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덥다, 덥다 그러지만 올여름처럼 더운 여름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더운 여름철엔 자연스럽게 산이나 강이나 바다가 그립게 마련이지요.

생각해보면 이렇게 날씨가 더워진 것은 지구온난화 때문이고, 그것은 또 우리들 인간이 저질러 논 결과라 하니 아무리 더워도 자연한테 푸념할 빌미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더운 여름, 그것도 열대야가 이어지는 여름밤에 문득 떠오르는 한 편의 시는 장만영 시인의 「달·포도·잎사귀」같은 작품입니다.

제목부터가 전혀 새롭습니다. ‘달/ 포도/ 잎사귀’, 글자 수가 하나에서부터 점점 많아집니다. 예사로운 일이 아닙니다. 달이 밝은 밤에 포도나무를 보면서 쓴 시인가 봅니다.

어디 한번 작품을 들여다볼까요? 그렇군요. 시인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벌레 우는 고풍스런 뜰’입니다. 벌레가 우는 걸로 보아 가을이 왔나봅니다.

그런데 그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군요. 어조가 또 특별합니다. 그냥 ‘왔다’가 아니고 ‘왔구나’입니다. 일종의 감탄입니다. 시인은 이렇게 뜰에 달빛이 비친 것을 감탄하고 있습니다.

왜 감탄할까요? 새롭게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껏 스쳐서 보아왔지만 어느 날 보니 그 사실이 감동적이었던 것이지요. 역시 자세히 마음을 주어서 보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런 사실을 시인은 또 ‘순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순이’란 이름은 또 우리나라에 살아왔던 매우 평범한 여성의 대명사입니다.

그런 뒤로는 달에 대한 시인의 평가가 나옵니다. ‘달’은 그냥 하늘에 뜬 달이 아니라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있는 달’입니다. 의인화된 달입니다. 그런데 그 달이 ‘과일보다 향그럽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달’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요 ‘향기’는 코로 맡아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각이미지와 후각이미지가 결합된 것입니다. 고급한 이미지로, 상큼한 맛이 납니다.

시인의 상상력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뜰’에서 ‘동해바다’로까지 번져나가면서 ‘푸른/ 가을/ 밤’을 끌어냅니다. 한 단어씩 꺾어서 행 처리를 한 것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렇게 시인의 마음을 따라 가다보면 우리도 멀리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이런 것을 나는 그리움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열대야의 여름밤이니까 상상력을 발휘해서 멀리까지 가보는 것이지요.

다시 시인의 마음은 뜰로 돌아와 ‘포도’에 집중합니다.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반복이면서 병치입니다.

비슷한 내용이 겹쳐지면서 조금씩 변화·발전합니다. 이건 시인의 마음이 움직이기 때문인데, 실상 시란 커다랗게 발을 떼어놓는 걸음이 아니라 조촘조촘 발을 떼어놓는 스몰스텝 그 자체입니다.

그래야 독자가 시인의 마음을 따라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독자를 배려하는 것이요, 독자와 하나가 되는 길이요, 또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리고선 다시금 ‘순이’를 부릅니다. 여기서 또 우리는 ‘순이’가 그냥 여성대명사가 아니라, 가상된 독자란 것을 알게 됩니다. 아, 그렇구나. 이것도 하나의 유레카입니다.

독자는 저도 모르게 시인 앞에 선 ‘순이’가 되어, 아니 ‘순이의 마음’이 되어 시인의 마음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하여 독자와 시인은 한 마음이 되고 잔잔한 감동을 함께합니다.

이렇게 한 마음이 되어본다는 건 귀한 경험입니다.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시인의 안내를 받아 우리도 호젓한 마음이 되어보면서 더위는 조금쯤 멀어집니다.

이 시는 장만영 시인의 대표작이면서 한국어로 쓴 가장 아름다운 시 가운데 한 편입니다. 장만영 시인은 스스로 ‘이 시 한 편만으로도 한 권의 시작법을 쓸 만하겠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나로선 장만영 시인 또한 고등학교 다닐 때 친해진 시인입니다. 물론 책을 통해서였는데 그것은 그분이 쓴 『이정표』란 자작시 해설서를 읽게 된 것이 계기였지요.

장만영(張萬榮, 1914~1975) 시인. 호는 초애(草涯). 황해도 연백 출생으로 유복한 집안에서 출생해 어려서부터 문학인을 지향했습니다.

고향에서 보통공립학교를 졸업하고 상경,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오늘날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에 유학, 삼기(三岐)영어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시인의 생애 가운데 중요한 것은 부안의 시인 신석정(辛夕汀)과 사귀면서 그의 처제(김제출신 朴榮奎)와 혼인해서 동서가 되면서 평생 우정을 나누며 살았다는 점입니다. 예전엔 문학이 인간의 끈으로 튼튼하게 작용하던 시절도 있었던 겁니다.

시인은 1932년 <동광東光> 지에 김억(金億)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했습니다. 생전 주로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주변의 시인들을 도와주는 일을 많이 했고, 시집도 여러 권 냈는데 그 제목이 또한 특별합니다.

첫 시집부터 시작하여 점점 시집 제목의 글자 수가 증가하도록 지어졌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감상한 시 「달·포도·잎사귀」와 비슷한 형태인데 시집 이름을 들어보면 이렇습니다.『양』,『축제』,『유년송』,『밤의 서정』,『저녁 종소리』,『장만영 선시집』,『등불 따라 놀 따라』,『저녁놀 스러지듯이』.

시인이 돌아간 나이는 62세. 급성췌장염이 원인이었다는데 돌아가면서 “영규야” 하면서 부인 이름을 큰 소리로 외치고 숨졌다니 이 또한 시인다운 임종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시인은 유언으로 자신의 시비를 세우지 말 것을 당부했는데 가족과 문우들에 의해 1983년 장지인 경기도 용인 공원묘지에 시비가 세워졌다고 합니다.

시인의 뜻과는 달리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후 30년 만에 가족들에 의해 두 권의 『장만영 전집』이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장만영 시인의 시는 전원적·회귀적 소재를 모더니즘 기법으로 표현한 시로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달·포도·잎사귀/ 장만영

순이 벌레 우는 고풍한 뜰에
달빛이 밀물처럼 밀려왔구나

달은 나의 뜰에 고요히 앉아 있다
달은 과일보다 향그럽다

동해 바다 물처럼
푸른
가을

포도는 달빛이 스며 고웁다
포도는 달빛을 머금고 익는다
순이 포도 덩굴 밑에 어린 잎새들이
달빛에 젖어 호젓하구나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