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산다지만, 아직 못가본 곳도 많고 알지 못하는 곳도 많습니다. 원효사가 위치한 우금티고개는 120년 전 동학운동이 일어났을 때 승승장구하던 동학군과 농민군이 우금티 전투를 끝으로 패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우금티에서 대략 7킬로미터 부여 방면으로 가면 이인면 초봉리라는 마을이 나오는데 큰길가에 비석이 하나 서 있고, 커다란 팽나무와 거무스레한 바위가 몇 개 있습니다.

평소 지나면서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하였던 자리가 바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이라는 사실을 늦게야 알았고, 팽나무 역시 400년의 수령을 지닌 보호수임을 알았습니다.

오늘 검바위로 불리는 청동기 시대 고인돌과 그 옆으로 서 있는 비석을 확인하러 다녀왔는데, 비석은 '유림 의병정난 사적비'입니다.

대체로 유림이 중심이 되어 의병을 일으켜 동학군과 농민군들이 일으킨 전쟁을 관군과 일본군과 의병들이 합세하여서 승리로 이끌었다는 내용의 비석으로, 지금부터 20년 전 1994년에 세웠으니 동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던 해로 보입니다.

지금은 동학운동을 혁명이라고 부리지만, 당시의 국가의 입장에서는 반란과도 같은 성격이었다고 보았기에 그를 토벌하는데 있어서 의병들이 만들어 졌던 역사적인 사실이 고스란히 나와 있습니다.

날이 좋은 때 가서 비석의 내용을 적어다가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 양면을 서로가 잘 알고 반면교사로 삼고자 함입니다.

절에는 '갑오동학란에 대한 세론'이라는 문서도 있는데 그것 역시 공주지역 유림들과 의병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후손과 유림 인사들 및 지역 노인들이 동학 난리에 대한 당신들의 입장을 표명하는 글이기에 그것도 시일을 택하여 올리겠습니다.

초봉리 마을회관으로 향하여 가서는 주변에 있었다던 ‘성근사’라는 절터를 수소문하였지만, 여든일곱 되신 할아버지도 모르는 일이라 하시기에 다시 한 번 가 보기로 하고 돌아왔습니다.

분명 마을 입구에 장 담그는 마을이라는 안내판에는 성근사 이야기가 있으니 어딘가에는 절터가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전국의 사지를 조사한 방대한 자료집에 공주에는 서른일곱 군데 사지가 있다 나오는데 그 서른일곱 군데에도 성근사지는 언급이 없으니 일부에서만 말하는 성근사지를 확인하게 되면 사지 하나가 추가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고인돌에 대한 안내문이 하나 있는데 내용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흐려져 있습니다. 그것을 관리하는 부서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하루 속히 새것으로 만들어 설치하였으면 하는 작은 바람을 갖습니다.

300년을 사이에 두고 공주지역 유림과 지역민도 의병을 일으켰고, 영규대사도 의병 즉 의승군을 일으켰지만, 시대적인 상황을 따라서 한쪽은 왜군을 패퇴시키고, 한쪽은 왜군을 도와 백성을 섬멸한 입장이 되어 버렸으니 역사의 아이러니한 단면을 보게 됩니다.

어차피 한동안 날은 춥고 눈이 오셔서 산에 가거나 운동하는 일은 뒤로 미루고 여러 가지 기록물들을 살펴보면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는 시간으로 삼으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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