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이 드디어(?) 수의(壽衣)를 입었다. 곧 철거가 진행된다는 의미다.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이 112년의 생을 마감해야 하는 순간을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자연적으로 스러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에 의해 부서져 저승으로 가야 하는 비극적인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얼마나 두려울까?

역사의식이라고는 쥐뿔도 없지만, 입만 열면 역사와 문화를 운운하는 무지막지(無知莫知)한, 못된 후손(爲政者)을 만나 저세상으로 가야만 하는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을 보니 절로 눈물이 나온다.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의 동갑내기로, 1910년에 설립된 ‘공주자혜의원(公州慈惠醫院)’이 모태가 된 구 공주의료원은 이미 몇 해 전에 먼저 이 세상을 떠나야 했다.

공주의료원이 금성동으로 이전함에 따라 비어 있게 된 구 공주의료원을 오시덕 전 시장이 “활용하겠다”라고 밝히자 벌어진 참극이었다. 마치 임진왜란의 당시의 상황이 재현된 것 같았다.

김정섭 시장은 그런 일에는 무척 용감(?)했다. 취임 후 몇몇 사람을 내세워 마치 대다수 시민의 의견인 것처럼 포장해 110여 년의 역사를 바람과 함께 사라지게 만들어 버렸다.

“뱀의 소굴에 손을 넣을 때는 네 손을 넣지 말고, 남의 손을 넣어라”라는 마피아 어록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는 “공주목을 재현하겠다”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지만, 죽은 역사를 재현하기 위해 살아있는 역사를 죽여 버렸다는 비판은 앞으로 영원히 비켜 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고 보면 공주의 근대의 두 동갑내기는 비슷한 시기에, 같은 저승사자(?) 같은 역사문화예찬론자를 만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됐다. 다음 차례는 호서극장이 기다리고 있다.

이미 공주는 선교사 가옥, 제일은행, 공주엽연초생산조합, 구 공주의료원 등 근대건축물을 잃었다. 그리곤 그렇게 한 것을 지금껏 후회하고 있다. 비극적 역사의 한심한 도돌이표다.

이제 또다시 후회해야 할 일을 공주시에서 앞장서서 벌이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공주시민을 보면서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

그 많던 공주의 역사문화예찬론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고상한(?) 분들은 굴삭기 한번 들이대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역사에 대한 살인을 눈앞에 두고서는 왜 침묵할까?

한 사람을 죽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지만, 110년이 넘은 역사를 허물면, 수많은 사람의 추억과 애환이 사라진다. 살릴 수 있는 110여 년의 역사를 도대체 왜 안락사 시키려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 기획실장 출신의 김정섭 시장은 더 이상 역사에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구 공주의료원을 부순 것 가지고도 공주시민들의 원성이 충분하지 않나.

김정섭 시장의 스타일을 알기에 크게 기대하진 않지만, 이쯤에서 멈추어 주길 바란다.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을 부수는 순간 더 이상 구 공주(아카데미)극장이 아니다.

1930년대 지어진 풀꽃문학관도 많은 돈을 들여 원형을 살렸다. 김정섭 시장은 더 이상 제발 역사에 죄짓지 말기를 바란다. 110여년 의 역사를 이렇게 두 번씩이나 안락사시켜서는 결코 안 된다.  (관련기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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