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훈조 건축사/건축학박사 (주)유림피엔씨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02-576-4248
현대인들에게 있어 건축이란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현대인들은 삶의 터를 만든다는 숭고하고 본질적인 문제 외에 어떤 요구를 건축가에게 주문하고 있는 걸까?

모든 문화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접촉과 전달을 통해, 그리고 다양한 이동경로를 거쳐 서로 섞이고 조합되는 속성을 지녔다.

그러나 특정 지역을 흐르는 기본적인 사상과 문화는 외부와의 접촉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사회조건에 의하여 오히려 변하지 않고 그 특성을 유지하기도 한다.

자연과 사회에 기반을 두고 잉태되는 건축 또한 삶의 터를 만든다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해법, 즉 건축을 어떻게 만드는 가에 있어서는 지역마다 각각의 특성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면 서구의 건축과 우리가 속한 동아시아의 건축은 어떻게 다를까? 그리고 다른 이유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건축을 선택해야 하는가?

동서양의 차이는 건축의 정의에서부터 나타난다. 서구에서는 기원전1세기 로마시대의 비트루비우스가 ‘기능(쓸모가 있음)’, ‘구조(튼튼함)’, ‘미(아름다움)’를 건축의 3요소로 정의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12세기경의 경서인 『주례』의 「고공기」에 “하늘에는 때가 있고 땅에는 기가 있으며 재료가 아름답고 기술자에게는 솜씨가 있어야 하는데 이 네 가지를 합쳐야 좋은 것을 만들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즉 건축의 요소로 ‘시간’과 ‘공간’, ‘아름다움’과 ‘기능’ 등 네 가지를 말하고 있다.

서구적인 개념으로 땅은 ‘선택하다(adopt)’의 개념인 반면, 동아시아의 땅에 대한 개념은 ‘적응하다(adapt)’의 개념인 것이다.

여기서 비롯되는 서구의 건축은 개개의 건물을 각각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면, 동아시아 건축은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보다는 주변이 포괄되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 한 건물의 대칭, 비대칭, 비례 등이 관점이 아니라 건물 상호간의 관계가 중요 관점이며 외부 공간의 역동성, 건물과 건물의 상호보완성이 관점이다.

서구의 건물은 형태를 중시하므로 건축의 역사를 양식론으로 설명할 수 있으나, 동아시아의 건물은 양식론으로 이야기 할 수 없는 주변과의 관계가 중심이 되는 건축이다.

서구건축은 투시도적인 단소점의 특성을 띈, 특정지점에서의 이미지가 좋고, 제3자는 지나가는 입장에서 건축은 오브제(객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반면 동아시아 건축은 움직이면서 봐야 그 맛을 알 수 있는 다소점의 건축이며 제3자는 참여자로서의 건축이다. 마당과 마당을 걸어야 역동적인 체험을 할 수 있으며, 문과 마당을 통과하는 참여자로서의 입장에 있을 때 가장 잘 볼 수 있다.

서구건축은 밖에서 건축물을 보는 특성이 있는 반면, 동아시아 건축은 안에서 밖을 보는 건축이다.

따라서 서구의 건축은 외부에서 보는 비례, 대칭, 형태가 중시된 반면 동아시아 건축에서는 건물의 형태보다 외부를 잘 보기 위한 향, 안산이나 주산과의 관계, 외부공간, 마당, 마루 등의 요소가 중시된다.

동아시아 건축에서는 단일 건물의 형태보다는 건물과 건물의 관계를 중시했으며, 건물 상호간의 관계를 중시했다.

따라서 단위 건물 보다는 외부 공간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것을 모르는 채 서구의 건축을 보듯이 동아시아건축을 보게 되면 그 건물이 그 건물 같은, 볼 것 없고 개성 없는 건축이 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개념은 모든 것이 공존하는 것을 매우 중시했다. 개개간의 상호 윤리적인 관점을 강조했으며, 물질보다는 정신적인 개념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서구의 개념이 눈에 보이는 실체를 가지고 판단한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시간과 공간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서구의 이러한 개념은 산업혁명과 현대화를 거쳐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현대에 와서는 환경문제 등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도 하다.

그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서구문화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자연보다 더 나은 그 무엇을 만들려고 한 도전정신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자연이나 환경을 근본적으로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서의 인간, 자연스런 건축, 자연과 좋은 관계의 건축을 추구했다.

지금 세상은 국제주의, 기능주의 건축이 대세다. 이러한 건축은 지역 특성을 무시하고 일반적인 기능만을 반영한 건축들이다. 현재 우리의 건축도 대부분 국적 없는 국제주의 건축들이 판을 치고 있다.

소위 비트루비우스식의 ‘기능’, ‘튼튼함’, ‘아름다움’만을 확보하면 좋은 건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개발시대와 고속성장시대가 휩쓸고 간 우리의 사회에는 저성장과 인간적 가치의 성취, 그리고 환경문제가 숙제로 남아 있다.

이러한 사회적 수요의 관점으로 보면 보편적인 국제주의 건축보다는 환경을 고려한 토속건축이 사람들의 생활에 더 잘 어울린다. 아직까지 건축은 터를 떠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고 터를 지배하는 것은 환경, 기후, 풍습, 문화, 자연, 사용자 등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세워지는 건축은 한국건축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한국건축이라는 것은 현대건축이든 고전건축이든 무관하게 한국의 자연환경과 사회 환경을 반영한 건축이라야 한다는 의미다.

현대의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건축의 바탕은 환경, 풍습, 전통 등 한국 문화가 반영된 것이어야 한다.

한국건축은 서구식 건축교육을 받은 설계자가 작품으로 제시하는 건축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의 생활이 반영된 건축, 터와 환경이 반영된 건축, 우리 고유의 문화가 반영된 건축인 것이다.

요즈음 주어진 땅위에 건물을 배치하는 일에 있어 전통적으로 한국건축이 중요하게 여겼던 우리의 지형과 방위 그리고 주변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일조차 고려하지 않는 건축가가 많다.

개인의 디자인 욕심을 앞세워 겉멋만 들이는 것에 대해 지극히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건축은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일회용품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살아 숨 쉬는 유기체와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감히 주장한다.

이제는 한국건축이다.

▲ 논산 윤증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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