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말. 산 말랭이 해의 그림자가 짧아졌다. 시간은 세월의 옷을 입고 흐르고 있고, 분홍 상사화는 낮은 담장 밑에 무리를 지어 얼굴 도장을 찍는다.‘잎과 꽃이 함께 만날 수 없다’하여 이름 붙여진 꽃 ‘상사화’는 유행가 가사와 참으로 닮았다. 신명이 좋은 후배가 상사화 꽃잎에 앉아 흔들며 ‘안동역에서’를 노래한다.“안 오는 건지, 못 오는 건지, 대답 없는 사람아!” 유행가 가사가 상사화, 초등교사인 후배의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지니 꽃의 이름이 더욱 애절해 보인다.막바지 여름을 보내는 잡초들의 몸부림일까? 잡초들의 씨알이 굵직굵직한
8月 이 아찔한 더위 속에서도추억은 아련하여두 팔로 감싸 내 가슴이 기억한 그리움을 가둬 두고 싶다. 한 올 한 올 얽힌 모시의가느다란 날실과 씨실의 촘촘한 만남.그 귀한 만남, 고귀한 인연그 어떤 것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 이 가슴속에 느껴지는 느낌 역시도.그 기억이그 추억이 있기에이 찌는 듯한 여름을 용서할 수 있고이 엄청난 태양의 열기를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난 그 시절 8月안에 있었고지금도 난 그 옛날 8月안에 있다. 나의 선친은 3형제 중 막내였고,나는 그 막내의 막내딸이었다. 큰아버지께서는 서울 수유리에 사셨고둘째
7월 마지막 태양의 열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찌르르~ 찌 찌 찌르르~~”영근 소리로 목이 터져라 큰 느티나무가 통 울림이 된 듯 진초록 소리로 매미는 울어댑니다. 햇빛 쏟는 7월의 이 뜨거운 하늘이 허락한 이 여름을 위한 열정적인 노래로 말입니다.이 노래로 저는 타임캡슐을 타고 어제로 돌아갑니다. 그 옛날 왜 그리 수박도 크지 않았던 지요. 좋은 것만 내다 팔고 그중 작고 삐뚤어지고, 볼품없는 수박만이 가족들의 유일한 여름날 간식거리였습니다.수박 꼭지 부분만 잘라(도토리 모자처럼) 수저로 퍼먹다가 뚜껑을 덮어 놓곤 했었지요. 지
나의 본가 공주시 교동 180번지 (향교 앞)이렇게 장마가 깊어지면머릿속까지 온통 습으로 눅눅해지는 느낌이다.이럴 때 나는 대문 앞 옹달샘의 기억으로사이다만큼의 시원함으로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오며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아련함의 깊고 맑은 시절로...옹달샘의 깊이는 4~5m 남짓한 사각모양의 샴(샘)그 근방 20여 가구가 넘게 식수를 함께 사용했던 요술램프 같은 옹달샘가뭄 속에서도 아우성치지 않았고집집마다 김장을 담던 11~12월 초 그 많은 배추를 다 씻을 수 있었던 옹달샘그리고 일 년 1번
양력 6월 말, 음력 5월 13일 쯤 능소화가 곱게 핀 이 계절에 나는 갑사를 향했다.‘갑사 마방길’은 새로운 도로명으로, 계룡 초등학교 삼거리 쪽을 향한 도로명이다. 난 이 이름이 재미있어 항상 그곳을 지날 때면 사소한 풍경을 읽는, 그것도 연출과 각색까지도 해보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 버렸다.사극을 통해 알게 된 마방길은 옛날사람들이 말을 갈아타거나, 빌려주는 곳이다. 그것도 관아에 직급이 있는 벼슬아치들만이 가능한 그런 길이기에 나는 항상 그곳에서 스스로 시나리오를 썼다.나의 꿀렁 꿀렁거리는 차 안에서 잠시 아주 짧은 생각들이
하얀 방울처럼 모두모아 받치는 6월의 하지 감자꽃, 붉디붉은 앵두의 빛은 6월만이 허락한 붉은 빛, 반송 송화대 끝의 보라색 꽃은 6월만의 생명의 꽃이다.눈을 떠 세상을 볼 수 있을 나이가 되서야 보게 된 그 무엇. 공주끝자락 소학길에서 유성 현충원까지 10여분 정도의 거리.나는 그곳을 지날 때면 가끔 차에서 라디오도 끄고 성호를 그으며 잠깐, 아주잠깐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어느 죽음인들 설움의 공기를 매우지 않으랴만 더더욱 젊은 순국선열들의 죽음은, 하지 감자 꽃처럼, 붉은 앵두처럼, 그리고 송화대 위에 핀 보라색 꽃 방울처럼,
지나간 25년의 기억을 불러본다. 지난겨울, 그 지지난 계절부터부터의 기억이 보일 때마다 난 연출자의 완벽한 각색에 대한 난 감동 또 감동이었다.단지 ‘감동’이라고만 말하는 것이 소극적인 표현 같다. 이 옷, 이 가방, 이 신발, 그리고 내 틀에서 절어 버린 기억들.사춘기 여고시절 거친 홍역처럼 느껴졌던 나의 지난날의 기억을 살짝 들춰본다. 교동에서 지금의 금학동 공주여중고까지 6년을 걸어 다니면서 우등상은 못 탔어도, 6년 개근상에 지각 한번 없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봄은 참 기특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내 영육의 건강은 이 시절
이틀 동안 내린 비로 멀리 보이던 초록은 서성이는 나를 잡아당기듯 “어디론가 떠나자”고 한다. 그래서 딸아이와 아무 준비 없이 차에 올랐다. 비록 허름하지만, 나의 애마는 나를 태워 한없이 평온한 곳으로 이끌어주었다. 거기서 만난 초록파도 같은 숲은 참으로 근사했다.집 앞마당에 삐죽 올라온 붓꽃의 꽃대, 나비도 함부로 앉지 못한다는 불두화, 그리고 붓다의 자애한 미소로 모든 것을 주어도 한없어 보이는 향기를 품은 해당화의 유혹도 우리를 설레게 했다.나는 딸과 함께 “콩밭 메는 아낙네야~”를 흥얼거리며 그렇게 청양의 장곡사로 향했다.
살아있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입니다. 겨우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던 아주 조그만 무늬 잎 비비추를 혹여 옮겨 심었던 탓에 추운 겨울을 견디지 못했나 싶어 호미로 흙을 스윽 민 순간 해바라기씨 만한 하얀 촉 같은 싹이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미련하고 성질이 급한 이 참을성 없는 주인은 비비추가 다른 식물보다 늦게 싹이 올라온다는 것을 또 깜빡하고는 겨우내 준비해온 싹의 끝을 무참하게 뭉개 버렸던 거죠.비비추에게 너무 미안해 조심스레 호미를 놓고 손가락으로 고운 흙을 뿌려 줍니다. 상처를 주고 이 또한 무슨 짓인가 싶으면서도 그것이
봄바람이 봄을 시샘한다. 움츠려든 어깨에 노란 나비가 앉을 듯 살랑대는 봄바람에 설렘으로 가슴이 떨리던 날은 끝내 며칠 가지 못하고 비가 내리더니 또 비가 오려는지 숨소리는 무겁기만 한 것이 분위기가 영 을씨년스럽다.이미 59년을 검증받은 몸인지라 느낌이 그렇게 말한다. 꽃피는 봄이 이를 시샘하는 추위를 견디어 내야 하듯 나도 봄바람의 가슴앓이를 감내해야만 한다. 그래도 좋다. 봄이 아닌가.나는 봄바람과의 동행을 허락한 봄바람에게 고맙다고 답례하듯 빙빙 돌며 춤을 춘다. 내 멋대로의 움직임, 바람을 따라 팔랑개비처럼 또 돌아본다.오
“고물 사요, 고물…”봄이 오신 것 같아 뜰을 정리하는 나의 등 뒤로 봄비보다 아름다운 봄소식을 전하는 고물아저씨. 그 고물 아저씨가 겨우내 고요했던 동네 마을의 사람들의 겨울잠을 깨운다.봄이 시작되면, 언제나 정확하게 들려오는 “고물사요, 고물”이라는 소리. 작은 고철은 물론, 찌그러진 양재기 냄비도, 그리고 소주병만으로도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이 된다.그가 전하는 싱그러운 봄소식에 나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월동을 한 박하의 뿌리작업을 하느라 손을 분주하게 놀린다.뒤엉킨 박하의 뿌리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치 어린 시절
헤어진 님, 그리워 울던 그 어느 날처럼 오랜 가뭄의 침묵은 끝내 설움을 토해냅니다.뜨겁고, 짜고, 하염없이 흐르던 그 알 수 없는 눈물. 야속함일까요, 미련 때문일까요, 아니면 아직도 모르겠는 서툰 사랑의 자책일까요.봄비로 모처럼 건조한 가슴이 촉촉이 젖어듭니다. 겨울 가뭄이라 아우성 대던 모든 사람의 눈과 귀는 그 어느 선물보다 귀한 선물로 다가온 이 빗소리 (양철 지붕 위에 내리는 빗소리 연상해보기 뚜-뚝-뚜-뚝. 이 소리를 치유에서는 ‘백음’이라 하며, ‘소음’의 반대말이기도 합니다. ‘백음’은 인간 뇌를 오래도록 안정시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