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들판 위를떠돌고 있는 작은 구름은어디를, 누구를 찾아 헤매는 걸까 작은 구름 하나가가까스로 손 뻗어 큰 구름 잡는다 조금 더 커진 구름그늘 하나가들판을 덮는데 어디선가 센 바람이골을 타고와 지나고 들판을 덮었던 그림자도흩어진다 큰 구름 작은 구름 온데간데없는 하늘에행운이라 여겼던 작은 구름큰 구름 조각 사이에서 부질없음 깨닫는다.
겨울비 내린다서릿발까지 동원한꽁꽁 얼어붙은 땅이가볍게 제 몸을 푼다 잠시의 세월이 때로참 거시기해서단단하게 붙들고 몸부림쳤던적,언 땅 보니 알겠다 신발에 묻어나는 흙덩이의무게만큼욕심을 덜어 내는 일은 세상일에선자주 건망증에 걸려밀려나는산책길 목록.
세상 속 지나며 생긴 생채기덜 여물어중얼중얼 남 탓하며 설거지하다때 절은 앞치마에젖은 손 문지르고열쇠구멍에 내 일상 잠가 두고산에 올랐다 푸르면 푸른 대로붉어지면 붉어지는 대로바람 불면 흔들리는 대로있을 줄 알아 조화로운 숲품위 있게 휘어진 소나무 하나눈길 묶는다 지금이라도하고 싶은 말아니 들을 말모두를 품으면삼대(三代) 쯤에는저 자태 나올까 저절로 발길 머물러긴 호흡, 마음 한 칸 내리면참으로 작아지는세상 속 생채기.
우물에 비친 여인의 얼굴이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미 다섯의 남편을 거친 까닭이지요여섯 번째도 그녀의 영혼은 채워지지 않았죠 사마리아 여인이방인의 고단한 영혼을내려놓지 못한 그녀에게예수님이 우물가로 오셨군요 우물에 비친 예수님은 그런 여인이 안타까워가슴이 뜁니다 그때 하늘에서 빛이 내려어두운 우물에 꽂힌 빛이여인의 마음에 고입니다 우물에 여인과 예수님의 얼굴이 나란히 비칩니다순간 여인의 눈에 눈물이 그렁합니다 메시아를 본 것이지요그녀의 방황이 끝납니다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또 물을 길으러 이리 나오
자전거 배우던 날잡고 있으니 걱정 말라던 말 믿고신나게 달리는데운동장 가 늘어진 하얀 아카시아 꽃향기바퀴 따라 콧노래로 따라오고 돌아본 순간일찌감치 손 놓고멀리서 지켜보던 아버지 혼자라는 생각에잘 달리던 자전거 안고그대로 넘어지는데빨랫줄에 널어놓은 옷 바람에 흔들리듯아카시아꽃 몸 흔들며깔깔대는데5월, 그 웃음소리 따라 돌아보면아무도 없이 꽃그늘만 흔들린다.
눈이 올 듯하늘이 낮은 날음악도 글도들어오지 않는 날은리본을 만든다하나…둘…열…스물…쉰 대상도 없이 차올라터질 것 같은 서성임의 뒤편 아무에게나 전화 걸어‘보고싶다’ 말하고 싶은아슬한 수위를리본에 꼭꼭 접어 넣고고래를 들면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정지된 듯 내리는눈이다봇물 터지 듯 밀려 나가는이름 모를 정체.
기온 35도하루도 견디기 어려운화기 속꽃의 생명 덜 상하게락스 한 방울을물 위에 떨어뜨린다 때로는 독이생명수가 되는 나에게 시는독이다.
화기(花器)의 폭에높이의 두 배꽃을 꽂을 때1주지로 가장 적당한 길이다 화기에 꽂히는 가지처럼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삶의 길이잴 수 있을까신이 허용한 걸맞은 삶은자신이 가진 폭과 길이를곱까지는 늘려 보는 일 일지도그러나 우리는허용치를 넘거나 미치지 못한다내 안의 고요를 키우지 못해소음에 귀 기울이는 우愚.
저것을 어째지 멋대로 늘어진자유로운 몸짓한참을 고민하다돌돌 감아둥근 틀을 만들어 버리는나의 속셈은 한 잔 술을 걸친 듯저 가지처럼 나도 휘어지고 싶어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늘어진 가락으로 목청 뽑고 싶어흐물흐물 허튼 수작 부려 보고 싶어 그런데 이녁 맘이 이녁 맘대로안 되는시샘일 걸아마.
크리스마스 때 꽂는채색된 흰 느티나무 가지에서는지나는 골목길귀 가리개 소년 찹쌀떡으로 살아난다 그 소리 따라가면따뜻해지는 저녁윗목에선 양말을 깁는 엄마의 바늘땀이교회 종소리 듣는다아랫목에 묻어 둔 아버지의 저녁밥이조금씩 식어 갈 무렵어깨 가득 하얀 눈을 털며 들어오시는맑은 바람 냄새아버지의 누른 봉투 속에는하얀 찹쌀떡 다섯 개 들어있었다 밖에는 함박눈동구 밖 느티나무도 하얀 눈이 되어교회 종소리 귀 기울이는고즈넉한 그 저녁 그때그때의 크리스마스는해마다 수반에 꽂힌 흰 느티가지로살아난다.
밑둥을 정리하고 꽂은느티나무 가지에서툭툭 펴지는 어린잎들 손톱만한 잎 하나 따손바닥에 올려놓는다 정교하게 짜 간저 작은 실금이고단한 삶 잠시 쉬어 갈정자 그늘 되는데 마음자리 하나가리지 못하는종횡무진 얽힌내 마음의 실금들 세상에 빛도 되지 못할이 미세한 실금들로밤을 뒤척이는내 옹졸한 삶도‘탁탁 쳐내고정리하여 다시 꽂으면이 세상에 그늘 하나 될까.
네가 이 세상에 떨어졌을 때백색의 배냇저고리가 입혀졌고한 남자를 만난 출발점에서너는 흰 백합꽃을 들었다 이 세상을 떠나게 된 지금나는 너의 관 위에흰장미를 꽂는다.나폴거리는 아스파라가스의 잎 위로하얀 장미를 수놓듯 꽂는 내 손이문득 멈춘다 우리는 출발점마다에서 왜 흰색을 취할까우리 생이 가야 할 길이 결국 순백의 길이라면이제 마흔, 너는 그 길을무덤에서 채워야 되는 거고우리는 바깥 무덤에서채워야 하나 지긋이 굽어보는 성모상 아래, 관 위로살아지은 모든 죄 사해주시는십자가 붉은 우단이 내려지고너의 육신은 천천히 걸어 나간다 내 손을
필 것 같지 않은 꽃봉오리선택 받기엔 부족한 잎쳐내야 할 가지 소리 없는 눈들이나를 바라본다다 끌어안을 수도버릴 수도 없는 버리지 못하는 것이 욕심인지버리는 것이 오만인지지식이 가져다주는불필요한 진실.
거의 완성된 작품 앞에 앉아마지막 한 송이 꽃을제 자리 아닌 엉뚱한 곳에 놓고 싶다 틀 속에 갇힌 세상의 문을홀연히 열고 나가고 싶은 유혹그 길을 따르고 싶은마지막 한 송이가조화를 흩트려버릴화기 안의 질서 꽂힐 자리선연히 눈에 보여그곳에 꽂고 마는 내 안의 슬픈 질서.
다른 잎이랑꽂아 둔 백합이하룻밤 사이 피어 환하다 밑줄기 자른 곳에물들이 다투어 올라그리 빨리 필 줄이야 잘린 상처 안고그들이 서 있을 곳은가시밭길 침봉 그곳에서도환하게 필 줄 아는긍정의 저 힘그대.
평화로운 풍경되어거실 한 켠에 앉아 있는꽃, 눈에 들면 누군가를 용서 못해들 끊는 분노내 탓이지 못해입 가득 고여 오는 변명모난 생각 주둥이가사르르 풀어져 한 나절 건너기가수월해진다.
꽂아 둔 꽃이활짝 피어 절정에 이르렀을 때뽑는다 진다는 것은단순히 꽃잎만 지는 게 아니다줄기 살들이 문드러져냄새를 피우는아름다운 기억마저 잃는 일이다 내가 시들기 전 꽃을 뽑듯누가 내 생의 절정에서“그만” 이라고 말해 주면 좋겠다.
꽃들이 살다 온세상을 자른다 한 켜 한 켜 넘을 때마다생겼을 마디마디를 잘라뽀족한 *침봉을 가린다 한때는, 둥근 화기(花器)처럼나도 둥글어날카롭고 강한 것이내 안에 들어 있었다는 것을 몰랐던그리 멀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날선 마음을 가리기엔잎이 무성한 여름이 제격이다 헐벗기 전모든 모난 것들을 위하여이 여름에후덕하게 살아 둘 일이다.*침봉: 꽃을 고정하기 위해 쓰는 도구.
포장길이 생겼다울퉁불퉁했던 길속에 묻힌수많은 발자국들이 지워졌다 돌아보면길 아닌 길은 없는데길 위에 서서 길을 갈망했다 눈 비 올 때마다패인 흔적을 남기던질척대는 울음은모두 추억이 되어가벼워지고 오늘은발자국도 남지 않는 포장된길을 간다.
마음이 산란한 날은성을 오른다 구부러진 길을 따라 오르고 내리면땀땀이 쌓아 올린 돌에 맺힌 땀방울묵은 향들이 건너와 내 어깨에 힘을 뺀다 지나간 시간의 궤적을 따라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왕들의 책장 넘기는 소리나라 걱정에 밤을 지새며 뒤척이는 소리잠시 멈춰, 따스한 눈길 보낸다 옛 사람들이 두루마기 입고 지나거나 앉았을숲과 하나 된 누각엔오늘은 반바지 차림의 아가씨가 걸터앉아 생각에 잠긴다늘 거기에 있어 시간을 넘을 수 있는 곳 봄이면 아름드리 나무들은 빨리 꽃을 털어작은 나무들을 꽃 피우고펑펑 내리는 눈은 먼저 받는다모두가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