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 시인의 죽은 시인들 나라-10

박두진 시인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는 대로 청록파 삼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청록파’란 1946년 민족해방 공간에 혜성같이 출간된 삼인시집인 『청록집』에 수록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시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세 분 시인은 비슷한 시기에 시인이 되어 오랜 시간을 한국시단의 어른으로 살다가 간 분들입니다. 문단의 지표가 되었으며 젊은 시인의 스승이 되었던 분들입니다.

한 집안이나 사회나 단체에 거기에 걸맞은 어른이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우리는 많이 허전하고 섭섭한 세상을 사는 형편입니다.

젊은 시절 세분 시인이 모여 공동시집을 내기로 하고 그 제목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설왕설래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정된 것이 ‘청록집’인데 이 ‘청록집’이란 시집 이름에는 이들 세 시인들의 <문장>지 추천자이기도 했던 정지용 시인의 시집 『백록담』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스승격인 정지용 시인의 시집이 『백록담』이라면 그 제자들의 시집 이름이 ‘청록집’으로 정해진 건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을 것입니다.

시집을 만들어낸 출판사는 을유출판사. 그런데 이 출판사에서 그 당시 세 시인 가운데 한 분인 박두진 시인이 근무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 그랬을까요?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보면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의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집을 읽다보면 왜 순서를 그렇게 잡았나 하는 것을 어렴풋 짐작하게 됩니다. 시의 형식으로 보아 박목월 시인의 시가 가장 간결하고 조지훈 시인이 그 중간이며 박두진 시인이 가장 복잡하므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짐작이 그것입니다.

정말 그것이 그렇다 치더라도 세 사람의 시 작품 가운데 자기의 순서를 선뜻 가장 뒷부분에 배치하는 일은 나름대로 결단과 양보와 배려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세 분 시인의 시도 충분히 좋지만, 젊은 세 시인이 만나 어우러진 맑고도 깨끗한 우정의 세계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청록집』에 수록된 박두진 시인의 시 가운데에는 아름답고도 치렁치렁한 한국말과 정서의 가락을 느낄 수 있는 시들이 많습니다. 내재율을 충분히 살린 시편들이지요.

「향현香峴」도 좋고, 「묘지송墓地頌」도 좋고, 「어서 너는 오너라」도 좋습니다. 그 뒤에 나온 시편으로는 시인의 대표작이기도 한 「해」가 있습니다만 여기서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도봉」이란 시를 골라보았습니다.

‘도봉’이라면 서울 근교에 있는 산봉우리 이름이겠습니다. 그 산 위에 올라 느꼈을 법한 정한이 매우 간결하고 단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산새’도 ‘구름’도 없는 산봉우리에서 대답 없는 메아리를 불러보는 한 젊은이를 봅니다. 그 젊은이는 식민지 시대 우리 땅의 한 젊은이입니다. 예나 이제나 하루해가 저물게 되면 산그늘은 길게 그림자를 늘이게 마련이고 해가 지고 밤이 오게 되어 있지요.

밤이 오면 더욱 적막한 세상이 펼쳐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시간대에 느끼게 되는 건 쓸쓸함입니다. 이러한 쓸쓸함 속에서도 시인은 누군가를 생각해냅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만이, 사랑만이 오직 구원입니다. 인간의 감정 가운데 그 어떤 감정보다 고귀한 감정은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위안을 줄뿐더러 희망을 주고 용기를 줍니다. 미래에 대한 밝음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인은 쓸쓸하고 어두운 밤도 잘 견뎌 낼 수 있었을 겁니다.

‘삶은 오직 갈사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움일 뿐.’ 이러한 대목을 다시금 읽어봅니다. 아, 그 시절 시인에게도 그런 절망과 슬픔이 있었구나!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는 우리들 삶과 사랑에 대한 생각이 가슴을 콱 막히도록 합니다.

여전히 쓸쓸한 삶과 괴로운 삶 속에 사는 우리들! 이런 대목에서 나 스스로 얼마나 많은 위로와 안식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힘든 생활과 처지 속에서도 나름대로 헤쳐 나갈 힘을 얻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시의 힘입니다. 이것이 시가 주는 위로와 안식입니다. 시가 주는 사랑의 손길입니다.

다른 시들도 그러하지만 박두진 시인의 시들에서는 높은 산에서 우거진 소나무 수풀이 떠오르고 물큰 송진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우우우, 외롭게 혼자서 외치며 하늘 끝으로 달려가는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솔바람 소리에는 첫눈의 향내라도 조금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나는 박두진이라는 시인은 이름조차 신비스러운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 어떤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박두진. 그 이름에서는 분명 한자의 뜻이나 글자의 발음, 그런 것들과는 무관하게 어떤 식물의 냄새가 나는 것 같습니다. 고산지대에 숨어 사는 어떤 순하고도 정결한 산짐승의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신비한 생각입니까? 그래서 나는 시인이란 누구나 그 이름에서조차 향내가 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그런 생각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인이 박두진입니다. 그리고 또 그분의 시 가운데서도 아래에 적어보는 「도봉」이 특히 그렇습니다.

깊은 밤 혼자 밝은 등불 아래 바르게 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고 나지막한 소리로 한번 읽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입술에서도 알지 못할 그 어떤 머나먼 향내가 풍기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시인이여. 당신의 이름에서 이름 모를 향내가 납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정 한 사람 이 땅의 좋은 시인이십니다. 아직도 당신의 이름에서 아무런 향내도 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시인이 아닙니다. 단연코 당신의 이름에서 향내가 나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기에 앞서 당신의 시에서 향내가 나도록 해야 합니다. 시인이여. 진정 그것이 그렇지 않습니까?

박두진(朴斗鎭, 1916~1998) 시인은 경기도 안성 출생으로 호는 혜산(兮山). 청록파 삼인 가운데 가장 장수했으며(82세) 연세대학교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뒤, 단국대학교 초빙교수와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대표시집으로는 위에 기록한 『청록집』 외에 『해』,『오도』,『고산식물』,『사도행전』,『수석열전』등 아주 많습니다.

다른 청록파 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순수한 자연과 인간에 대한 예찬과 소망을 담은 많은 시들을 썼습니다. 그러나 박두진 시인의 시를 읽는 키포인트는 역시 신앙입니다.

기독교적 신앙에 바탕을 두고 쓴 시인의 시들은 끝내 이루어내야 할 인간과 자연의 구원에 대한 뿌리 깊은 열망을 뜨겁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 밀림』,『거미와 성좌』같은 시집들은 강한 역사인식과 현실감각에 기초한 시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들 시집에는 정치현실의 부정과 비리와 사회적 부조리를 고발하는 강렬한 시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박두진 시인은 예언자적인 시인이면서 현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지닌 시인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도봉/ 박두진

산새도 날아와
우짖지 않고

구름도 떠나곤
오지 않는다

호오이 호오이 소리 높여
나는 누구도 없이 불러보나,

울림은 헛되이
뷘 골을 되돌아 올 뿐.

산그늘 길게 늘이며
붉게 해는 넘어가고,

황혼과 함께
이어 밤은 오리니.

생은 오직 갈사록 쓸쓸하고
사랑은 한갓 괴로움일 뿐.

그대 위하여 나는, 이제도 이
긴 밤과 슬픔을 갖거니와,

이 밤을 그대는, 나도 모르는
어느 마을에서 쉬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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