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역의 불교기악 공연무대는 인도에서 중국으로 이입한 초창기 단계인 서량과 북·위시대와 중간 단계인 초당과 성당시대 그리고 중국화된 최종적인 단계인 중당 이후의 시대 등으로 구별할 수 있을 듯하다.
1 서량과 북·서위 시대
이 시대는 인도의 직접적인 영향을 입은 시기로 ‘악사 1인 시대’라고 할 만하다. 북량[401~439] 시대에 조영된 막고굴 275굴 천궁기악, 북위[386~534] 시대의 345굴 천궁기악, 서위[535~556] 시대의 249굴 천궁기악과 285굴 화생기악 등이 좋은 보기이다.
북량 막고굴 275굴 천궁기악
서위 막고굴 249굴 천궁기악
이 시대는 현실적인 기악공연이 아니라 천궁 즉 불국토를 상정한 것으로 1악사 1악기의 공연이 중심이 된다.
2 초당과 성당 시대
이 시기는 이전과 같이 1악사 1악기 시대의 공연무대가 아니라 다중악사가 한 자리에 모이는 공연무대로 발전한 경우이다. 초당[] 시대의 막고굴 220굴의 서방정토과 동방약사 경변의 보살기악, 성당시대의 막고굴 172굴 아미타정토 경변의 보살기악이 좋은 보기이다.
그림에서 보듯이 악사들이 한 자리 혹은 두 자리에 모여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대화가 진행된 것을 알 수 있다.
3 중당 이후 송원 시대
중당시대 이후 송·원시대까지 이루어지는 공연무대이다. 악사와 무용수 그리고 기도자가 한 자리에모이는 무대이다. 중당 막고굴 112굴 부모은중경 경변의 무악이 좋은 보기이다.
중당 막고굴 112굴 부모은중경 경변의 무악
만당시대의 막고굴 156굴 부모은중경 경변의 무악공연을 보면, 각각 독립된 무대를 세 무대가 앙상불을 이루고 있다.
만당시기에 오면 기악이 일상생활에 공연무대가 된다. 무용수와 가수 등이 한 무대에서 공연하는 고구려류의 기악공연이 보이는 시기이다.
4 백제궁중기악의 공연무대 설정
백제궁중기악이 중국과 교류를 공식적으로 맺기 시작한 것은 중국 남북조의 시대라면 한성백제부터 웅진백제와 사비백제로 이어진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동진에서 침류왕 원년인 384년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시기가 한성백제시대에 해당한다.
무령왕릉에는 지석이 발견되었는데, 그곳에는 연대기 예를 들면 무령왕과 왕비의 태어나고 죽은 간지가 남송 원가력으로 증명되었다. 역시 한성백제시대이다.
이 시기에 백제궁중기악이 유송으로 들어갔다는 중국사서의 기록이 등장한다. 이후 백제궁중기악은 577년 북주의 국기國伎가 되어 수의 문제시기인 588년에 악부樂部에서 제외될 때까지 맹위를 떨쳤다. 당 시기에는 14국악으로 추천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백제궁중기악의 공연물을 설정할 때 돈황석굴 경변상의 시기와 비교할 제2단계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무대를 활용한다면 새로운 지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