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일정은 우선 중국 서안(西安)으로 가서 거기서부터 돈황(敦惶)까지 난주(蘭州), 무위(武威), 장액(張掖)을 거치는 코스였다. 지도로 보면 별로 멀지 않아도 실지로는 매우 먼 거리였고 고달픈 행로였다. 일행을 인솔한 김광섭 대표의 말에 따르면 교통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노라 말한다.

국제선과 국내선으로 비행기 타기 네 차례, 조랑말 타기, 낙타 타기, 양가죽배 타기, 보트타기, 배터리차 타기, 자동차 타기, 케이블카 타기가 그것이었다. 서안에서는 말로만 듣던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 갱(坑)을 둘러보고 그 규모와 물량에 기가 눌렸다.

북경의 이화원 인공호수라든지 자금성, 명십삼릉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중국 사람들의 스케일과 허장성세는 이해 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진시황의 병마용은 그보다 훨씬 정도가 넘쳐 차라리 진저리가 쳐지고 눈을 감아버리고 싶어진다. 그보다는 뒤에 본 한나라의 병마용이나 출토물이 자그마해서 정감이 갔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라는 황하를 두 차례나 볼 수 있었던 것도 하나의 수확이었다.

특히 황하석림을 아슬아슬하게 셔틀버스를 타고 내려가 문득 만난 과수원과 시골마을, 그리고 양가죽배를 타고 건넌 황하가 인상 깊었다. 그것은 양의 가죽에 바람을 넣어 만든 뗏목배로 뱃사공을 포함하여 4인 1조로 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아내와 김광섭 대표가 한 조가 되어 배를 탔다. 한때나마 그렇게 공동운명체가 되었던 것이다. 시뻘건 강물이 빠르고도 세차게 흘렀다. 강 가운데쯤 왔을 때 앞서 가는 배에서 청아한 소리의 노래가 들렸다. 그것은 전직 음악교사 출신인 임혜옥 씨가 부르는 노래였다.

노래 소리는 강물 위에 부서져 또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다. 아내와 나도 김광섭 대표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보니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과 인생의 기억이란 것은 한계가 있고, 불분명하고, 지향이 없다.

그 다음 기억에 남는 것은 조랑말 마차 타기다. 양가죽배에서 내려서 우리는 '음마대협곡'이란 곳을 조랑말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왔는데 3인 1조가 되어 타고 올라가는 자갈길을 마부는 걸어서 말과 함께 오르고 있었다.

돈 몇 푼에 마차를 타는 사람이 있고 걸어서 가는 사람이 있었다. 그보다는 끝까지 사람을 태우고 낑낑거리며 가야만 하는 조랑말들도 있었다.

오르고 내리는 길, 나는 정말 불교식으로 말해 내생이란 것이 있다면 조랑말로 태어나지 않기를 예수님께 기도드렸다.

골짜기를 내렸을 때 마차꾼들을 위한 움막에서 여러 명의 아낙들이 편을 지어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자칫하면 머리끄덩이를 잡을 듯 했지만, 끝내 한편에서 소리 지르며 물러나면서 싸움은 그 정도로 수습되고 있었다.

여인네들이 열을 올려 싸우고 있는 옆에서 남정네들은 카드놀이를 하면서 멀건이 싸움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이나 싸우는 여인들이나 나에게는 그냥 조랑말들로만 보였다.

자연경관으로는 장액의 칠채산이 압권이었다. 몇 차례로 코스를 바꾸면서 보는 산의 경치는 환상의 연속이었다.

사막지형의 산. 그냥 흙덩이로만 된 산. 몇 해 전 미국의 데스밸리에서도 이런 풍경을 보았는데 멀리서만 보았을 뿐 가까이서는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매우 가까이서 볼 수 있어 좋았다. 마치 꿈속을 떠다니는 기분이랄까. 설명을 불허하는 그것은 환상의 연속이었다.

처음 구름이 끼어 걱정했는데 도중에 햇빛을 좀 주십사 걸어가면서 기도하고 나자 정말 거짓말같이 햇빛이 나서 황금빛 산을 보여주시는 것이었다. 감격에 감격, 환호에 또 환호였다.

그렇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돈황의 코스였다. 실지로 그걸 보고자 그 먼 길을 찾았던 것이 아니겠는가. 5일 차 오후에 도착한 돈황에서 우리는 꿈에도 그리던 명사산(鳴沙山)과 월아천(月牙泉)을 만났다.

명사산에서는 5인 1조로 낙타를 타기도 했다. 내 차례로 온 낙타는 매우 늙고, 마른 낙타였는데 그의 등에 올라 비탈진 모랫길을 올랐다가 내리기가 매우 미안스러웠다.

등허리의 쌍봉이 말라서 한쪽으로 쓰러진 낙타. 등뼈가 앙상해서 나의 궁둥이가 매우 아팠다. 그렇다면 그는 더 아프고, 힘들었을 것인가.

그는 나를 태우고 모랫길 비탈길을 오르느라 고생이고, 나는 삐쩍 마른 그의 등에 올라 흔들리느라고 고생이었다.

돈 몇 푼이 만들어진 이 악연을 우리는 어떻게 풀어야만 하는 것일까? 위에서 내려다보니 낙타의 머리꼭지 털이 모스라진 게 꼭 내 뒤통수만 같았다.

그런데 거기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혀 있는 게 아닌가! 다시 한 번 나는 그 낙타가 나와 너무나 닮았다는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나는 낙타다. 그것도 늙고 병든 낙타다. 속으로 나는 울먹이고 있었다.

내 마음을 짐작이라도 했을까. 출발지점, 수십 마리 낙타들이 모여 있던 마당에서부터 울기 시작하던 낙타 두 마리가 앞서가는 일행에서도 울고 뒤따라오는 일행에서도 울고 있었다.

낙타야, 낙타야, 너는 왜 우는 거니? 어디가 아파서 우는 거니? 아니면 집에 두고 온 새끼에게 젖먹일 때가 되어 우는 거니?

목메어 서럽게 서럽게 우는 낙타의 울음소리가 명사산, 모래가 운다는 명사산의 저녁 그늘을 울리고 또 울리고 있었다. 참 살아있는 목숨이 피차 구차하고 안쓰럽고 아프기만 하다는 느낌이었다.

천적을 피해 사막으로 쫓겨 들어갔다는 낙타. 그만 사막에서 그 어떤 천적보다 무서운 인간이란 천적을 다시 만나 그들에게 볼모잡힌 신세가 되어 대대로 길들여지고, 그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희생이 되는 낙타.

낙타여, 인간을 부디 용서해주렴.늬들이 나중 세상 인간으로 태어나거든 낙타로 태어나는 인간들을 마음껏 부리고 호령하고 그렇게 하렴. 기독교 신자인 나도 낙타 앞에서는 윤회설을 믿는 불교신자가 되고 싶어 한다.

아픈 궁둥이를 달래며 낙타타기를 끝내고 우리 일생은 월아천 쪽으로 향했다. 사막 모래 위를 걷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낙타의 지나칠 정도로 넓은 발바닥과 발굽 아래 두 번 굽혀지는 유연한 발목이 이해되었다.

그렇지만 어찌해서 찾아온 월아천인가. 우리는 기를 쓰고 월아천을 한 바퀴 돌아 월아천 위에 서있는 도교사원을 지나 뒤따라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모래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리도 아프지만 나는 또 사막의 모래밭에 한번 누워보고 싶어서 그랬던 것이다.

사막의 모래바닥에 아무런 준비도 없이 누워본다는 것. 그것도 나에겐 버킷리스트 가운데 하나다. 벌떡 누워버린 모래바닥. 더없이 모래가 곱고 가늘었다.떡가루보다도 고운 모래. 차라리 그런 먼지와 같은 것이었다.

그렇구나. 명사산의 모래는 모래가 아니고 먼지였구나. 얼마나 오랜 세월 부서지고 또 부서졌으면 이렇게 고운 가루가 되고 말았을까. 나는 모래 속 깊이 왼손을 찔러 넣어보았다. 모래 속의 따스함이 손끝에 전해져 왔다.

더없이 편안한 마음. 이냥 모래밭에 누워 잠이라도 들고 싶은 마음. 아까부터 설핏하게 저물던 날이 많이 기울어 서늘한 모래 산의 그늘이 월아천 깊숙이 드리워져 월아천도 푸르스름하게 보이고 모래언덕도 이제는 붉은 저녁기운을 거두고 있었다.

아무리 버킷리스트라고는 그러지만 월아천 모래밭에 누워 하루 저녁을 새울 수는 없는 일이겠지. 나는 서운한 심정으로 일행을 따라 월아천을 나와 명사산을 비껴보며 다시금 인간의 구역으로 귀환했다. 입구 쪽 건물에 밝은 등불들이 우리에게 아는 체 해줬다.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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