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정채봉님의 ‘내 가슴 속 램프’ 중에 나오는 글입니다.

어느 마을의 시장에 사람의 마음을 찍는 사진기가 있었습니다.
어느 유명한 정치가를 찍었더니,
돈 다발이 찍혔습니다.

돈 많은 사장님을 찍었더니,
술과 여자가 찍혀 나왔습니다.

어떤 남자는 늑대가 찍혀 나오고
어떤 여자는 여우가 찍혀 나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시장에
얼굴이 험상궂게 생긴 사나이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무시무시한 흉기가 찍혀 나올 거야!”

사나이가 카메라 앞을 지나갔습니다.
‘방긋 웃는 아이의 얼굴’이 찍혔을 뿐,
사나이는 단지 미역 한 꾸러미만을 들고
시장을 벗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마 험상궂은 남자는 이제 막 첫 아이를 얻고 출산하느라 기운이 지친 부인을 위하여 미역을 사가지고 아기 얼굴을 생각하며 행복한 발걸음을 떼었나 봅니다.

‘마음에 그리는 것이 현실로 나타난다’하는 말을 한자어로 말하면 '일체유심조'입니다. 마음을 찍는 카메라 앞을 지나가면서 텅 빈 마음 자체 하나만으로 행복만이 가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어린 아가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별반 다름이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순수한 마음에다가 옳으니 그르니 좋으니 낮으니 내 것과 네 것, 착하니 악하니 하는 분별 의식을 일으키는 순간 이미 절반의 부정적 에너지가 힘을 쓰기 시작하여 행복한 낙원을 앗아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을 찍는 사진기 앞을 보무도 당당하게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무엇에도 걸림 없는 사람이라야 가능 합니다.

그것을 가리켜 원효대사는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 라고 하셨으니 일체에 걸림 없는 자리 즉 거리낌이 없는 자리가 곧 일체 생사를 벗어난 자리라는 역설적인 말씀입니다.

언제,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찍어도 부끄러움 없는 사진이 나오도록 할 수 있으면 그는 걸어오는 앞모습이나, 걸어가는 뒷모습이나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님이 지은 육바라밀 시입니다.

님에게는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布施)를 배웠노라

님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持戒)를 배웠노라

님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천하에 많은 사람 가운데
오직 님만을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精進)을 배웠노라

자나 깨나 쉴 새 없이 님을 그리워하고
님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禪定)을 배웠노라

내가 님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님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에
거기서 나는 반야(智慧)를 배웠노라

이제 알았노라
님은
이 몸에게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愛人)의 몸을 나툰
부처님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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