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 고개 이야기>

옛날 우금고개 좌측 ‘뱁새울’이라는 마을에는 김서방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마음씨가 착하고 효성이 지극했답니다. 김서방은 가난하긴 했어도, 부모 모시는 일에는 모든 정성을 아끼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모든 효자들에게는 부모가 큰 병이 드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아비가 큰 병이 들었습니다.

생각 끝에 김서방은 깊은 산속에 약수를 떠다드리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날마다 약수를 떠다 드렸는데, 어느 날 밤 꿈에 한 늙은 노인이 나타나 “어디어디로 가면 금송아지가 있으니 그것을 팔아서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려라”는 말만 남긴 채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김서방은 늙은 노인이 말한 대로 그곳으로 갔더니 금송아지가 있었습니다. 김서방은 금송아지를 내다팔아 아버지의 약을 지어드리니 아비의 병도 낫고, 남은 돈으로 새집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문이 건너 마을 심술궂고 못된 박서방의 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날부터 박서방은 늙은 아비에게 고되게 일을 시켜 이내 몸져눕게 만들고는 김서방이 한 것처럼 약수를 떠다 아버지께 드린 것이 아니라, 박서방 자신이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자 김서방과 마찬가지로 신령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한 박서방은
김서방과 마찬가지로 신령님이 가르쳐준 곳에 가서 금송아지를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고, 박서방은 금송아지를 팔아서 생길 돈을 생각하며 온갖 공상에 잠겼는데, 아니 금송아지가 시냇물처럼 콸콸 똥을 싸기 시작한 것입니다.

결국 마음씨 고약한 박서방은 똥에 묻혀 죽고 말았답니다. 이리하여 그곳이 우금(牛金)고개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김서방과 박서방이 약수를 떠오던 곳을 ‘샘골’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에 있는 우금고개 전설-

원효사가 있는 공주시 금학동 우금고개에 위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는 말을 조명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듣고, 또 편지까지 주셨기에 검색을 해보고 나서 인터넷에 나오는 이야기를 옮겨보았습니다.

뱁새울은 원효사 아래로 큰 길을 건너서 야트막한 좁은 길을 넘어 오르면 나오는 동네인데,
그곳에 저와 같은 효자와 불효자가 함께 살았군요.

이야기 마지막에 나오는 샘골은 어디인지 분명치 않은데, 우금고개를 가운데 놓고 양쪽으로는 물이 좋은 샘이 많아 아마 그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고개 넘기 전에도 큰 향나무 밑에 샘이 일년 내 내 철철 넘쳐흘러서 학교를 오가다가 목이 마른 학생들의 감로수가 되었고, 고개를 넘어서 우측 산비탈 쪽으로는 ‘옻샘’이라 불리는 곳이 있으니 그물을 먹으면 옻오른 것이 치료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옻나무 주변이라서 옻의 효과를 본다는 것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또 원효유치원이 있는 봉황동에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큰 샘과 큰 샘골이 있으니, 그곳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

그렇게 우금고개와 뱁새울에 전설이 있는데 고개 말랭이에 1973년에 동학혁명군 위령탑이 건립되니 점국 각지에서 우금치 전적지를 찾아 방문해오는 분들이 매년 늘어만 가는 추세입니다.

어제도 충남도 초중등 학교 대표학생들 70여명과 인솔교사들이 와서 자연학습 관찰 공부를 다녀갔는데 80년대 학번 공주사대 출신 교사들이 절에 들러서 차를 나누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푸념하는 소리를 들을 만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배려해주는 기념관이나 볼거리가 탑 외에는 전무합니다.

다만 년 전에 화장실을 만들고, 주차장을 정비하며 작은 쉼터로 벤치를 놓아둔 것 외에는 동학혁명을 기념하는 탑에 새겨져 있는 비문조차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글자나 5.16 10월 유신 등이 훼손이 된지 오래인데다가 한자로 쓰여 있음으로 해서 한자를 모르는 학생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안내판에다가 탑 앞과 뒤에 있는 비문의 내용을 한글로 적어서 학생들이 보고 베껴 갈수 있도록 하자고 관계 요로에 의견을 내보기도 했지만, ‘우이독경’, ‘마이동풍’이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음이 아쉽습니다.

새로운 민선 시장이 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은 무언가 달라지는 모습이 있으려나 하는 작은 기대로 변화하는 공주의 모습을 바라보겠습니다.

우금고개에 올라서서 공주시내를 바라보면 멀리는 공산성까지 바라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은데, 일본군들이 기관총을 설치해 놓고 무자비한 살상을 저질렀다는 견준봉 위쪽에다가 공주시내와 이인의 너른 뜰 양쪽을 바라보며 수십 차례 공격과 방어를 거듭하던 당시 상황을 조명하게 할 수 있는 전망대와 그림판 하나 세우면 어떨까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우금고개는 공주사람에게 금송아지 같은 효자 노릇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스토리텔링의 산실이요, 보고입니다. 많은 이들의 관심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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