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은 고종 34년(1897)부터 1910년 10월 국권이 피탈 때까지의 우리나라 국호다. 따지고 보면 황제국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던 기간은 13년간이다. 1897년(건양 2월) 고종임금은 원구단(圜丘壇)에서 칭제건원(稱帝建元)하고, 황제를 선포하고 국호를 대한제국이라 칭하였다. 아울러 연호도 건양(建陽)에서 광무(光武)로 고쳤다.

고종임금은 황제국이 되기 위한 국호를 개정하는데 많은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중국을 중심으로 했던 중화권에서는 황제국의 국호는 한 글자요, 제후국의 국호는 두 글자며, 아주 미개한 나라의 국호는 세글자로 정하는 것이 관례였다.

중국은 진(秦), 한(漢), 수(隋) 등 국호를 썼고, 제후국에 해당했던 조선(朝鮮), 일본(日本), 백제(百濟), 신라(新羅) 등은 두 글자를 국호로 사용했다. 세글자를 사용했던 나라는 추모 성왕이 세운 고구려다. 4~5세기 동북아의 최강국이 이었던 고구려가 어떻게 미개국에 해당하는 세글자 국호를 썼을까?

고대 고구려나 백제의 역사 자료는 현재 남아있지 않다. 모두 중국이나 일본에 남아있는 자료로 고증할 뿐이고 고려 때 김부식 선생이 지은 삼국사기에 의존할 뿐이다. 설(說)에 의하면 고구려의 본래 국호는 고려 또는 구려로 보는 시각도 있다. 아마 고구려라는 이름은 중국 수나라, 당나라가 매번 고구려와의 싸움에서 패하니 앙심을 품고 미개국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그들의 역사서에 국호를 고구려라고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고종임금이 국호를 선정하려 하니 이미 중국에서 진(秦), 한(漢), 수(隋), 당(唐), 송(宋), 명(明), 청(淸)등 좋은 국호는 다 사용했다. 이에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아주 옛날부터 한반도에 자리 잡았던 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이 있었는데, 이 ‘한(韓)’은 곧 우리나라를 나타내는 말임을 알게 되었다.

고종임금은 국호를 ‘한(韓)’이라고 정했다. 그리고 황제국의 국호 앞에는 ‘위대하다’, ‘하늘로부터 정해졌다.’라는 의미로 항상 대(大)자를 붙였다. 그래서 대청, 대명, 대당, 대진 그렇게 불렸다.

우리도 이제 황제의 나라가 되었으니 한(韓) 앞에 대(大)를 붙여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 대한제국(大韓帝國)이 탄생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고종 황제의 비(妃)를 말할 때 민비(閔妃)라고 부른다. 이는 일제가 만들어 낸 우리 황실을 얕잡아 보기 위해 만들어 낸 말이다. 1897년 이후 역사를 말할 때 공식적인 명칭은 명성황후(明成皇后)다.

이제는 황제국이고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확보했으니 청나라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선 시대 때 중국에서 오는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세웠던 영은문(迎恩門)을 서재필 선생 등이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자고 고종황제께 건의했다. 고종황제는 흔쾌히 승낙했다. 그러나 독립문 앞에 영은문 주초(柱礎-주춧돌과 기둥)는 지금도 남아있다.

독립문은 유럽의 개선문 형식과 비슷하지만 드나드는 문으로 사용하기보다는 상징적이 기념문이었다.

이때 독립문을 세우는데 100원을 기부한 사람이 이완용이고, 한글로 ‘독립문’이라고 쓴 사람도 이완용이라고 한다.

독립문을 세운 이유는 황제국으로서 중국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도 있지만, 당시 일본, 러시아, 미국 등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한다.

독립문(1979년 도로공사로 원위치보다 70m 옮겨졌다), 출처: 나무위키
독립문(1979년 도로공사로 원위치보다 70m 옮겨졌다), 출처: 나무위키

1945년 해방이 되었다. 1948년 제헌국회에서 대한, 조선, 고려공화국 등 국호를 정하기 위한 의견이 분부했으나 ‘대한민국’이 국호로 결정되었다. 30명의 제헌 의원으로 구성된 헌법 기초위원회에서 17표를 얻었다.

한(韓)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을 상징했던 이름이다. 한(韓)은 ‘크다’,‘밝다’, ‘위대하다’, ‘빛난다.’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글 이름을 ‘한글’이라고 했고, 한의학이 중국에서 발전해 우리나라로 들어왔지만, 지금은 우리 것이 되어 한의(漢醫)가 아닌 한의(韓醫)로 표기하고 있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