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갖는 느낌이지만 겨울과 여름을 이기고 이 땅을 찾아오는 봄과 가을이 기적 같습니다.

춥고 모진 겨울을 뚫고 오는 봄. 무덥고 지겨운 여름을 통과해 오는 가을. 봄과 가을이 오던 아, 올해도 이렇게 겨울과 여름을 잘 넘겼구나, 그런 감회에 젖습니다. 그래서 어디라 없이 감사드리고 싶은 심정이 되곤 합니다.

지구온난화의 결과라 그러는지 점점 겨울과 여름이 모질고 힘들게 지나갑니다. 올해 여름은 기나긴 가뭄에다 찜통더위에다가 늦장마와 태풍으로 어떻게 여름의 강물을 건넜는지 모를 정도로 더욱 힘겹게 보냈습니다.

그래도 계절의 변화만은 어쩔 수 없는 듯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적정 수준 내려가니 우선 숨 쉬는 일부터 조금은 편안해서 좋습니다.

이렇게 가을 기운이 나기 시작할 때마다 슬그머니 떠오르는 시 한편이 있습니다. 그것은 「목마와 숙녀」란 멋진 시로 유명한 박인환 시인의 「세월이 가면」이란 시입니다.

애당초 이 시는 노래로 작곡하기 위해서 지어진 시입니다. 1956년 이른 봄 저녁, 서울 명동의 뒷골목, 경상도집이란 허름한 술집. 그 술집에 몇 사람의 문화예술인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는 자리입니다.

참석자는 박인환, 이진섭, 송지영, 영화배우 나애심 씨 등. 그들은 마른 명태를 안주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썰렁한 서울 거리. 네 사람은 술잔을 기울이다가 가수이기도 했던 나애심 씨에게 노래를 부르라 청했지만, 나애심 씨는 쉽게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자 박인환 시인이 즉석에서 노래 가사를 썼다고 합니다. 이 가사를 또한 동석했던 이진섭 씨가 작곡을 하여 나애심 씨에게 보여주었더니 나애심 씨가 흥얼흥얼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노래 「세월이 가면」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이 흘러간 뒤, 나애심 씨와 송지영 씨가 돌아가고 성악가 임만섭 씨와 소설가 이봉구 씨가 동석하여 술자리가 이어졌는데 노래 이야기를 듣고 임만섭 씨가 우렁찬 테너의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는데 지나가던 행인들이 모두 술집 앞으로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즉석에서 신곡발표회가 열렸다고 합니다. 이로서 이 노래는 ‘명동엘레지’로 불려 지면서 명동지역에 급속하게 퍼졌다고 합니다. 참으로 꿈결처럼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시를 쓰기 전날 박인환은 10년 전에 돌아간 첫사랑 애인을 찾아 망우리 공동묘지를 다녀온 일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노래 속에는 알게 모르게 옛 애인에 대한 시인의 절절한 애모의 정이 스며들어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합니다. 뒷날,

이 노래는 박인희란 매우 맑고 고운 목소리를 지닌 가수에 의해 노래 불러져 오늘날까지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노래가 되었습니다.

헌데, 헌데 말입니다. 박인환 시인은 이 노래를 작사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서 과음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1956년 3월 29일 오후 9시, 자택. 미남형으로 후리후리 키가 크고 잘 생겨서 영화배우를 하라는 말을 들었던 시인.

문인들과도 친했지만, 가수나 영화배우 같은 연예인들과 더욱 친했던 시인.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 언제나 깔끔한 차림으로 멋을 낼 줄 알았던 멋쟁이 시인.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이 31세의 나이라니 너무나 아까운 나입니다. 그야말로 요절시인입니다.

시인이 급하게 돌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달려와 시인의 관에 시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술인 조니 워커를 부어주고, 또 말보로 담배를 놓아주면서 애도했다고 합니다.

가난하기는 했지만 아름다운 날들의 풍속도입니다. 유족으로는 1948년에 결혼한 한 살 터울의 부인 이정숙(李丁淑) 여사와 2남 1녀.

박인환(朴寅煥, 1926∼1956) 시인은 강원도 인제 출생으로 11세 때 서울로 이주, 관립 평양 의학전문학교에서 공부했으며 광복 후 서울의 낙원동에서 ‘마리서사’란 서점을 운영했으며 시인으로 데뷔한 것은 1946년, <국제신보>에 「거리」란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입니다.

1948년에 김경린, 양병직, 김수영, 임호권, 김병욱 씨 등과 동인지 <신시론>을 발간했고, 다시 1949년 김경린, 김수영, 임호권, 양병식 등과 5인 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발간했으며 경향신문사, 대한해운공사에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1955년엔 화물선 남해호의 사무장 신분으로 미국을 여행, 귀국 후 <조선일보>에 「19일간의 아메리카」란 글을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박인환은 1950년대 우리나라 시단에서 모더니즘 시인으로 선두주자였던 시인입니다. 모더니즘이란 늘 시를 새롭게 쓰려고 노력하는 시인들을 말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새로운 문화나 풍물에 대해서 늘 관심이 많았고 시의 표현에 대한 실험의식이 강했던 시인들입니다.

오늘날 남겨진 시인의 사진을 보면 미국여행에서 돌아와 홈스펀 외투를 걸치고 구상 시인과 같은 동료들과 환하게 웃는 얼굴이 매우 멋스럽고 정답고 싱싱한 인상입니다. 그렇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쓰럽게 여겨집니다.

시인은 생전에 단 한권의 시집인 『박인환 선시집』을 발간했는데 사후에 여러 차례 시인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해 시집이 발간되어 나왔고 시인의 고향인 강원도 인제에는 「세월이 가면」을 새긴 시비와 ‘박인환문학관’이 세워지고 ‘박인환의 거리’가 생기고 ‘박인환문학상’이 제정·운영되고 있습니다. 이만하면 일찍 돌아간 시인을 위한 추모 사업이 충분하지 않겠나 싶습니다.

아래에 옮기는 시, 「세월이 가면」은 별로 어려운 내용이 없어 읽으면 읽는 대로 이해되는 시입니다. 전체가 과거를 회고하는 시입니다.

지나간 사랑, 그 사랑을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잔잔하게 흐르는 시입니다. 매우 애상적인 분위기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애상도 산뜻하고 경쾌하게 처리하니 결코 무겁지 않고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는 한국에 나온 최초의 샹송풍의 노래인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의 가을을 가을답게 만들어주고 가을을 한껏 향기롭게 해주는 노래입니다. 가을을 대표하는 노래라 할 것입니다.

올해도 가을이 다가오는 길목, 이런 노래라도 흥얼거릴 수 있는 사람이 진정 멋있는 사람이고 인생을 여유롭게 사는 사람입니다. 누군들 지나간 과거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돌아보아 아슴아슴 마음 아픈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시를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슬픔과 사랑을 우리 것으로 바꾸어 가지면서 우리들 자신의 지향 없는 사랑과 슬픔까지도 위로받게 됩니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의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과거는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의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어
내 서늘한 가슴에 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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