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 처, 아내, 안사람, 집사람, 마누라, 배우자 등 다양하게 부르는 이름이 소중한 아내, 가장 귀한 손님(?)이다.아내를 내 안의 태양이라는 뜻으로 ‘안해’라고도 한다.집에 아내가 없으면 빈집 같다. 집사람이 집에 있어야 온기가 있다.일반적으로 아내는 가족을 살리는 살림꾼이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며 살린다. 남편도 살린다.세탁 등 집안 일(의식주)을 하는 아내의 역할은 실로 소중하기에 ‘살림’이라고 한다.양지듣산에 다니면서 아내가 동행해주면 정말 고맙다. 보통 산행을 넘어서 100대, 200대 산행을 하려면 전국을 다녀야 한
11년 전 창원에서의 신접살림을 정리하고 뱃속 아기까지 3남매를 데리고 공주에서 과수원을 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계신 시댁으로 합가를 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이때부터 남편하고는 주말부부로 생활했다. 나는 점점 배가 불러와서 힘이 많이 부쳤지만, 나름 어머니께 보탬이 되고 싶었다.그래서 만삭의 몸으로 과수원의 일꾼들 식사와 출퇴근도 시켜주며 셋째를 낳는 전날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다.주말에만 오는 남편에게 힘든 내색 한번 안 하면서 “씩씩하게 어머니와 아이들과 잘살고 있노라”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물론 때로는 어
외할머니 떠나신 후그리움 대신유품이라도 만져보고 싶더라번듯한 유품도 없지만남겨놓지 못해서 자책을 많이 했어 여우목도리 하나 있었는데그마저 주인 없어 그런지금방 삭아 찢어지더라그래도 깊은 내 마음에 간직해 두었으니더 깊은 곳 어디 있겠는가 나보고 남들이탐날 물건 하나 없이 살았다는데칭찬인지 흉인지는 모르겠어그 말도 맞아 변변한 것 하나 없으니너희들 빼놓고 별것 없지 그래서 엄마는삭지 않는 글을 쓰고 있단다
몸이 불편하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이제 고관절 수술한 지 40일.그래도 목발 떼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불안하지만 급하면 벽이라도 짚을 수 있고, 식탁이라도 잡을 수 있는 주방과 거실 사이는 다리의 힘도 기를 겸 아장아장 걷는다.아침에는 모처럼 된장찌개도 끓여 먹었고 약병들로 어질러진 식탁 위도 정리를 해본다.이리 아프니 가까운 지인들 신세를 본의 아니게 많이 지게 되었다. 정겨운 지인들은 김치나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왔다.나는 못 해본 일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
햇볕에 마르지 않는 습성의 배후가 바글거린다 글씨들을 펼쳐보면 축축한 것들이 많다 물먹는 하마를 곳곳에 풀어놔도 소용이 없다물소 등에 둥둥 떠 있다가 잠깐씩 바닥에 발을 붙이곤 커피를 들고얌전히 물렁한 등에 다시 오른다 아무래도 이런 날은 아작아작 팝콘을 씹으며 멜로 영화 보는 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의 빈 엽서를 받고동백나무 아래처음 꽃송이가 질 때까지 서성이던 여자 가진 것 중에 가장 환한 것을 잃어버리고어두운 문장으로 가득해지던 손수건 도착지가 다른 직행버스에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모를 뜻밖의 사람이 바라보던 유리창어디를 가는지
우리가 어렸을 때는 동네에 아이들이 참 많았다.한 집에 7~8남매씩이었으니 많을 수밖에. 옆 동네, 뒷동네 산 너머 아이들까지 모이면 제법 시끌벅적했다.아이들은 겨울이면 모여서 쥐불놀이를 했다. 깡통에 숯을 넣어 불을 붙여 빙빙 돌려서 불이 활활 타오르면, 앞 동네로 가서 불 깡통을 돌리며 전진한다. 밀리면 지는 것이다. 그때가 아마도 정월 보름날이었던 것 같다.동네 아이들끼리 등교할 때는 밭에 있는 목화 열매와 삘기, 찔레 순을 따먹으며 논길을 걸어서 함께 등교했다. 재잘거리며 줄줄이 논길로 걸어서 가는 등굣길은 행복했다.봄에는
하루의 노동에 지친 비 오는 날집 앞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있으면차 속이 아늑하다여기서 살고 싶다살아도 될 것 같다이대로 차를 몰고 마트로 가서 먹거리를 사고서점으로 가서 시집 몇 권 사들고뒷좌석에 편안하게 발을 꼬고 누워 김밥이나 떡볶이를 먹으며청소래야 의자를 손바닥으로 털어내고발판을 툭툭 터는 일밖에 없으니시집을 읽고 밤하늘을 보는 일밖에 없을 것이다서울 집값이 올라 배 아플 일도 없겠고싫증 나면 차를 몰고 마음대로 좋은 곳 터 잡을 수 있으니세상에서 낮고도 가장 높은 집
오는 6.1선거에서 세종시교육감선거에 세 번째로 도전하는 송명석 세종교육연구소장은 “교실이 무너진 현장에서 이를 개혁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기 때문에 망가진 교육의 치유 방법을 알고 있는 자신이 부끄러운 세종교육을 세종시민이 원하는 바람직한 교육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출마했다”며 출사표를 던졌다.송 소장은 “한쪽으로 기울어진 좌 편향교육, 학력 전국 꼴찌, 학생 중도 탈락률 심각, 학교폭력 비율 전국 최고, 구도시와 신도시 간의 교육격차 등을 현안 문제로 꼽고, 이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 놓았다”고 말했다.그리고 “세종시 교육청
나는 금강을 가로지르는 대전과 세종을 오고 가는 택시 운전사였다. 일선 현장에서 일반 시민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고, 택시 근로자들이 겪고 있는 고충 사항을 파악하기 위해 직접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것.그리기위해 정밀검사, 자격시험, 교육 등을 거쳐 택시 운전자격증을 취득해 영업용 택시근로자들의 애환을 직접 경험했다.그러면서 각종 교통표지판의 적정 설치 여부, 교통신호등 연동체계, 주ㆍ정차 금지구역 지정 적정 여부 등 교통안전 시설과 불편 사항에 대한 시민의 다양한 의견과 세종시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교육 정책에 대하여 여론을 수렴
임인년 새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결정할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동시에 있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선거로 국민통합의 시대를 활짝 열어야 합니다.만에 하나, 선거의 절차적 흠결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면 막대한 사회적 혼란으로 국가 발전이 저해될 것입니다. 따라서 공명정대한 선거를 확립하기 위한 몇 가지 제언을 드립니다.첫째, 우편투표함 및 사전투표함은 개함하는 순간까지 여야 및 시민에 의한 감시 시스템이 철통같이 확립되어야 합니다.우편투표함 및 사전투표함이 여야 참관인, 시민, CCTV 감시 시스템에서 한순간,
저 멀리서 반가운 목소리가 씩씩하게 들린다. 막내아들은 나를 발견하더니 숨이 목에 차도록 빠르게 달려왔다. 그리고는 “엄마! 내가 엄마 줄 선물을 만들어 왔어요.”하며 학교 텃밭에서 재배한 각종 채소를 담은 에코 가방을 내민다.나는 가방 안의 채소를 살펴보다가 가방 겉에 새겨진 글자를 보고 그만 깜짝 놀랐다. 가방 전체가 명품인 구찌, 샤넬, 루이비통 로고로 가득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꼬맹이가 어른들이 이런 명품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니 웃음이 팡 터졌다.아들은 나에게 가방을 앞뒤로 보여줘 가며 “엄마
요즘 들어 ‘청국장’ 생각을 하면 침이 꿀꺽 넘어간다. 그리고 맛있는 밥상이 생각난다. 한때는 제일 싫어하던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어릴 적 늦가을 추수가 끝나고 김장할 무렵이면 거르지 않고 엄마는 청국장을 해 주셨다. 그때는 청국장의 독특한 냄새 때문에 그게 그리도 싫었다.그런데 결혼하면서 바뀌었다. 시댁에 갈 때마다 시어머니께서 청국장을 해주시는데,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그때부터 내 입맛이 바뀌어 청국장을 좋아하게 되었다.공주에 내려와 시어머님께 청국장을 만드는 비법을 전수받아 이삭가 청국장을 만들어
반쯤 허물어진 달이당신 창가로 뛰어들었을 때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았다 어둠이 건져 올린바다, 그물 사이를 빠져나와숨죽인 채 글썽거린 한 생의 파편 허물어지며자기의 끝을 준비하는 일요일 저녁을헹구어내며 ‘또’라는 말 대신‘다시’라는 말을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
2020년 4월 14일은 모두가 부러워하는 나의 농촌 생활이 시작된 날이다.나의 옆 지기가 건축 정보통신 감리사로 일을 시작해 2년이라는 계약 기간 동안 공주시 사곡면 화월리에 자리를 틀게 되었다.거주할 집을 구하기도 막막했는데, 세종에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도와줘 예쁜 전원주택을 임대할 수 있었다.비록 2년이라는 짧은 귀농이지만. 내게는 전원생활을 충분히 맛볼 수 있는 시간이 되리라고 기대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우선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사기로 하고, 냉장고는 집주인 내외가 쓰다 창고 옆에 방치해 놓은
나는 1958년 5월 깊은 산속 하늘만 빤히 보이는 강원도 산골에서 보리타작해 놓은 위에서 아침에 태어났다.보리 위에서 태어나서인지 식복은 많았나 보다. 살면서 그리 배를 곯지는 않았다. 어려서 유난히 할머니를 좋아했던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다.우리 가족은 춘천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고, 첫 직장을 시작한 곳도 서울이었다. 직장에서 만난 친구 따라 휴가 때 놀러 온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 나의 평생 보금자리가 되어 살고 있다.친구와 함께 처음 화월리에 오던 생각이 스쳐 간다. 어찌나 길이 험하던지 버스 뒷자리에 앉아
초등학교 4학년 때가 문득 생각난다. 아버지께서 “마늘을 캐야 하는데 일손이 없다”며 “오늘 하루 학교를 가지 말라”고 하셨다. 나는 반박도 못하고 “네” 하고 대답하고선 말없이 호미 들고 따라 마늘밭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그날따라 학교 가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러웠는지…. 호미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을 누가 볼까 싶어 숨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밉고, 원망스러웠다.어린 나는 왜 하필이면 아버지께서 나에게만 일하기를 요구하시는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분노의 호미질을 했다.아마도 아버지께선 혼자서는 감당하기 힘들어서
얼마 만에 돌아온 내 집인가? 목발에 몸을 기대며 한 달 만에 들어선 내 집.아! 따듯한 이 내음. 비록 창밖 햇살을 바라보며 등을 보이고 있는 꽃들이었지만 내 화분의 여러 꽃들이 날 반기며 피어있었다.활짝 피어있는 여러 색깔의 제라늄들. 나 없이도 잘 피고 있었구나. 둘러보며 내 집이 이렇게 내게 안식을 주는 집이었던가 하고 새삼 감사와 고마움을 느꼈다.몇 년 전부터 가끔 씩 고관절에 통증을 느꼈다. 아픈 곳에 파스를 붙이거나 온탕에 몸을 담그며 몸을 달래면 또 그럭저럭 통증을 해소시키며 지낼 수 있었다.아프지 않을 때에도 “왜
꽃잎 떨어지는초사흗날눈물 흘리던 날들당신의 숨결 찾다가밤하늘 언저리에서 만난 그리움의 결정체
봄볕이 이토록 온정스러워 미치겠다고요? 목련, 청매화, 벚꽃, 명자꽃이 차례로 피고 있다고요폐부 깊숙이 이것들의 생기를 맘껏 들여마시고 싶다고요사랑에 달뜬 청춘님들 전신을 감전하는 첫 키스는 생각도 말아요어쩌나요 그것은 사탄의 유혹 먼발치서 눈으로만 아니 그마저도 실눈으로만 무조건 가까이 오지 말아요 독사보다도 치명적인 독을 옮길 수 있어요무엇보다 탐욕스런 입과 코는 고기능성 마스크로 숨 쉴 틈 없이 막아요어쩌면 이것은 신의 치밀한 벌일지도 몰라요 아마존을 불태우고 시원의 바다에 만년빙산보다 더 높은 쓰레기산을 만들고 바닷가 왜나라
쿨럭쿨럭 잦은 기침이 몸을 흔든다며칠 밤을 밝혀도 끄떡없던 단단함은 어디 가고돌고 도는 선풍기 아래늘어진 잠을 일으키는 느슨한 동작 이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담판이라도 짓겠다고가진 건 없어도보여줄 건 울음밖에 없다고방충망을 움켜쥔 매미는 화끈한 생을 보여준다 가끔은 졸다가 잠꼬대를 흘리며 투정을 부려도기쁨의 온도가 미달이라도, 평생 같은 말만 해도 밤새도록 옆에만 있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