐만 아니라, 공주시내의 걸인은 하나도 없다더라.1926년 1월 6일자 매일신보 기사입니다. 구한말 조
중국의 요(堯)임금이 천하를 다스린 지 50년이 되었을 때 과연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평복으로 거리에 나섰습니다.강구라는 넓은 길로 나오자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놀면서 요임금의 덕을 찬양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의 노래입니다."우리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편안한 것은 모두가 임금님의 지극함 덕분이라네. 느끼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임금님의 법에 따르고 있다네."임금이 사람의 본성에 따라 백성을 도리에 맞게 인도하기 때문에 백성들은 법이니, 정치니 하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자연히 임금님의 가르침에 따르게 된다는 뜻의 임금의 덕을 찬탄하는 노래입니다.이 노래를 ‘강구가무’라고도 하는데 요임금은 그저 무심히 듣고 미소 지으며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