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끈적끈적 달라붙는 일상을 밀치고 여행 속으로 훌쩍 뛰어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조그만 결단이 필요하고 준비가 있어야 한다. 그야말로 여행은 일상의 탈출 그 자체이고 낯익음 모드로부터 낯설음 모드로의 전환이다.

약간의 일탈과 낭만과 출렁임과 넘쳐남과 과소비를 감당해야만 한다. 시간과 돈과 건강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 현실적 손실이 따른다는 말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여행을 자초하는가? 반복되는 지리한 일상의 소중성을 발견하기 위함이고 무엇보다도 자아 성찰을 통한 자기 발전을 꾀하기 위함이다.

작은 투자와 손해를 감내하여 보다 많은 소득을 내고자 하는 데에 여행의 근본 목적이 있다. 떠남 자체가 변화이고 돌아옴도 변화이고 그 이후도 변화이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자는 것이 정작 여행의 숨은 목적이리라.

이번에도 떠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실크로드 여정이 고달프다고 알려져 중도에 포기하려는 동행자가 나왔고 나만 해도 처리해야 할 인생잡사들이 많았고 소화해야 할 일정들이 수두룩했다.

떠나는 전날까지만 해도 두 차례의 외부 강연이 있어서 허둥지둥 짐을 꾸리고 새벽차를 달려 인천공항을 찾았으니 말이다.

쉬고 싶었다. 일상에서 피곤했고 쉬지 못했으므로 떠나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몸이 쉬고 싶었고 마음이 쉬고 싶었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면 더욱 고달프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비록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상쾌했고 정말로 휴식다운 휴식을 취했고, 정신의 재충전이 가능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번에 만난 중국은 중국 가운데서도 가슴부분에 해당되는 중국이다. 그동안 문학작품에서나 그림에서 보던 중국은 약간한 황당무계하고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번에 만난 중국은 만주 지방이나 북경 부근의 황막함과 밋밋함, 그리고 계림의 그 오밀조밀함을 넘어서 광활함과 기기묘묘한 자연의 실체를 숨김없이 보여줬다. 비로소 그동안 보아왔던 중국의 그림과 문장들이 이해되는 듯싶었다.

정작 중국은 서정적이기보다는 서사적인 느낌을 주었다. 스멀스멀 잊혀진 이야기, 잊혀진 문장들이 도막도막 떠올라 차라리 피곤하고 성가셨다.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문장, 소동파(蘇東坡), 동기창(董其昌)의 문장들이 절로 가슴에서 솟아올랐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은 당나라 시절, 관리를 뽑아 쓸 때 들이대던 기준이다. 그 말이 아직도 유용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징그러운 중국이다.

대뜸 소이부답(笑而不答)이라든지 비류직하삼천척(沸流直下三千尺- 흘러내리는 폭포가 삼천척이나 된다),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 흰 머리털이 삼천장이다)과 같은 이백의 과장이 실감나고, 당명황(唐明皇)과 양귀비(楊貴妃)의 목욕탕이 남아 있는 화청지(華淸池)에서는 해어화(解語花-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꽃, 뒤에 기생을 이르는 비유가 되었다)라는 말이 떠올라 황홀한 느낌이었다.

황하나 음마대협곡, 황하석림에서는 중국인의 몽환과 허장성세와 스케일을 곧이곧대로 믿어줘도 좋을 듯, 소동파의 시중유화(詩中有畵-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화중유시(畵中有詩-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가 이해되고, 동기창의 화론에 나오는 독만권서(讀萬卷書- 만권의 책을 읽고)하고 행만리로(行萬里路- 만리를 여행하고)하고 교만인우(交萬人友- 만 사람의 벗을 사귀어라)의 권고가 실감났다.

중국의 미인으로는 앞에서 말한 양귀비와 서시(西施), 비연(飛燕), 초선(貂蟬), 왕소군(王昭君)을 든다. 경국지색(傾國之色― 나라를 기울게 할 만한 미인)이란 말은 멀리 한나라 무제 때 이연년(李延年)이란 사람의 시에서 연유한 말이다. (北方有佳人/ 絶世而獨立/ 一顧傾人城/ 再顧傾人國/ 寧不知傾城與傾國/ 佳人難再得 ―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하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다네.)

육덕이 좋아 글래머였다는 양귀비. 일설에는 서역인과의 혼혈이라는 말도 있다. 본래는 임금의 아들 수왕의 비였는데, 아버지가 아내로 가로챘다니 오늘로서는 아무래도 요령부득인 얘기다.

서시는 오월동주(吳越同舟)에 나오는 인물로 월나라 구천(勾踐)이 오나라 부차(夫差)에게 미인계로 주어진 여인인데 폐병환자로 오후시간이면 새하얀 볼에 열이 올라 발그레해지고 기침을 할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는 걸 보고 궁 밖의 여인네들이 따라서 했다니 그제나 이제나 여인네들의 유행병이란 것의 대단함을 말해준다.

또한 비연은 한나라 성제의 황후로 몸이 가늘어 사람의 손바닥 위에서도 춤을 추었다 해서 작장중무(作掌中舞)란 말을 낳았다니 이 또한 과장의 극치다.

그런가 하면 초선은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인물로 후한 말기 사도 왕윤(王胤)의 가기(歌妓)로 주인의 뜻에 따라 여포와 동탁 사이에 끼어 동탁을 죽게 하고, 끝내는 여포까지 죽게 한 비운의 여인이다.

선녀처럼 아름다웠으나 목 부분에 흉터가 있어 그것을 가리기 위해 오늘날 목까지 가리는 중국 여인 복장이 나왔다 하니 이 또한 믿을 만한 얘긴지 아닌지 모르겠다.

가운데서도 우리들 마음을 가장 애닯게 하는 여인은 왕소군이다. 그녀는 전한(前漢)의 원제 후궁이었으나, 흉노와의 화친전략으로 흉노 왕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살다가 돌아간 여인이다.

이 여인의 슬픈 생애를 이심전심으로 받아들여 시작품으로 남긴 사람은 또한 당나라 측천무후 시절, 좌사 벼슬을 한 동방규(東方虬)란 사람인데 그의 시 「소군원(昭君怨)」에 나오는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하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이란 문장은 지금도 우리가 봄마다 꽃샘추위 때면 한 차례씩 되뇌이고 넘어가는 세월의 탄식이기도 하다.

도대체 우리 것 가운데 얼마만큼이 중국 것이란 말인가! 극복의 대상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수렴되거나 동화되기도 고란한 중국. 그 앞에서 여행자는 끝없이 어리둥절해지고 만다.

‘갈수록 태산’이란 말 또한 중국에서 비롯된 말이고 ‘한 고비 넘겼다’는 말도 고비사막 길의 고달픈 여행길을 우리들 인생의 고달픔에 비긴 말이다.

사람 나이 칠십을 보통 고희(古稀)라 그러는데 이 말 또한 중국의 시성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란 시의 한 문장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사람 나이 칠십은 예부터 드문 일이다)에서 슬쩍 빌려온 말이 아닌가 말이다.

중국은 땅도 넓었지만, 나무도 크고 햇빛도 두껍고 무겁고 바람 또한 키가 크고 힘이 셌다. 입을 틀어막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떠나라고, 떠나라고 윽박지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자욱한 먼지바람 속에 이백이나 두보의 웅혼(雄渾)한 시심을 맛볼 수 있었던 건 벅찬 감격이었다. 아, 그들의 시가 이런 풍토 속에서 배태되고 자란 것이었구나. 내 진작 이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때 만시지탄(晩時之歎)이란 말이 저절로 터져 나오는데 이 또한 중국의 문장이니 도대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탄식에 탄식을 거듭했던 이번 여행길. 두보의 시와 함께 탄식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나름 위로가 되었다면 다행이었을 것이다. 

나라는 망했어도 강산을 그대로여서(國破山河在)/ 성에는 여전히 봄이 오고 초목은 우거졌구나(城春草木深)/ 시절을 한탄해서 꽃에도 눈물 뿌리고(感時花濺淚)/ 한스러운 이별에 새소리에도 놀라는 마음이여!(恨別鳥驚心)// 봉화는 연달아 석달을 꺼지지 않고(烽火連三月)/ 집에서 오는 편지는 만금보다 귀하구나(家書抵萬金)/ 흰머리는 빗을수록 더욱 성글어져(白頭搔更短)/ 이제는 비녀조차 꽂을 수 없게 되었네그려.(渾欲不勝簪)

― 두보「춘망(春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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