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학교들이 북적북적 새 학기 준비에 정신없이 바쁘다. 오고가는 사람들의 부산함에 정신이 없다.

새롭게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힘들지만 상쾌하고 기대감이 있어 좋다. 나 역시 3학년 부장을 맡아 진학지도 최 일선에서 정신없이 보내고 있다.

부담도 되지만, 나름 의미도 있다. 물론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있다. 그것은 큰 기대치에 대한 자기 내면의 평가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다.

어느새 훌쩍 다 커버린 녀석들은 며칠 전 졸업과 함께 그동안의 간섭과 구속을 박차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갔다.

마치 모두가 내 세상인양, 넓고 파란 저 하늘을 맘껏 날아다닐 듯 뻗쳐오르는 패기를 주체하질 못한 채 말이다.

그 아이들은 아마도 한참을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헤매 이다가 조금씩 날개에 힘을 얻고 실수와 눈물 투성이의 상처를 영광스레 품은 채 각자의 길을 향해 더욱 정진하리라.

그런 우리 아이들이 당당하게, 자신 있게 삶의 거리를 활보하며 미래를 이끌 소중한 역량을 맘껏 키울 수 있길 다만 소망할 뿐이다.

우리 아이들이 떠난 빈 교정에 서서 내가 나에게 던지는 물음 하나가 있다. 교사인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심어주었는지, 혹 그들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는 영혼이 메마른 그런 교사는 아니었는지 하는 것이다. 교문에 걸린 대학교 합격자 현황을 알리는 현수막을 바라보며 말이다.

어언 교육경력 25년이 넘어가는 중견 교사로서 나름으로는 직업적 소신을 펼쳐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속에서 느끼는 바는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이며, 한 없이 겸손해지는 일이며, 진리에 무릎을 꿇는 깨달음이라는 것이다.

내가 비어지고, 넘어지고, 여지없이 부서질 때 온전한 내가 설 수 있음을 불을 보듯 환하게 느낀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며, 버림으로 인하여 님께서 한없는 생명의 말씀으로 채워주심을 아나이다” 라는 독백이 절로 터져 나온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을 여는 신학기다. 내게는 봄이면 생각나는 분이 있다. 아주 오래전에 그러니까 내가 초임이던 24년 전의 일이다.

서울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어느 시골고등학교 교장선생님과 함께 앉게 됐다. 그 때 나눈 대화는 오랫동안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런저런 학교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는 교장선생님께 “교장선생님, 지금 근무하시고 계시는 학교의 학생들은 질이 어떠한지요?” 라고 여쭈어 보았다.

그 학교는 2차, 3차까지 학생모집을 해야 간신히 정원을 채우는 그런 학교였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미 그 학교의 수준을 알고 있어 어떤 대답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던진 물음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교장선생님은 내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연스럽게, 그것도 소신껏 말씀하셨다.
“선생님, 저희학교 학생은 학력의 질은 다소 부족하나, 인간의 질은 매우 훌륭하지요.”

“아! 그러시군요.” 순간적으로 학력이라는 잣대만을 가지고 사람을 재단했던 내게 교장선생님의 대답은 참으로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또한 나름의 교육철학이 있는 수장을 보는 것 같아서 그 자리가 매우 행복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날 이후 그 교장선생님과의 대화에서 느꼈던 것을 기억하며 ‘교사인 나는 학생들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고민은 여전히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부족한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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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이맘때면 학교는 졸업생들이 떠나간 자리를 꿰차고 들어 올 새내기들이 기대와 설렘으로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마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 이별과 만남이 스쳐 지나가는 아쉬움과 새로운 기대감이 함께하는 곳이다.

나 역시 새로운 곳에 둥지를 튼 탓인지 새내기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설렘으로 신학기를 보내고 있다.

오늘도 교문에 걸린 대학교 합격자 현황을 알리는 현수막을 뒤로한 채 바람과 함께 집으로 향한다.

“사람 됨됨이 자격증 100% 완성의 시대는 요원한가?”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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