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특별자치시 해밀동(동장 강인덕)이 개소 이후 첫 행사인 나눔장터 ‘해주자당근이지!!’를 오는 11일 해밀동 복합커뮤니티광장 등에서 개최한다.이번 행사는 주민간 교류와 소통, 자원순환의 장을 위해 마련했으며 천막부스 24개, 돗자리 50여개 등이 설치돼 주민 누구나 자유롭게 물품을 나누고 거래할 수 있다.행사에는 연동면 주민자치회에서 쌀 600㎏을 후원하기로 했으며, 해밀동 교육·금융기관, 소상공인 등이 참여해 주민들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뜨개질 소품으로 행사에 참여 예정인 문소리·혜리 자매는 “행사소식을 듣고 30개 판
이 글은 《백제기악 로드와 K무대》[임시 제목] 책의 일부 원고입니다. 그 원고 가운데 일부라는 것을 밝혀 둡니다. ‘백제기악 로드’는 인도 불탑에서 발원하여 구자[굴지국]-돈황-남경-백제[공주와 부여]-일본[나량-평성] 등을 거치는 길입니다. 이 코스를 따라가며 그동안 잃어버렸던 ‘백제기악 로드’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글쓴이 주)지금까지 ‘기악’은 ‘10막짜리 무언 가면극’이 일반적인 이미지이다. 여기서 10막이란 1) 사자무, 2) 오공, 3) 금강, 4) 가루라, 5) 바라문, 6) 곤륜, 7) 역사, 8) 대고, 9) 취
호선무는 ‘백제의 춤’이지만, 지금은 사라진 장르이다. 원래 이 춤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나라[강국과 안국]의 것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수나라[581~619] 양제[재위 604~618]가 여러 부기部伎로 정비하면서, 문득 ‘백제 호선무’로 깜짝 등장시킨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얼마나 백제 호선무가 유명했기에 국제 무대까지 초대한 것일까? 본래부터 ‘백제의 춤’이 아니었는데 말이다.호선무는 지리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하여 동아시아까지 널리 보급되었던 것 같다. 시대적으로도 8세기까지 진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양수[1007~107
2019년 6월 9일 10시 숭덕전崇德殿[송산리 고분군 뒷문에 위치]에서 무령임금 제삿날 행사가 열린다는 초대장을 받았다. 무령 임금이 523년 음력 5월7일에 돌아가셨으니 1496주년이 되는 셈이다. 축하를 올리는 의미는 4국[백제·고구려·신라·가야] 시대에서 무덤과 국기일國忌日[임금이나 그 아내가 돌아가신 날]을 제대로 아는 것은 무령 임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 족보가 뚜렷한 것이다. 최근 각 지자체에서는 자신의 문화콘텐츠로 색깔이 있는 축제Festival을 찾아내고자 고심하고 있다.그런데 대체적으로 그 ‘족보族譜’가
서역의 불교기악 공연무대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이입한 초창기 단계인 서량과 북·위시대와 중간 단계인 초당과 성당시대 그리고 중국화된 최종적인 단계인 중당 이후의 시대 등으로 구별할 수 있을 듯하다.1 서량과 북·서위 시대이 시대는 인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입은 시기로 ‘악사 1인 시대’라고 할 만하다. 북량[401~439] 시대에 조영된 막고굴 275굴 천궁기악, 북위[386~534] 시대의 345굴 천궁기악, 서위[535~556] 시대의 249굴 천궁기악과 285굴 화생기악 등이 좋은 보기이다.북량 막고굴 275굴 천궁기악서위 막고굴
3 가지 백제궁중기악 가운데 마지막으로 궁중기악 3 가지를 설정하여 선보이고자 한다. 다만 왜 이러한 설정이 가능한 것이지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이 이 글의 소임이다.백제기악은 당대 중국에 유행하던 ‘문화상품’이라는 점과 중국의 주변국의 기악 소위 4방악[동이, 북적, 서융, 남만]의 연악으로 흥성하여 백제기악의 궁중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백제기악은 당나라 중종[683~684와 705~710]에 이르러 음악 연주자들이 모두 도망하여 흩어졌다. 개원[713~741] 연간에 기왕범岐王範이 태상경이 되어 다시 아뢰어서 설치하였다
기악伎樂의 발견은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일본의 고대 연극사에서 중국에서 유입된 ‘대륙 악무’[반도국가인 백제에서 건너갔으나 대륙이라는 용어를 구태어 쓴 까닭은 무엇인가?]를 다음 3 가지 ‘기악’, ‘무악舞樂’, ‘산악散樂’ 등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후 한국과 중국으로 확장하여 결국 하나의 장르가 된 셈이다.그런데 그 기악의 출발점은 612년[일본 추고 20, 백제 무임금 13, 고구려 영양임금 23, 신라 진평임금 34, 수 대업 8]에 백제에서 미마지가 전한 것으로 삼고 있다.그 근거는 720년 간행된《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찾아
‘기악伎樂?재창조를?위한?시론’은?2001년?당시?심우성?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처음?‘기악의?재창조하기?위해?깃발’을?든?학술적?글이다.?결국?오늘날?‘가면극-무언극-마당극이라는?기악’을?재현해?내게?되었다.?‘일본기악의?역사’와?‘《교훈초》해제’?등에서?보듯?일본의?기악과?그들의?악서인?《교훈초》를?바탕으로?기악을?재현해내었다는?것을?알?수?있다.그런데?오늘날까지?풀지?못한?과제의?하나가?기악과?불교의?관계의?설정이다.?심우성이?일본의《교훈초》에?바탕을?둔?‘기악의?재창조’?이래,?‘기악은?부처를?공양하기?위한?가무’라는?사전적?정의는?거의?일치하고?있다.가령?송방송은《한겨레음악대사전》에서?“부처를?공양하기?위해?주는?가무.?일명?기악무”라고?하였고,?박전열은《한국민속예술사전:민속극》에서?“사
우리 공주는 ‘웅진백제수도’와 ‘한국최초의 구석기 발굴지’라는 ‘문화상품Trademark’를 가지고 있다.그런데 아직까지 포장하여 상품으로 내놓지 못하였다. 소위 인문학을 공부해왔던 사람Student로, 40년도 넘게 공주에 살면서 부끄럽고 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번에 공주시와 나라에서 ‘문화상품’을 출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이 그 상품의 이름이다.이 상품이 처음 ‘백제기악’으로 등장한 것은 2001년이었다. 당시 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었던 심우성 선생이 제안한 상품이었다.그러나
매년 백제문화제 때마다 백제기악을 올리게 된다. 공주와 부여는 각각 자기의 지역에서 공연하게 되는데, 그 주체는 공주는 '백제기악연구회', 부여는 '백제기악보존회'이다.이 백제기악은 대사가 없는 가면극[탈춤]이고 마당극 형태이다. 배우가 가면을 쓰고 마당에서 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형태의 백제기악은 심우성[객관적인 논리 체계를 위하여 선생 칭호는 사용하지 않기고 한다. 다른 사례도 이와 같다.] 즉 공주민속극박물관장이 일본에서 공연하는 기악에다가 양주별산대의 가면극을 섞어서 만든 ‘버전’이다. ‘심우성 버전’이라고 할 만하다.아래부터는 논의의 전개상 ‘심우성’의 영자 Sim-Useong에서 S를 써서 ‘S-버전’이라고 하겠다.S-버전을 만들기 위하여 심우성은 아버지 소민까지 동원하였다. 그
어머니께서 연출하신 프로그램에첫 주연으로 뽑아주신 것 감사하고 송구스럽다.주연 급 배우로서 제대로 연기를 못해서…방안에 커다란 거울을 달아놓아야 할 텐데길거리에서도 역할 연습을 해야 할 텐데다음날 아침에는 꼭 해가 떠올라야 할 텐데여전히 나를 잃어버리지 못 하고 있구나오늘도 출퇴근 시간을 지켜야겠다.
세종특별자치시(시장 이춘희, 이하 세종시)가 지난 8주 동안 운영해 온 제빵기능사반 교육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세종시 농업기술센터(소장 신은주)는 세종지역자활센터와 연계해 지난 10월부터 이달 16일까지 매주 화요일과 수요일 두 번씩 제빵기능사 자격 취득을 위한 단팥빵과 호밀빵, 모카빵 등 24종의 제빵 실습교육을 진행해 왔다.이번 제빵기능사반에는 22명의 교육생들이 수업을 들었으며 이 중 2명이 제빵기능사 필기시험에 합격했고 다른 교육생들도 현재 시험을 앞두고 있어 자격증 취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세종시 농업기술센터는 제빵기능사반 교육생을 대상으로 전북 완주군 등 로컬푸드 베이커리 사업장 견학을 추진하고 있으며, 앞으로 로컬푸드 매장에 납품할 수 있도록 세종시 농작물을 활용한 건강한
공산성은 ‘역사현장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백제 시대부터 고려, 조선, 일제 강점기 등을 거쳐, 오늘날의 역사 현장이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다.그 가운데 하나가 공산성 정문[진남루]에 자리한 서낭단이다. 여기서 ‘서낭’은 한자로 ‘성황城隍’이라고도 한다.이 서낭단도 물론 역사현장 박물관의 당당한 ‘식구’이다. 그런 식구가 집[공산성]에서 쫓겨날 번 하는 아찔한 일이 있었다.공주시 문화재과[041)840-8205]에 ‘화재의 위험 야기’와 ‘문화재 경관 저해’가 있으니 철거하라는 민원이 제기되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9월의 일이다.결국 공고를 한 뒤 2013년 9월30일에 없애기[철거]로 결정이 됐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예산 확보 등 행정적 관계를 밟은 동안에 오늘까지 자리를 겨우 지킬 수
지금 온 나라는 진도[해상 여객선 침몰 사고]에서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 슬픔에 싸여 있다.모든 생명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나밖에 없는 우주’이다. 희생은 ‘하나의 우주가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무서운 일이다.더군다나 아직 세상에 태어나 나라를 짊어질 마당에 있는 ‘젊은 우주가 사라진다’는 것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 더욱 마음이 무겁다.이것이 이번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의 희생에 대한 죄송스러움이다.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절대 미안함과 무한 책임감을 느낀다. 희생된 모든 영령들께 크나큰 명복이 있기를 빈다.이들과 비교하여 가벼운 일[생명보다 무거운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이지만, 나라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일 또한 엄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우리 지
필자가 초등[국민]학교에 다닐 때, 공주는 수학여행 코스였다. 당시 공주의 철교는 ‘전국적인 볼거리’의 하나였다.2014년 공주의 ‘전국적인 볼거리’라면 백제 서울[웅진백제]이던 유물이나, 유적일 것이다.우선 무령임금 무덤[무령왕릉>송산리고분]과 정지산의 무령임금과 내외분 빈전 터가 세트로 맨 먼저 떠오른다.교과서에서도 소개가 되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는 특별히 떠오르는 백제 서울의 역사가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떠오르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이 열광하는 ‘백제 불교의 전래지’가 있다.그런데 그곳은 부여이다. 그러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공주[웅진] 시내의 대통사는 어떤 존재인가?527년[일연의 해석은 529년]에 세웠다고 했으니, 우리나라 불
선거철이 왔나보다. 다음 대의 시장을 하시겠다는 분들의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우선 반가운 일이다. 공주시를 위하여 열심히 일해보시겠다는 ‘모수자천’이니 말이다. 동시에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 분들이 시장 후보의 자격이 있다고 자천하는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이러한 점에서 시장이 되려는 분들께 몇 가지 자가 검증 조건을 같이 생각하여 보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1) 복지시대의 리더십Leadership이 있는가?, 2) 그동안 ‘나’가 사회생활에서 ‘권리와 의무’를 나름대로 성실하게 지켰는가?, 3) 정말로 공주를 사랑하는지, 혹시 개인적인 명예나 욕심 때문은 아닌지?, 4) ‘공주’만이 가지고 있는 성격 규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등이 검증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위와 같
공주가 낳은 ‘민속학자’이며 ‘1인극배우’인 심우성 옹(81세)을 서울 관훈동 ‘푸른별 주막’ 문간방 ‘극단 서낭당’에서 만났다.처음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2014년 1월 5일 오후 12시 30분, 장소는 종로경찰서 앞이었다. 그러나 실제는 약속 시간보다 20여분 빨리 그 장소에 도착, 전화를 걸게 되었다.마침 앉을 만한 의자가 있어서 편하게 기다리게 되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두 아가씨가 다가와 “종로경찰서가 어디냐?”고 물었다. 외국인 학생이었다. 아가씨가 갈 때는 한국말로 “감사 합니다”라고 했다. 심우성 옹이 지금 머물고 있는 ‘푸른별 주막’은 인사동 바로 거기였다. 심 옹은 수염을 기르고,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1934년생이니 우리나라 나이로 81세이다. 그러니 당
아침과 저녁으로 계룡산이 보인다.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 내내 계룡산이 보인다.어디 외지에 갔다고 돌아올 적에도 맨 먼저 계룡산이 보인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저 눈만 뜨면, 계룡산이 보인다.우리 집 현관 문 앞에, 내가 사는 번영로 앞길에, 산성동 구 시장에 앞길에서도 계룡산은 찾아와 ‘안녕하냐?’고 묻는다.잠도 자지 않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혹은 화장실도 가지 않고, 내내 우리 공주 사람과 공주를 들리는 사람들을 맞이한다.이보다 반가운 일이 또 어디 있는가? 그런데 이러한 반가움을 우리 공주와 계룡산 주변 사람들은 잊고 살아간다.그저 계룡산은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만남’을 잊어버린다. 평상시 일상 속에서 ‘부모님의 은혜’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행위
‘윤회매’ 만들기 체험 학습 행사가 9일 오전 10시 한옥마을 세미나실에서 대덕중학교 학생 30명을 대상으로 열렸다.‘윤회매(輪廻梅)’는 영ㆍ정조 시대 북학파의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 선생이 초봄에 짧게 피었다가 사라지는 매화를 아쉽게 여겨 사시사철 보기 위해 특별히 창안했으며, 벌이 꿀을 채집하여 벌집을 만들고, 꿀이 밀랍이 되고, 밀랍으로 다시 매화꽃을 만드는 것이 불교의 윤회설, 상생설과 같기 때문에 ‘윤회매’라 칭하였다 한다.이덕무 선생이 윤회매를 만드는데 편리한 방법을 엮어 청장관전서에 ‘윤회매십전’을 저술하였으나, 그 후 맥이 끊어진 것을 2004년 청암 오문계 선생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 공주 한옥마을 공예공방에서 그와 후학들에 의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겨울비가 내리는 가운데 진
이 글은 9월 26일 오후 6시 30분부터 40분까지 10분간 KBS 대전 방송총국 ‘생방송 대전입니다’에서 방송한 내용입니다. 진행은 박명원 아나운서이고, 출연자는 한국풍속문화원 구중회 원장/ 편집자 주. 1. 지역에서 가장 큰 행사가 바로 백제문화제이고, 해마다 개최되고 있는데 백제문화제를 여는 뜻은 무엇인지, 어떻게 짚어볼 수 있을까요?“ ‘백제문화제’란 ‘백제의 문화를 기리는 축제’이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백제문화제’란 ‘백제’라는 ‘시기’와 ‘지역’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어 오늘까지 계승되는 문화적 유대감과 내용을 가지고 공동체를 모색하는 잔치라고 할 수 있다.여기서 ‘백제’는 ‘웅진백제시대와 사비백제시대’를 묶은 의미다. ‘문화’란 도구와 함께 인간의 고유한 특성인데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