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호서극장
아카데미극장 매표소

그때는 그랬다. 기자가 어렸을 때는. 야외에서 천막을 치고 영화를 상영하는 가설극장이 있었다. 기자가 살았던 곳에서는 중장리 오미방앗간 옆 공터에 천막을 치고 영화를 상영했다.

장소가 결정되면 가설극장을 운영하는 팀원들은 마을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고, 초대권을 주고, 차를 타고 다니며 방송을 통해 가설극장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렸다.

그 때 봤던 영화가운데 기억에 남는 영화는 ‘의사 안중근’ 이었는데 도로 양옆에 남자와 여자가 권총을 서로 던져가며 사격전을 벌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무협영화도 기억난다. 주인공인 여자 무사는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강에서 통나무를 타고 상대방과 싸우는데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당시 목사님이 운영하시던 하대리 유치원에서도 영화를 보여 줬는데 어린 마음에 외국인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지껄이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장면을 보고서 영화를 괜히 보러왔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십자가를 볼 때마다 그때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1980년대 기자의 기억엔 공주에 극장이 세 개 있었다. 중앙극장, 호서극장, 아카데미극장 이렇게. 그 가운데 중앙극장은 중동4거리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건물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그 가운데 아카데미극장과 호서극장은 건물이 남아 있다.

당시 극장은 ‘다목적 문예회관’이었다. 평소에는 영화를 상영하지만 의식행사가 있을 때는 의식행사를, 연주회가 있을 때는 연주회를, 명절 때

나훈아, 정윤희가 주연한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포스터.

가 되면 가수들이 리사이틀을 펼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구경을 했다. 중앙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는 외국영화였는데 정말 재미없었다. 액소시스트 영화였는데 재미가 없어서 끝까지 보지 않고 나왔다.

고등학교 재학당시 시험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이들 극장에 단체관람을 할 수 있도록 해서는 허락된 일탈감(?)을 잠시 맛보기도 했다.

그때 봤던 영화로는 ‘데드 쉽’, ‘취권’ 그리고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 입체영화도 있었다.

입체영화는 무협영화였다. 안경을 쓰고 보는데 주인공이 칼을 던지니 꼭 그 칼이 나를 향해 달려 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엔들리스 러브’도 봤는데 몰래 본 것인지, 단체 관람한 것인지는 헷갈린다. 당시 극장에서는 동시상영도 했었다. 심지어 어떤 극장에서는 3개 프로까지 동시상영을 했던 적도 있었다.

추운 겨울날 동시상영을 보러 가면 난로를 둘러싸고 10여명 정도가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극장 안을 돌아다니며 땅콩 등 먹을 것을 팔던 사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호서극장 근처에 가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농협 공주시 지부에 근무하고 있는 배양환 팀장이다. 1981년 제27회 백제문화제기간동안에 극단 ‘함성 그 후’는 호서극장에서 ‘이대감 망할대감’을 공연했다.

이 연극에서 배양환 팀장은 머슴 배역을 맡아 공연도중 소변을 보는 장면을 연기했는데 기가 막히게 실감나는 연기를 보여줬다. 무대 뒤를 보고 진짜로 소변을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소변을 한참동안 본 뒤 몸서리를 치는 장면까지. ‘연기’가 아니라, ‘실행’을 하고 있었다. 오줌 줄기도 굵었고, 오줌발도 거셌다. 관객들은 이런 그의 공개적인 몰상식한 행위에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나중에 물어봤더니 “연기 때 진짜로 오줌을 싸려고 소변을 계속 참으며 물을 먹어 댔다”는 것이었다. 나는 배양환 팀장을 연기를 보면서 실로 경악했다.

내가 아는 그 친구는 남들 앞에 나서서 그렇게 연기를 할 수 있는 성격을 지닌 친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성적인 친구로 기억했는데…. 그날 이후 배양환 팀장은 더 이상 내성적인 친구로 기억되지 않았다.

일부에서는 “아카데미 극장을 복원해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나는 반대다. 향수(鄕愁)는 향수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초가집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는 것과, 그 향수를 잊지 못해 다시 초가집에 들어가서 사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추억을 떠 올리며 향수를 느껴보는 것. 거기까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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