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 땅에도 가을이 찾아온다는 것이 마치 기적만 같다. 모진 더위와 기나긴 우기를 이기고 선뜻 우리 앞에 다가선 가을은 그야말로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고 수호천사처럼 정겹다. 그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그런 것 같고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그런 것 같다.

봄과 가을에 비하여 자꾸만 길어지는 여름과 겨울. 그나마 봄이 허락되고 가을이 준비된다는 것은 축복 가운데 축복이다.

어느 날 찬바람 불고 밤 기온이 뚝 떨어지면 나무들은 새로운 빛깔의 옷을 갈아입고 가을맞이에 나선다. 그러나 그 기간은 너무나 짧고도 아쉽게 지나간다.

인생의 보람이 중년기에 있는 것처럼 자연의 핵심도 가을에 있다. 어찌하여 계절은 1년을 견디는가? 그것은 오로지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서이다. 가을이 되면 자연도 숙연해지고 인간도 숙연해진다. 다 같이 성숙해지고 충실해지는 것이다. 뿐더러 가을엔 겸허해지기까지 한다. 가을의 본성인 것이다.

이러한 가을에 얼핏 떠오르는 시는 박재삼(朴在森, 1933∼1997) 시인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란 작품이다.

박재삼 시인은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경남 삼천포(오늘날 사천시)에서 살았는데 어린 시절 홀어미 밑에서 가난하게 성장했다.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으로 들어가서 일하면서 시조시인 김상옥(金相沃) 선생을 만나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삼천포고등학교를 나와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했으나, 학업을 끝까지 마치지는 못했다.

1953년부터 1955년 사이, 문학잡지 <문예>와 <현대문학>의 추천을 통해 시인이 되었다. 그 뒤로 오래 동안 잡지사와 출판사 기자생활로 일관했으며 바둑을 좋아해 일간신문의 바둑 관전기를 쓰기도 하고 산문을 써서 그 원고료로 가난한 생활비를 보태기도 했다.

시인의 출세작은 아무래도 「춘향이 마음」인데 이 작품은 시인의 첫 시집 제목이기도 하며 시인에게 현대문학신인상의 영예를 안겨주기도 했다. (그 뒤로 시인은 문교부 문예상, 인촌상, 한국시협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평화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조연현문학상 등을 받았다.)

시인은 평생 동안 가난과 질병을 친구나 이웃처럼 달고 살았다. 허지만 시인은 그런 가난과 질병에 지지 않고 밝고도 천진한 심성을 끝까지 유지하면서 아름다운 시를 아주 많이 남겼다.

박재삼 시인을 떠올릴 때마다 시인은 만들어지거나, 길러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비록 시골에서 살아온 시인이지만 박재삼 선생과 상당히 가까웠던 사람이다. 그것은 내가 등단하자마자 박재삼 선생이 나의 등단작인 「대숲 아래서」에 관심을 가졌고 여러 차례 문학잡지에 나의 시작품을 평해주었기 때문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박 선생을 찾아 서울 나들이를 했던 기억이 있다. 찾아가면 언제고 술을 마셨다. 그 시절엔 다들 그랬다. 손님이 찾아오면 술을 함께 마시는 것이 하나의 예의처럼 되어 있었다.

문학작품도 그렇지만 인간적으로 참 좋은 분이 박재삼 선생이다. 언제나 보아도 변함없이 순하고 너그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냥 그대로 토종이었고 촌사람이었다. 시와 인간이 서로 닮기로 박 선생 같은 경우도 흔하지 않다. 한 때 나는 나 자신 문단의 족보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시의 계보로 보아 김소월 선생은 할아버지요, 박목월 선생은 아버지, 서정주 선생은 당숙뻘쯤 되는데 박재삼 선생은 큰집의 형이거나 막내삼촌쯤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만큼 박재삼 선생과는 심정적으로 가까웠던 사이다.

시인은 『춘향이 마음』『햇빛 속에서』『천년의 바람』『어린 것들 옆에서』『추억에서』 등 많은 시집과 여러 권의 산문집을 출간했고 사후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박재삼 전집』이 출간되기도 했다.

시인의 산소는 충남 공주에 있고 성장한 고장인 사천시(삼천포)에는 박재삼문학관이 세워져 있으며 해마다 박재삼 문학제가 열리고 박재삼 문학상도 시상되고 있다.

박재삼 시인에게는 명작이 많다. 그 가운데도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작품은 단연「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다.

이 작품은 <사상계, 1959.2>에 발표했던 작품이다. 생전에 시인은 이 작품을 별로 탐탁하게 생각지 않고 있는 눈치였다. 그러나 독자와 비평가들이 하도 좋아하니 자연스럽게 시인의 대표적이 되었고 시인 자신도 슬그머니 그것을 받아들인 경우이다.

이 시는 하나의 감격의 언어로 구성된 작품이다. 처음부터 시인의 흥분된 어조가 대번에 느껴진다. 화자는 지금 매우 초조하고 약간은 불안하기까지 하다. 그런 심정으로 ‘친구의 서러운 사랑이야기’를 ‘가을햇빛으로나 동무삼아 따라’ 간다고 했다.

인간의 일과 자연의 일이 참 묘하게 연결되면서 조화를 이룬다. 여기서 나오는 것은 ‘등성이’에 이르러 나는 ‘눈물’이다. 이 얼마나 천진한 심성인가!

시인은 이렇게 천진한 심성과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자연을 보고 인간의 일을 상기한다. 박재삼 시의 정서를 흔히들 ‘한(恨)’의 정서로 풀이한다.

그리하여 한이란 슬픔이나 설움이 가슴속에 응축되고 억압되어 생겨진 또 다른 슬픔의 형태로 본다. 그러나 나는 한을 그렇게 보지 않는다. 슬픔은 슬픔이되 그늘지지 않은 슬픔이고 퇴영적이거나 나약한 슬픔이 아니라 회복의 의지를 지닌 힘을 내재한 슬픔이 한이라고 본다.

이러한 한의 본령을 가장 잘 고수하면서 시적인 언어로 성공시킨 시인이 바로 박재삼 시인이다. 그러기에 그의 시에는 영탄이 별로 없고 실의나 절망의 현실 앞에서도 언제나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의지를 보인다.

박재삼 시인에게 있어서는 늘 보아온 대상도 새롭게 태어나는 대상이다. 그래서 발견자의 환희와 경탄이 따른다. 오죽했으면 ‘울음이 타는 가을강’이겠는가! 지극히 인간적인 숨결로 윤색된 자연이다.

‘저것 봐, 저것 봐,’ 손가락질 하는 너댓 살짜리 어린아이의 천진이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그 천진은 너와 나의 한계를 넘어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에 모아지고 ‘사랑 끝에 생긴 울음’으로 변용되었다가 다시금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강’으로 부활한다. 끝내 이 작품을 읽고서 우리가 느끼는 정서는 밝음이요 환희로움이다.

그렇다. 이것이 바로 한의 정서이다. 결코 응어리진 상처나 옹이가 아니다. 그것은 생의 의지로 반짝이는 그 무엇이며 미래로 열린 또 하나의 가능성이다.

올해도 기적처럼 맞이한 가을, 한 좋은 시인의 아름다운 절창 한 편을 만나는 기쁨은 만만치 않다. 왜 사람들은 이런 기쁨을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江을 보겠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물 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울음이 타는 가을江」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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