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티 동학혁명탑에 있는 비문이 한자와 한글이 섞여 있는데다 몇 군데는 박정희대통령 이름 등이 정으로 쪼아져 훼손되어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은 한자를 읽는다 해도 문맥이 안 통할 수 있기도 하고, 요즘 학생들은 한자를 몰라서도 내용을 모를 수 있는 상황입니다.

나는 그런 모습을 안타까이 여기다가 지난 10월 3일 2회 우금티 영산재를 봉행하면서 작은 한글 안내판을 세워 두었습니다.

오늘 우금티를 올라가 보니 안내판에 몇 개의 쪽지가 붙어있는데, 세 사람의 글은 대단히 부정적인 말로 그와 같은 비문을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한 자신의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글은 '역사를 모독하지 말라'라고까지 할 정도로 비문의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한 안내판과 사람에 대해 자기의 마음을 표출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네 번째 글에는 누군가 이렇게 적어놓은 것이 보입니다. ‘글이 마음에 안 든다고 부수거나, 망가뜨리지 맙시다. 이것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부끄러운 역사이자, 문화재입니다’ 라고 적혀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요즘 '좌' 와 '우' 라는 극단적인 대립각을 세우는 미묘한 시기에 처해있다 보여집니다.

내가 비문 안내판을 세우게 된 것은 수도 없이 많은 순례객들이 다녀가는 가운데 특히나 어린 학생들의 답사도 적지 않기에 그저 단순히 비문의 내용을 모르고 지나는 것보다 읽어보고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이고, 비문에 나오는 박정희 혹은 시월 유신 5.16 등 이런 데 대한 향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건만,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사람이 되는 현실입니다.

나는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누군가 글자를 훼손한 사람은 그 글자가 안보이게 하는 것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게 했다 생각할지 몰라도 반대로 생각하면 그 이름을 지워버렸기에 오히려 더 그 글자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차라리 그냥 놓아두면 생각 없이 읽고 넘어갈 일을 흔적을 알아보기 어렵게 뭉개버린 모습 속에서 갖가지 상상이 뒤따르게 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누군가 또 나서서 안내판을 훼손한다 해도 나는 다시 세워두고 오는 사람들에게 반면교사로 삼을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좋은 역사도 우리의 역사요,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입니다. 아버지가 나쁜 일을 해서 세상의 지탄을 받는다고 자식이 아버지를 외면하거나, 바꾸지 않는 것처럼 다만 ‘그와 같은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구나’ 하고 그를 반면교사로 삼을 일이 있으면 삼아서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며,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만 않으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여겨집니다.

한때 우국충정지사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자신의 분을 참지 못하고 윤봉길 의사의 사당에
현판을 내려서 없앤 적이 있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친일파 글씨라 하는 것이 그 사람의 답변이었습니다. 이처럼 서로 생각이 다르다 해서 우가 아니면 좌요, 좌가 아니면 우, 혹은 진보 아니면 보수라는 등식의 극단적인 견해와 방식을 벗어나야만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닌 중도의 정견을 생활화 할 수 있습니다.

있는 그대로 보고 자기의 편견 내지는 자기의 주관을 배제한 채 양변을 여읜 통찰의 관점에서
팔정도로 정견하고, 그 뒤를 이어서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에 이르게 되어야 사물의 본질에 다가설 수 있음을 생각할 일입니다.

이 같은 통찰 내지는 중도의 관점이 상실될 때 자기의 생각과 다르면 무조건 좌다 우다 몰아 부쳐 결국은 어리석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니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한 이러한 좌우 논쟁은 지양되어야만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안내판에 남겨놓은 몇 분의 의견 때문이라기보다 우리 국가나 사회 그리고 개인 간에
보편타당한 가치관이 상실되어 감에 따라 파생될 수 밖에 없는 인간성 상실의 모습을 한번 이야기해보는 것입니다.

무언가의 흔적을 마음에서 지우려 하면 그 흔적은 마음속에 더 선명하게 살아나지만, 그 흔적을 지워 없애겠다는 생각조차 안하면 비로소 흔적은 자취를 감추게 되는 법이니 이것이 불가에서 말하는 방하착 즉 놓아두라, 내려놓으라 하는 방식입니다.

마음에도 대립된 각을 내려놓을 때 진정한 안심과 평화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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