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자의 동작치유 스물 세 번 째 이야기

8月 이 아찔한 더위 속에서도

추억은 아련하여

두 팔로 감싸 내 가슴이 기억한 그리움을 가둬 두고 싶다.

 

한 올 한 올 얽힌 모시의

가느다란 날실과 씨실의 촘촘한 만남.

그 귀한 만남, 고귀한 인연

그 어떤 것도 내어주고 싶지 않다.

 

이 가슴속에 느껴지는 느낌 역시도.

그 기억이

그 추억이 있기에

이 찌는 듯한 여름을 용서할 수 있고

이 엄청난 태양의 열기를 위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난 그 시절 8月안에 있었고

지금도 난 그 옛날 8月안에 있다.

 

나의 선친은 3형제 중 막내였고,

나는 그 막내의 막내딸이었다.

 

큰아버지께서는 서울 수유리에 사셨고

둘째 작은아버지께서는 공주에서 살고 계셨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큰아버지의 역할과 무게는 막중한 무게였다.

큰아버지가 내려오시면 두 동생들은

공산성 앞 산성동(지금의 명도철물점 자리)에 위치한 광주고속버스터미널로 가셨다.

 

그 뜨거운 8월중이었음에도

제일 큰 형님을 마중을 위해

낡은 자전거를 끌고 나가 기다리던 나의 아버지

그곳에서 교동까지 다시 큰아버지 내외분을 모시고 가셨다가

자전거를 끌고 우리 집에까지 걸어오셨던 것이다.

 

그렇게 만난 네 분을 중심으로 우리 가족들은

다음날 모두 다함께 마곡사로 가족소풍을 갔다.

 

지금처럼 자가용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에어컨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뜨끈뜨끈한 버스를 타고

대가족이 움직였었다.

 

거기에다 찬합에 먹을거리, 수박, 삶은 계란, 옥수수 등

생각만 해도 귀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큰아버지 내외분에게는 자손이 없었다.

 

둘째아버지는 딸 넷, 아들 셋

우리 집은 딸 넷, 아들 하나.

누구도 빠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어명처럼 무조건이었다.

 

큰아버지를 중심으로 3형제가 둘러 있었고

그 옆에는 아들들 4명

그리고 조금 떨어져서 둘째 집 큰 언니들

난 그중 막내 중 막내라서 큰아버지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릴만한 거리 만큼에 있었다.

 

그곳에서의 내 놀이는 그냥 물을 손으로 아무생각 없이 빠져나가는 것을 보는 것이었고,

발은 물속에 그냥 그대로였다.

밥, 수박, 옥수수, 계란을 먹으라는 소리만을 간절히 기다렸었던 것 같다.

 

그때 그 소리를 간절하게 기다리는 그 순간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소리가 있었다.

나처럼 볼멘 듯한 매미의 울음

아마도 나의 그때 심정처럼 말이다.

 

찌륵- 찌륵- 찌- 르르- 찌- 르륵-

그 여러 종류의 매미 울음소리 중 가장 절정이었던 8월 말복 전후해서 울어대는 매미소리는 파장과 울림 또한 특별했다.

 

어디를 가든 그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는 그 이유는

내 영혼의 소리(soul sound)가

그날 그때의 기억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들 중 난 꼴지의 위치로

숨죽이며 꼭꼭 숨어있었던 찌그렁이였다.

 

우등상은 하나도 없고 개근상만 많았던 나.

그래도 난 행복하고 너무 많은 것을 얻게 된 것에 감사드린다.

 

그날 그 추억이 있었기에

찌그렁이 막내딸의 역할을 잘 감당했기에

볼멘 8月의 뜨거운 저 매미울음처럼

난 이 열정적인 8月을 견딜 수 있다.

 

난 오늘도 찌그렁이와 볼멘 8月의 매미가

하나가 될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이것을 동작치유의 23번째 이야기라고 하고 싶다.

 

해보기 :

발을 물장구치는 것을 연상하며 물위를 걷는다는 생각으로 해가 질 무렵 맨발로 걸어본다.

천천히 느끼며 아주 천천히

손가락은 다섯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느낌으로

힘을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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