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창원에서의 신접살림을 정리하고 뱃속 아기까지 3남매를 데리고 공주에서 과수원을 하고 계시는 어머님이 계신 시댁으로 합가를 했다. 당시 우리에게는 이게 최선이었다.

이때부터 남편하고는 주말부부로 생활했다. 나는 점점 배가 불러와서 힘이 많이 부쳤지만, 나름 어머니께 보탬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만삭의 몸으로 과수원의 일꾼들 식사와 출퇴근도 시켜주며 셋째를 낳는 전날까지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다.

주말에만 오는 남편에게 힘든 내색 한번 안 하면서 “씩씩하게 어머니와 아이들과 잘살고 있노라”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때로는 어머니가, 또는 내가 서로 오해를 하여 힘든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이해하고, 삭히면서, 서로 의지하며 살았다.

남편하고 함께한 결혼 생활보다 어머니하고 같이 생활한 것이 더 길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어머니 몰래 숨어서 많이 울었다.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실까 봐 어느 때는 마을 어귀에서, 어느 때는 과수원 배나무 밑에서 나의 마음이 하늘에 닿기를 기도하면서 참으로 많이도 울었다.

나름대로 나는 열심히 도와드린다고 틈나는 대로 도와드리는데, 항상 함께하지 못하니 표시도 안 났다. 농사가 그랬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시어머니의 농사를 도와주지 않는 나쁜 며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어머님은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4남매와 시부모님을 모시며 작고, 여린 몸으로 긴 세월을 농사와 함께 살아오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쉬는 시간보다 밭과 과수원에서 일하는 것이 더 편하다.”라고 말씀하실 정도이다. 그러니 이웃들은 나를 따가운 시선으로 볼 수밖에.

첫째 아들이 미숙아로 태어나 발달이 늦어 늘 힘들었고, 나는 아이의 치료에 온 힘을 다했다. 그런 나를 어머니는 늘 안타까워하셨고 “큰아이를 위해 공부를 하고 싶다”라고 말씀드렸을 때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나는 남편의 전폭적인 지원과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받으면서 검정고시에 합격해 꿈에 그리던 대학까지 다니게 됐다.

나는 어머니의 마음에 보답하고자 죽기 살기로 결석 한 번 안 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덕분에 장학금도 받았고, 무사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이는 어머니께서 마을 사람들의 나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들을 막아 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거라. 지금처럼 너랑 나랑 의지하면서 서로 응원하며 살자꾸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어머니가 내 곁에 계셔서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조실부모한 나에겐 이보다 더 든든한 배경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어머니 저 요것 좀 배워 보려고요. 다음엔 이런 걸 배울 생각입니다”라고 하면 시어머니께서는 “그려 배워라. 뭐든 배워서 아이들과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아라.”라고 응원해 주신다.

나는 어머님의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 따듯하게 한 끼 식사를 정성껏 챙기는 나 나름의 방식대로 효도하며 어머니와 알콩달콩 재미있게 살아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박종숙 여성농어민센터장님과 지역 의원님이 예쁘게 보아주신 덕분에 2021년 5월 어머니에 이어 2대째 효부상을 받았다.

이 효부상은 지금까지의 보상이라기보다는, 앞으로 더 잘 모시라는 격려인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도 볶은 호박 나물과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새콤달콤한 오이김치를 만들어 정성껏 식사를 차려 드렸다.

오후에는 어머니와 대파 김치 재료를 3시간 넘도록 다듬으면서 나는 남편 흉을, 어머니는 살아생전에 아버님 흉을 보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살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 파로 맛있게 대파 김치를 담아 이웃과 나눔도 할 생각이다.

천사 같은 마음을 가진 큰아들, 별 보다 더 빛나는 둘째 딸, 그저 할머니밖에 모르는 껌딱지 자유로운 영혼 막내아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자 손녀 재롱을 보여 드리면서 어머님이랑 나랑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어머니, 항상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아프시지 마시고, 제가 해드리는 밥 드시고 100세가 넘도록 장수하시어 건강하게 저랑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힘든 과수원은 먹을 것만 하시고 ‘콩이며 들깨며 많이 안 하신다’고 한 약속 잊지 마시고 조금만 더 일 좀 줄여주세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내가 늘 어머니께 드리는 말씀이다. 이는 간절한 나의 소망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성 농업인센터에서 늦게나마 한글 공부를 하고 계시는 어머니를 응원한다.

“어머님께는 제가 열심히 응원해 드릴게요. 열심히 공부하셔서 대학교까지 가보셔요. 우리 어머님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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