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시 계룡면 영규대사로 469-21(월암리 구 계룡우체국)에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명소가 있다. 그곳은 바로 ‘이은 갤러리’.

이곳에 가면 지금껏 내가 보아 왔던 나전칠기들이 “나를 보세요”라며 전통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나전(소라라螺, 비녀전鈿)칠기’는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여러 형태로 오려 기물의 표면에 끼어서 넣거나, 박아 넣어서 꾸미는 칠공예의 장식기법으로 만든 작품들을 말한다.

‘나전’이라는 말은 한국·중국·일본에서 모두 쓰이는 한자어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자개’라고 불러왔다. 그냥 쉽게 자개를 떠올리려면 ‘자개농’을 생각하면 된다.

‘나전칠기’는 보통 칠 바탕 위에 자개를 감입하고 다시 칠을 한 다음 표면을 갈아내 무늬가 드러나게 하는 까닭에 나전에는 통상 ‘칠’이라는 말을 붙여 ‘나전칠기’라고 부른다.

나전기법은 기물에다 무늬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칠공예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나전칠기는 대개 목제품의 겉면에 옻으로 칠을 한 다음에 거기에 자개 무늬를 붙인다.

옻의 매력은 기나긴 생명력이다. 2011년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성안마을 유적(4차)의 저수시설 내에서는 서기 645년을 가리키는 명문(貞觀 十九年銘)이 있는 정교하고 고급스럽게 옻칠된 가죽 갑옷(찰갑: 비늘갑옷) 1령이 출토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우리 조상들은 옻칠이 1천 년 이상의 시간을 견디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찌 알았을까. 선조들의 지혜에 그저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옻칠을 이용해 만드는 이런 나전칠기는 요즈음 보기가 힘들어졌다.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치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 요즈음 사람들이 아날로그 시계를 많이 차고 있지 않지만, 명품시계는 아날로그 시계다.

지금은 사라져 가고 있는 전통의 맥을 현대로 이어가는 ‘이은 갤러리’. 이 갤러리에는 신석희‧이은하 부부의 주옥같은 작품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은하수처럼 빛나고 있다.

현재 ‘한나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2층을 갤러리로 꾸며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이들은 다정한 공예가 부부로, 일상생활은 물론, 목공예와 나전칠기로도 궁합이 척척 들어맞는 예술가 부부이다.

부부가 같은 일을 하게 되면 통상 다투는 일이 많은데, 이들은 신혼인 잉꼬부부 같다. 남편은 목공예, 아내는 나전칠기를 제작하면서 서로 돕기를 밥 먹듯 한다. 심지어 상도 나란히 탄다.

올해 열린 제53회 충청남도 공예품 대전에서 신석희 작가는 백제무령왕의 고리자루큰칼에 있는 문양을 찻상과 도자기 찻잔에 자개와 옻칠로 완성한 ‘백제왕의 검’을 출품해 동상을 받았다.

같은 대회에서 이은하 작가는 ‘백제 왕비의 외출’을 출품해 특선을 차지했다. 남편과 아내가 백제왕과 백제 왕비를 소재로 상을 받은 것이다.

지난 2022년에 열린 제28회 공주시 공예품 경진대회에서도 이은하 작가는 옻칠과 자개를 이용한 전통 기법을 활용하되, 현대적 감각에 맞게 심미성, 실용성을 강조해 일상생활에 적합하도록 제작한 ‘꽃소식’을 출품해 동상을 받았다.

같은 대회에서 신석희 작가는 백제 무령왕의 환두대도에 있는 문양을 은 손잡이로 표현하고, 옻칠로 단아하게 함을 만든 작품 ‘백제의 빛’을 출품해 동상을 수상했다.

올해 열린 제29회 공주시 공예품경진대회에서 이은하 작가는 백제 왕비의 금제 귀고리와 목단의 조합으로 다양한 크기의 접시와 합에 자개의 단각기법으로 섬세함을 극대화해 옻칠로 완성한 작품 ‘백제왕비의 외출’을 출품해 대상을 탔다. 신석희 작가는 같은 대회에서 다기 세트 ‘무령왕의 위엄’을 출품해 특선을 차지했다.

지금 이은 갤러리에서는 ‘갑사 가는 길’ 전시가 한창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이은 갤러리를 방문하고 있다. 관객들은 이런 곳에, 이런 명소가 있는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는 반응이다.

문화재수리기능자로 나전칠기연구소를 운영하는 이은하 이은 갤러리 관장은 “이번에 ‘갑사로 가는 길’ 전시회를 하면서 갤러리를 방문한 관객들과 차도 나누고, 이야기도 하게 됐는데, 큰 도시에서도 접하기 쉽지 않은 옻 판화, 목칠공예, 나전칠기 작품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무척 놀랍다는 반응이었어요. 더구나 이번에 ‘갑사 가는 길 전시회’를 하면서 서양화, 민화, 공예 작품까지 함께 볼 수 있어 무척 행복해하시는 것 같아 저도 무척 기뻤습니다.”라고 말했다.

신석희․이은하 부부는 오늘도 전통의 맥을 살려가면서도 실용적인 작품들을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고 있다.

이들 부부를 보면서 부부가 같은 공간, 같은 직종에서 함께 일해도 싸우지 않고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계의 퀴리부부 같은 신석희․이은하 부부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귀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은 갤러리(041-857-3341)를 방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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