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여전히 집의 장소성에 대한 중요함은 누구나 공감한다. 예를 들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각자 궁금한 것을 물어 볼 때 반드시 끼어드는 질문이 그렇다. “어느 동네 사세요?”
서울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키려는 사람들은 대치동, 도곡동과 목동을 선호한다. 그러나 너무 경쟁이 심해서 그곳으로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자들은 한남동, 성북동에 가장 많이 모여 산다고 하고, 평창동도 부자들이 선호하는 주거지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서판교가 부자들의 새로운 주거지로 각광받는다고도 한다.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를 교육시키기에 적합한 곳을 찾아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살기 좋은 주거지에 대한 이런 판단의 근거는 무엇일까? 어떠한 내용으로 기준을 삼을 수 있을까?
250여 년 전에 ‘살기 좋은 땅’에 대한 개념을 세운 글이 있다. 바로 이중환선생이 지은 『택리지』중 복거총론(卜居總論)부분이다.
『택리지』는 총론, 사민총론, 팔도총론, 복거총론 등 네 부분으로 내용이 구성되어 있다. 이 중 복거총론(卜居總論)이 ‘살기 좋은 땅’, 즉 ‘낙토(樂土)’에 대하여 정의해 놓은 것이다.
살아가면서 ‘살기 좋은 땅’을 안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드물기에 앞으로 수 주간 이 내용을 정리하여 올려 보기로 하겠다.
낙토란 무엇이며, 어떤 곳일까? 택리지에서 이야기하는 살기 좋은 땅, 즉 ‘낙토’와 유사한 개념으로 서구의 ‘파라다이스(Paradise)’, ‘유토피아(Utopia)’라는 용어가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理想鄕)인 반면 이중환이 정의한 살기 좋은 땅은 그 개념이 현실적으로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는데 큰 차이가 있다 할 것이다.
다시 정리하면 낙토는 우리가 살기에 좋은 땅을 말하며, 환상 속에서나 꿈꿀 수 있는 뜬구름이 아니라는 데에서 당당히 서구의 개념들과 차별화된다.
낙토의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이중환은 복거총론에서 “무릇 살 터를 잡는 데는 첫째, 지리(地理)가 좋아야 하고, 다음 생리(生利)가 좋아야 하며, 다음으로 인심(人心)이 좋아야 하고, 또 다음은 아름다운 산과 물〔山水〕이 있어야 한다. 이 네 가지에서 하나라도 모자라면 살기 좋은 땅이 아니다”라고 했다.
아울러 “그런데 지리는 비록 좋아도 생리가 모자라면 오래 살 수가 없고, 생리는 좋더라도 지리가 나쁘면 이 또한 오래 살 곳이 못된다.
지리와 생리가 함께 좋으나 인심이 나쁘면 반드시 후회할 일이 있게 되고, 가까운 곳에 소풍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화창하게 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지리와 생리, 인심과 산수 네 가지를 낙토의 필수 조건으로 말하고 있는데, 이 네 가지의 교집합이 아닌 네 가지를 포괄하는 합집합의 경우를 ‘낙토’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지리’는 현대적인 지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다분히 풍수적인 지리를 이야기한다. 풍수를 신뢰하지 않는 실학자 입장이었지만 물이 빠져 나가는 수구와 들의 형세, 산의 모양, 흙빛, 물이 흐르는 방향과 형상, 앞산과 앞 물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 전편을 통해 ‘생리’의 내용에 가장 공을 들였는데, ‘재물이란 하늘에서 내리거나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므로 기름진 땅이 첫째이고, 배와 수레를 이용하여 물자를 교류시킬 수 있는 곳이 다음’이라고 했다.
‘인심’에 대해서는 ‘그곳 풍속이 좋지 못하면 자손에게도 해를 미친다’하여 풍속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전국 팔도의 특징적인 인심을 비교하여 기록했다.
끝으로 ‘산수’를 이야기 하였는데, 집 근처에 유람할 만한 산수가 없으면 정서를 함양할 수 없다고 했다.
이 ‘산수’에 관한 내용은 정서 함양도 좋지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현대인의 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내용이므로 꼭 귀 기울여 들어보아야 할 부분이다. (2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