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새바위

 “‘황새바위’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의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주택이 세워져 있는 곳에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소나무가 이곳에 왕성한 까닭에 황새들이 많이 서식해 ‘황새가 많이 서식하고 있는 바위’라고 하여 이름을 ‘황새바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학죄인들이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 죄인들은 목에 항쇄(목에 씌우는 칼)를 차야만 했는데, 공개처형을 하는 날이면 항쇄를 찬 채로 끌려와 이곳 바위근처에서 공개 참수를 당했기 때문에 이곳을 ‘항쇄바위’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이래서 제민천 처형지 부근을 점차로 ‘황새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곳은 맞은편인 공산성에서 잘 보여 공개처형이 있는 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처형장면을 보았다고 전한다.

공주는 100여 년 동안 천주교도들이 순교한 장소로, 신유박해(1801년)부터 시작하여 이존창 루도비코 및 이국승 바오로 사도 등 8명이 참수됐다. 기해박해(1839년)에는 전 베드로가 처형됐다.

또한 병인박해(1866년) 때에는 약 1,000여명이 순교한 것으로 추정되며, 순교의 역사는 기묘년(1879년)까지 계속되는 등 공주는 천주교 4대 박해와 함께 100여년 순교역사의 현장이다.

황새바위가 있는 공주는 조선시대에 충청감영이 있었기 때문에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자료조사를 통하여 발굴된 순교자는 총 337명으로, 이는 한국 최대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공주지역의 순교터 및 교우촌 성지의 시작점이자, 끝점으로, 공주지역의 순교성지는 참수터였던 황새바위 순교성지와 교수형 터였던 향옥(환옥), 우진영터, 감영터, 장깃대 나루, 공주중동성당이 있다.”

당시 신문은 매질 등의 고문으로 매우 잔인하게 행해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심이 굳건한 신도들은 끝까지 배교를 하지 않았다.

이러한 장면은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 자세히 묘사돼 있다. 이러한 종교박해관련 순교이야기는 이상원이 공주대학교 문화유산대학원 활용전공 석사논문에서 공주천주교 성지의 공간별로 분류해 발표한 만큼 이를 토대로 극(劇)을 통해 재현해 낸다면 신심을 키우는 것은 물론 많은 감동을 줄 것이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