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란 무엇일까? 예술일까, 기술일까?
강산이 두 번 이상 바뀔 시간만큼 건축업에 종사해온 사람으로서 이제는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해야 할 것 같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친구들은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말한다. 실제로 건설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대부분 재료선정, 공법적용, 품질관리 및 공정관리 등 기술적인 분야로 많이 이루어져 있다.
반면 설계사무소에 다니는 친구들은 자신을 ‘디자이너’로 불러주기를 원한다. 그들의 업무는 새로운 무엇을 만들고, 남과 다르게 형상화하는 일들이다.
더군다나 여타 분야와 가장 많이 다른 것은 구조물을 만드는 일로, 실내외 공간을 다루는 일에까지 이르니 그들의 업무는 진정 예술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흥미로운 사실은 각 전문가의 주장과는 다른 건축주들의 생각이다. 상업주의에 걸맞게 만든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의 영향으로 건축가들을 당연히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밝고 호화스러운 사무실에서 멋지게 그림 그리다가 아름다운 여주인공의 전화를 받고 외제차로 달려가는 미남 배우. 비록 실제 본인의 집을 지을 때는 실랑이하면서 한 방에 날아가는 역할일망정 이미지만큼은 예술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수 백 년 동안의 기나긴 생명력을 품위 있게 유지해온 우리의 전통건축물들은 또 어떠한 의미일까? 예술일까, 기술일까?
건축물이란 건축 초기의 기능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느냐의 여부만큼이나,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뀌고 세상이 변해도 그 건축물의 형상, 공법, 내포하고 있는 사상 등에서 또 다른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어쩌면 건축의 최고 요건은 바로 이 생명력에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주장인데, 이것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많은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에 와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이 전통건축들은 누가 만들었을까?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것은 경복궁을 지은 심덕부와 정도전, 화성을 진두지휘한 정약용, 도산서당을 지은 이황,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 등은 책상머리에서 책만 읽은 것으로 알려진 선비와 학자들로, 요즘 말하는 건축가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인문학자들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당대의 내로라하는 대목장들이 시공을 하였을 것이나, 그들 역시 교육받은 디자이너가 아니었음은 마찬가지였을 터이다.
현대 건축은 기술력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건축에는 구조 공학과 재료 공학, 그리고 수많은 공법들이 뒷받침된다.
또한 예술이라고 불리는 디자인 없이도 이루어질 수 없다. 기능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하고, 공간을 만들고 감성을 표현해 내는 영역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설계를 했는데도 정작 생명력 있는 현대건축, 좋은 건축물은 몇 개나 될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은 것은 왜일까? 이들보다도 건축을 구성하는 더 본질적인 요소는 따로 있지 않을까?
자연환경을 이해하고, 인간들의 생각을 형태로 우려내야 하며, 수많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들의 삶을 담고 통찰하는 건축만이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기술로만 이루어진 건축이 있고, 예술성이 깊은 건축도 있다. 그러나 역시 좋은 건축은 인간과 인간의 환경을 이해한 후 나타나는 건축이 가장 의미 있음은 재차 강조해도 모자람이 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좋은 건축은 인문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외국에서는 비평가이자 역사학자인 동시에 건축가인 사례가 많다. 역사의 깊이와 문화의 폭이 넓은 사회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외국의 건축계가 부러운 이유 중 하나다. 우리도 그런 건축문화를 만들어 가야할 때가 왔다.
이제는 기술적인 수준도 많이 올라왔다. 디자인에 관한 폭도 많이 넓혀졌다. 그래서 인문학을 배경으로 하는 스토리를 가진 디자인이 절실한 때가 온 것이다.
우리의 스토리를 갖는 순간 우리의 건축도 달라질 것이 틀림없다. 마치 한국영화가 우리만의 스토리로 비약적인 발전을 했듯이 말이다.
물론 당연히, 그 스토리의 배경은 인문학이다. 그 다음 나타나는 현상은 디자인이며, 그 디자인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기술이다.
이제는 화두에 대답을 할 차례이다. 건축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무엇일까? 예술일까, 기술일까?
인문학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