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불편하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은 제약을 받는다. 이제 고관절 수술한 지 40일.

그래도 목발 떼고 아장아장 걸음마를 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불안하지만 급하면 벽이라도 짚을 수 있고, 식탁이라도 잡을 수 있는 주방과 거실 사이는 다리의 힘도 기를 겸 아장아장 걷는다.

아침에는 모처럼 된장찌개도 끓여 먹었고 약병들로 어질러진 식탁 위도 정리를 해본다.

이리 아프니 가까운 지인들 신세를 본의 아니게 많이 지게 되었다. 정겨운 지인들은 김치나 밑반찬을 만들어 보내왔다.

나는 못 해본 일인데 미안하기 짝이 없다. 오늘 아침만 해도 빈 그릇을 돌려줘야 하는 지인이 또 나를 생각하며 반찬을 만들었다고 출근길에 주고 갔다.

미안함이 쌓여 부담이 가지만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받아야 하는 것도 또한 정

일 것 같아 고맙게 받는다.

이렇게 몸이 부자연스러울 때에 큰 위로가 되고 무료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이 스마트폰이었다.

손바닥 안에 들어오니 가볍게 누워서도 클릭하며 지인들과 카톡으로 대화를 하고 유튜브로 보고 싶은 영상을 이것저것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이나 꽃 기르기 삽목하기 등 유튜브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는 시간들 이었다.

그중 또 유익한 것은 밴드 활동이다. 뜨개 방 밴드를 두어 개 들어두니 솜씨꾼들의 멋진 뜨개 작품들을 매일 볼 수도 있고 예쁜 무늬 뜨는 법이라든지 도안을 공유하기도 한다. 

여성들만의 대화방이다 보니 가끔씩 시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왜 그리 시댁 식구들은 골치 아프게만 할까요? 시 자만 들어가면 짜증나고 싫어요.” “그 댁도 그래요? 어쩔 수 없나 봐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나도 예전에 힘든 거 다 겪었어요. ㅋㅋ”

나도 이제는 그 골치 아프다는 ‘시’자가 들어가는 시어머니 입장이다 보니 그런 대화를 읽다 보면 예사로 지나쳐지지 않고 다시 한번 나를 돌아 보게 된다.

왜 시 자는 골치 아파야만 하는 걸까? 가끔은 속상하기도 하다. 나도 젊어서는 시어머님과 경제적인 면에서 섭섭함을 겪은 며느리였지만 그때는 너무 가난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요즘은 다들 잘 살아도 고부간의 갈등은 여전한가 보다.

요즈음 시부모를 가까이 모시고 살며 힘들어하는 여동생의 이야기를 가끔 듣는다. “언니! 친정에 올 때는 기운이 나고 힘든 걸 모르겠는데 왜 그리 시댁에 하는 건 귀찮고 신이 안 나는 걸까?”

친정에 올 때에 형제자매들에게 맛있는 반찬도 만들어서 나누는 부지런한 동생이다. 나눔을 좋아해서 시댁 식구들에게도 열심히 나누고 시누이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는 동생인데도 그런 말을 한다.

글쎄다. 아마도 피가 안 섞여서일까?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친정 부모 때문에 또는 친정 형제들 때문에 속썩고 사는 사람들도 꽤 많다.

다만 그걸 드러내 보이지 않고, 잘 삭이기 때문에 모르고 지나치거나 좀 가볍게 다루어질 것이다. 그게 핏줄이다. 핏줄이 아닌 가족관계에서는 조금만 서운할 일도 더 크게 섭섭하게 느껴지고 서로 어려워 대화를 나누지 않으니 소통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어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딸이 없는 나는 며느리들이 잘 하고 있는데도 가끔씩 좀 더 상냥한 딸 같은 며느리였음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기도 한다.

“어머니! 내가 도와드릴 게 집 좀 정리할까요? 아까워서 못 버리는 것들 제가 대신 버려드릴게요.”라던가 “어머니! 이 화장품 제가 써보니 비싸지 않은데도 좋아요. 써보실래요?”라는 상냥하고 정감 있는 말이 듣고 싶다.

하지만 다들 바쁘게 지내는 며느리들이어서 그럴 여유가 어디 있는가. 그냥 희망사항을 말해보는 것 뿐이다.

백화점 나들이도 함께해서 돌아다니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으면 서로 입어도 보고 맘에 드는 옷 서로 사주기도 하고 그런 희망. 그런 바람을 가져 보다가 손녀딸이 빨리 커주기를 기다리자 생각한다. 그런데 이번에 아프다 보니 손녀딸 크기를 기다리는 것이 좀 급해졌다고나 할까.

장인 장모와 사위의 관계나 시부모와 며느리의 관계는 촌수가 똑같다. 그런데 대부분 사위들이 처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는 소리는 별로 못 듣는다.

과연 그럴까? 더러는 받는 사위들도 있겠지만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처가를 대하며 말없이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젊은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처가와 시댁에 하는 것들이 동등하게 해야 한다며 명절에도 똑같이 양쪽 집에서 한 밤씩 자고, 봉투도 똑같이 드린다는 이야기를 더러 듣는다.

딸들이 자주 찾아와 귀찮다는 이야기를 친정어머니들에게 듣는 건 흔한 일이지만 시어머니들에게는 며느리들이 자주 와서 귀찮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일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동등이 아니지 않나?

딸들아!며느리들아!

시댁 식구들과도 좀 더 친하게 지내면 안 될까? 내가 시어머니가 되어보니 며느리에게 뭘 줘도 안 아깝단다. 아끼던 예쁜 그릇도 원한다면 모두주고 싶고, 반찬도 맛있다고 하면 다 퍼주고 싶어.

제일 아끼던 아들을 주었는데 뭔들 아까우랴. 그런데 말이다 어렵다고 전화도 자주 안 하면 그게 서운하고, 시어머니들은 먼저 전화를 걸다가도 시댁에서 전화 자주 와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며느리들이 할까 봐 폰만 만지작거린단다.

주말에는 뭘 하나? 어떻게 지냈을까? 늘 너희들이 궁금하고, 보고 싶어. 앵두나 보리수가 익으면 혹시나 손주들 누가 이번 주에 와주지 않을까 싶고 예쁜 꽃만 새로 피어도 자식들과 함께 보고 싶고 그렇더구나.

각자의 인생을 편케 살자고? 기다리지 말고 마음을 바꾸시라고? 그래! 그게 아마 정답일지도 몰라.

그런데 너희들도 곧 함께 늙어간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좀 더 이해가 될거야. 지금도 다들 잘들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요즘 딸들과 며느리들에게 부탁해 보는 어느 노친네의 바람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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