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다. 공주 우금티에서 1894년 11월 8〜9일(음력)에 있었던 동학농민군이 관군 및 일본군과 치른 전투가 있은 지 125여년만인 2019년에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을 개정하면서 법정기념일이 된지 2년이 됐다.공주에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일이 법으로 규정되기 이전에도 민간단체인 사)동학농민전쟁우금티기념사업회에서 1987년 11월 처음 추모제를 올리기 시작한 후,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이 되던 1994년부터 기념식을 개최해 왔다.이와 같이 동학농민혁명 희생자 추모제나 기념식이 오
하얀 수의를 입고형장의 틀 같은 의자에 앉아머리 숙인 채 목을 내 놓는다 TV에서 흘러나오는 이방인들의이야기를 듣는 얕은 수면에 들면양날의 겹치는 금속성에오랜 날들의 그림자가 한 올 한 올 잘려나간다 이발소의 의자에 앉으면잘라낼수록 자라나는힘들게 달려온 과거의 흔적들이저항 없이 잘려 발아래 눈물처럼 떨어진다 회한의 하얀 거품이 묵은 때를 덮고섬뜩한 면도날이 차갑게목덜미에 예고 없이 닿으면눈을 감고도 생시처럼 문밖이 보인다.
더위에 녹아 비틀거리는지쳐버린 장날의 보따리들이주섬주섬 묶어질 무렵이면순대국밥 집 목로에막걸리로 목을 축인 목숨들이흥건하게 번지는 냄새 속에빈 젓가락질이 빨라진다 저승길에서 가까스로 도망쳐온목발의 아저씨가힘겹게 문턱을 넘어 서서는푹푹 찌어대는 더위에고기 한 첨에 술 한 잔 채워보자고불거진 혈관을 내보인다 이미 죽어서 누운 돼지의 살점을 베어서비릿한 새우젓 장에 찍어 먹는오일장 순대국밥 집 골목에 가면뜨겁게 달구어진 양철지붕 아래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무거운 보따리처럼 서로 부대낀다.
무엇을 먹을까무엇을 입을까무엇이 되어 남을까 지쳐 누워야 하는 밤이 깃들면녹녹히 젖어 드는 가난한 생각이달빛 흐린 어두움의 언덕을숨차게 오른다
한 뼘 나의 창 안에새 한 마리 기르며 살까보다 날마다 날아갈 수 있는 희망과날마다 걸을 수 있는초롱초롱한 눈이 빛나는 새의인내를 닮아 살까 보다 언제 어디서나붉은 피 섞인 노래를 부르는 새의간절한 기원을 좇아 살까 보다 삶의 절벽에 끝내는껍질 같은 욕심도 덤불 같은 아픔도미련 없이 물어다 버리는 새의용기를 익히며 살까 보다 하늘과 땅가차 없이 버려진 생명의 가뿐 숨소리까지작은 가슴으로도 보듬어 줄 아는 새의깊은 사랑에 빠져 살까 보다.
모두가 잠든 시간하얗게 밤 밝히는불면의 밤이하나씩 켜지고밤새 소쩍새 울었던가내 안의 울음 들었던가어디선가 무더기로 토해내는시간의 하얀 포말유년을 돌아너 어디메쯤 와 있느냐묻기도 전에부드럽고 달작했던 향기 사라지고질긴 근육질의 무신경만 내 몫인데어쩌자고 불면의 밤이이리 환할까.
봄밤은 길어뒤척이다 신발 꿰어 나왔는데꽃, 달보다 환하다 보라색을 좋아하면친정이 못 산다는데늘 걸려하며보랏빛 한복을 즐겨 입던엄마는외가가 몰락한 뒤그 옷들을 장롱 깊숙이 감추었다 엄마의 짧은 한숨이 되어 버린저 빛깔이이 밤왜 이다지 짙은 향기로다가올까이슬 품는 달밤의 꽃에는아득하다엄마의 젊은 날.
푹푹 찌는 더위에도거센 모래 바람에도 그냥 묵묵히걷기로 했다 물 한 모금 건네지 않는매정한 사막이지만 운명처럼 그냥사랑하기로 했다 달이 뜨면 달빛과별이 내리면 별빛과 친구가 되고도반이 되고 너무 힘들면하늘 힐끗 쳐다보고 그래도 힘들면땅도 한 번 내려다보고 두 눈 껌뻑이며길을 떠난다. 이정표 없는 사막그대는 나를 타고 나는 그댈 위해하염없이 걷는다. 인연에 의해주어진 숙명이라면 이 생의 인연이끝이었으면 좋겠다. 등 위의 그대는아시는가, 모르시는가.
절에는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는 말이 전해집니다. 인연대로 맡겨 두라는 말이겠지요. 가려는 사람 억지로 잡아도 반드시 가고, 오려는 사람은 그 누가 막아도 기필코 온다는 말일 것입니다.사람 대신 말을 바꾸어 업으로 바꾸면 의미가 더 선명해 집니다. 우리가 지은 업은 반드시 다가오고, 다가온 업이 다하면 가지 말라 억지로 붙잡아도 기필코 미련 없이 가버립니다. 지은 공덕이나, 복덕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짓고 내가 받기에 선업 쌓기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 입니다.살다 보면 무언가 안 될 때 “에이 절에나 들
제자가 꺼내 놓는불륜의 사랑안 된다, 말해 놓고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는외로움 한 다발 받는다 유난히도 많이 휜 동백가지마디마디 내지르는 방황,가지 끝에동백꽃 한 송이저 꽃 하나 피우러저리도 휘며 갔을까 그녀의 끝에 달려 있는아슬한 그 꽃아름답다 말하고 싶은이놈의 심사心事.
강은 울지 않는다 해질 녘,온 강물을 물들이는 노을이눈물겨운 것은강이 울지 않음으로 내가 서러운 것이다 역사의 강에 아들을 저승으로 보내며울지 않는 어머니 때문에 딸들은 더 서러웠다 밤마다 초롱불이 다 할 때까지버선을 짓던 어머니들이빨랫감을 강물에 풀어 헤칠 때강물은 말없이 깊어 갔다 빨래를 이고 돌아오는어머니들의 등은 굽어지고그럴수록 살가워지던 속내를노을 속에 속살처럼 부드러운강을 보니 알겠다 강은 당신들의 설움을 먹어 시립도록 영롱하다.
으스스한 몸살로드는 나잇살움을 틔워야 했던그 겨울의 긴장한바탕 앓으면바람의 손으로 키워진꽁꽁 언 땅 푸른 싹은종달새 알을 까는넉넉한 품으로 넘실대는가 다시 열리는 들판탱탱히 영그는 볼마다녹녹지 않은 시름들이땀방울을 달고하늘을 우러르면 한해의 반이 슬며시곁을 지나 서리로 내려앉는투명한 허무 한 자락이사그락사그락들판을 점령하고 있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는 환하게 웃는 웃음이 필요하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국민들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고 그만큼 여유로운 생활이 되지 않으니 모두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나름 생계가 막막해지고, 사업이 앞이 안 보일만큼 어렵고, 나라 안팎의 사정 역시 별스런 희망이나, 용기 있는 지혜로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고 나서는 출격 장부도 보이지 않는다.삼국유사에 보면 통일신라기에 경흥국사가 공주에 살았다. 원효대사 다음 갈 정도로 다양한 저술을 하신 분이지만, 남아 있는 서적은 별로 없다.스님은 워낙 뛰어 난 인재이다 보니 왕이
왜 우리는 “부처, 부처” 노래를 하며 자기 자신이 청정부처인줄 모를까. 왜 우리는 관세음보살 염불은 하며 자기가 관세음인줄 모를까.왜 우리는 문수 보현보살이 우리가 아닌 다른 이라 알고 있을까. 왜 우리는 가섭 아난 목련등이 3000 년 전 사람이라 생각할까.왜 우리는 영산회상이 인도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왜 우리는 극락과 지옥이 죽어서만 가는 곳이라 여길까.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세상에 최고의 존재임을 잊고 살면서 남의 말과 가르침에는 의존할까.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이 우주에서 최고로 존엄하고 절대평등 한 귀중한 존재
뭉개구름 선연한 날 땅바닥에 귀 대어 보면기다린 적 없었던 사람들이기적소리 울리며지나간 시간의 기차를 타고 온다 내 삶에 순간순간 같이 했던 사람들역마다 내리고 빠르게 지나며안부 묻지 못한마음 칸칸 기억의 얼굴들모두가 웃음으로 찾는다 번지 없는 그리움이마음 가득한 봄날에묻는 근황.
해질 녘 여름가시지 않은 더위를 가르며기계로 잔디를 깍는다방아깨비 여치 개미 거미 벌들이정신없이 튄다어느 구석진 자리자리저리 많은 생명들 살고 있었나 이튿날, 튀지 못한 민들레땅에 착 붙어 꽃대를 밀어 올렸는데그때, 피난가지 못한 역사 속 할머니들은만삭의 며느리와납작하게 숨어 씨를 받았지 어떡하든 살아남아야 했던고단한 세월이한숨으로 피어날 때마다 씨들이 날아세상 속에 박혔지그래서 우리들이 있지그래, 숨어라견뎌라살아라.
단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궁금했을 뿐이지요 단지 키가 작아나무 위에 올라 간 것 뿐이지요 그러나 단지가 아니지요그렇게라도 예수를 보려던 그 마음이예수님을 멈추게 했지요 성화는 자캐오를 안은 예수님이 문에 서 있습니다어린아이처럼 놀란 자캐오가 예수님께 매달립니다문 안은 어둠이고문 밖은 흰색으로 환합니다그 밑에 사람들의 야유가 어둡습니다 당연하지요당연하지요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은어렵고도 어렵지요같은 유대인을 할킨 자캐오를 어떻게 예수님처럼 안아 줄 수 있겠어요사람들은 어둠에 싸여 서로를 보지 못하지요 자케오는 마음보다 먼저 말
이른 봄먼 산 설핏설핏 눈냇물건너 야트막한 마을에저녁연기 피어오르던 외가고샅길로 흐르는 물 연신 틀며숙모 물동이 이고들어서는 그 길 토담 밖 망울진 산수유틀어내는 물방울 따라같이 터지던 이제는 가도 없는내 속에만 살고자라지도 않는그걸 먹고 내가 자라는그 풍경.
‘저 하늘에도 슬픔이’ 단체관람하던 날영화 속 윤복의 설움이가슴 가득, 이유 없이 내 삶도 시린열 네살 오후 갑자기 집 그리워한걸음에 달려 간 집아, 설풍 한 자락 깔고 앉아어머니 마루에 앉아 다듬이질 하신다꽃무늬 저고기, 진보랏빛 치마꽃브러찌 달고 설익은 봄이어머니 가슴으로 먼저 와발그레 얼굴 붉히며‘유행지나 버리기는 아깝고’ 이제는 팔십오랜 시간 침상에 누워허공만 본다갈라진 머리칼/아직도 내 마음에선어머니,눈부신 등불을 켜는데.
사내는 오늘도다리위에 널부러져 있다사내의 집에서는 팔순의 노모가옻 잎을 삶고 있겠지 이른 새벽 노모는 아픈 다리를 끌며지나는 내 차를 세웠다.산에서 딴 이슬마르지 않은 푸른 잎을 가득 안고옻 잎이라 했다먼 곳에서 옻칠한 가구만 보아도온 몸에 열꽃이 피는 친정엄마를 닮은 내가안절부절 못하는데 자식도 아내도 버리고 간알콜 중독자 아들을 위해사내의 어머니는차 뒷좌석에 옻 잎을 놓으며아들 외에는 마음이 없다/노엽기도 하고감동되기도 하고 자식이라면 일상의 규범 밖인어머니를 이길 수 없어가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