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의 동작치유 스물한번째 이야기
나의 본가 공주시 교동 180번지 (향교 앞)
이렇게 장마가 깊어지면
머릿속까지 온통 습으로 눅눅해지는 느낌이다.
이럴 때 나는 대문 앞 옹달샘의 기억으로
사이다만큼의 시원함으로 마음의 평온함을 가져오며
깊은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 듯,
아련함의 깊고 맑은 시절로...
옹달샘의 깊이는 4~5m 남짓한 사각모양의 샴(샘)
그 근방 20여 가구가 넘게 식수를 함께 사용했던 요술램프 같은 옹달샘
가뭄 속에서도 아우성치지 않았고
집집마다 김장을 담던 11~12월 초 그 많은 배추를 다 씻을 수 있었던 옹달샘
그리고 일 년 1번은 아주 깨끗하게 짚으로 된 수세미로 우물 속을 청소해 멍석으로 덮고,
정월 초하룻날 산제당에 제를 지내고 난 뒤
멍석을 벗기는 의식이 있어서인지
20여 가구가 넘는 이웃들의 관계는 가족처럼 옹달샘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지원이네,
복남이네,
지씨네,
숙자언니네,
나의 친구, 유선생댁, 갑순네, 은주네,
아 수경이 오빠네집에 세 살던 근태네.
참 맘보아저씨네도 있었다.
이름만으로도 칠성사이다보다 시원하고 칼큼한 추억
지금은 없다. 그 옹달샘이
세월은 묻으려 하지 않았을 텐데
세상살이가 문화가 뭍은 건지도 알 수 없으나
많이 보고 싶다 우리 집 앞 옹달샘이
우리 어머니 얼굴만큼...
물을 긷기 위해
긴 타래박(물을 떠올리는 도구)을 쓰고
아무렇게나 바닥에 놓으면
어느새 숙자언니 어머니께서는 그걸 보시고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친다.
마치 옹달샘의 주인인양...
그도 그랬을 거였다.
바닥에 나뒹굴어진 타리박이 다시 우물 속으로 들어가면 위생상 안좋기 때문에...
참 지금도 미스터리한 것은 여름철 그런 우물로
우리 이웃들은 한 번도 탈이 없이 지냈고,
겨울엔 한 번도 우물이 언적이 없었다.
아마도 복 받은 교동 180번 근방이 아니었나싶다.
옹달샘을 목숨처럼 지켜주셨던 숙자언니 어머님도 참 보고 싶다.
그렇게 소중한 옹달샘의 생각은 나의 추억의 집을 만들고
그 만든 집은 몸이 기억하고 있는 나의 가슴의 문이 되었다.
열면 볼 수 있는...
오늘 나는 아주 짧은 사다리로 놓아 옹달샘 속을 지푸라기 수세미로 우물 속을 청소하듯
나의 가슴속
하나하나를 씻고 내려가 본다.
맑은 옹달샘 물을 보기위해...
나는 이것을 동작치유의 21번째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해보기 : 아주 조심스레 한발 한발 딛으며
옹달샘 속 사다리를 내려가는 느낌으로
발가락 쪽으로 힘을 주어 의식하며 걸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