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사요, 고물…”

봄이 오신 것 같아 뜰을 정리하는 나의 등 뒤로 봄비보다 아름다운 봄소식을 전하는 고물아저씨. 그 고물 아저씨가 겨우내 고요했던 동네 마을의 사람들의 겨울잠을 깨운다.

봄이 시작되면, 언제나 정확하게 들려오는 “고물사요, 고물”이라는 소리. 작은 고철은 물론, 찌그러진 양재기 냄비도, 그리고 소주병만으로도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이 된다.

그가 전하는 싱그러운 봄소식에 나도 겨울잠에서 깨어나 월동을 한 박하의 뿌리작업을 하느라 손을 분주하게 놀린다.

뒤엉킨 박하의 뿌리들을 정리하고 나니 마치 어린 시절 명절에 한 두 번 할 수 있었던 목욕탕에서의 목욕을 마쳤을 때의 개운함이 슬그머니 밀려온다.

나는 왜 그리도 뿌리에 목을 맨 사람처럼 한없이 파헤쳤을까? 오랜 세월 뒤엉킨 생각이 그러 했을까? 뽑으려 했던 것이 혹시 감추어진 나의 상처는 아니었을까?

아무래도 좋다. 흰색을 띈 새 뿌리는 잡아당기는 대로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나오지만, 묵은 뿌리는 좀처럼 나의 속을 애태우며 끊어지기만 할 뿐 뽑아내기가 무척 힘들다.

새것과 묵은 것의 차이다. 오래도록 쌓인 잘못된 생각과 습관은 오늘 나를 이 자리에 묶어놓았다.

나이가 조금 들어 들여다본 땅속의 뿌리는 나에게 오늘도 어김없이 말을 한다. “지금까지 온 길이 내길 이었고, 이 길이 전부였다”고.

묵은 뿌리를 뽑으려 당기다가 뿌리가 끊어지는 탓에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누운 김에 하늘 한번 본다. 참 좋다. 웃겨서도 좋다. 간밤의 비로 축축해진 엉덩이의 느낌도 좋다. 지금 모습 그대로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것을 나는 동작치료의 열네 번 째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해보기 : 불편한 자리여도 눈을 떠 3월의 하늘을 두 팔 벌려 안아본다.

그리고 호흡을 들어 마시며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조금씩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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