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내와 면소재지 사지순례를 하면서 동혈사와 공주시 탄천면 미암사에 전하는 쌀 바위 이야기를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듭니다.두 사찰에는 스님이 한명이거나, 객이 와서 두 명 혹은 신도가 온다든지 하면 그 숫자에 맞추어 쌀이 나오는 신묘한 바위가 있었다고 전합니다.욕심만 부리지 않으면 ‘식구食口’ 즉 밥을 같이 먹는 사람 수에 맞추어 저절로 쌀이 나오는 자동쌀통 같은 것인데 그만 욕심이 많은 스님이나 불자에 의해 조금 더 쌀을 내고 싶은 욕심으로 쌀 바위를 파헤치니 그 뒤 부터는 아예 쌀이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전설입니다.절에 사는 스님들이 아무리 험한 곳에 있어도 열심히 기도 정진을 하면 자기 먹고 수행할만한 분량의 수요가 공급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과 그에 더하여 작은 욕심이라도 더 내
6월 17일 아침에는 다음날부터 장마가 온다는 예보에 서둘러 아직 가보지 못한 사지를 순례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몇몇 관심있어하는 불자들과 같이 주미사지와 수원사지를 참배하고, 의당면에 있는 동혈사를 찾아 올랐을때는 오후 서너시경인데 절에 머무는 인상 좋은 처사가 나와서 안내를 하였습니다.? 본디 동혈사 터는 지금 지어진 동혈사 아래에 자리하고 있었다는데 현재는 약간 위쪽으로 대웅전과 나한전 요사채등이 가즈런히 정비되어 있습니다.?이름 그대로 천태산인지라 마치 여기 저기 골짜기에서 수행하는 나한님들이 불쑥 튀어나올것만 같은 신령한 기운이 감돌고 대웅전에서 바라다본 전면의 산록들은 그리 높지 않는 산이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정경을 연출하고 있습니다.
제3회 무령임금 뵙는 날 (알릉의)에 다녀왔습니다. 공주시 웅진동에 있는 무령왕릉은 칠십년대에 처음으로 발견된 백제왕의 무덤이라는 의미에서 대단한 화제거리를 가지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백제왕이 삼십 여대를 넘어가지만, 내가 알기로는 왕의 이름이 있는 지석이 나오면서 내부가 도굴되지 않은 채로 나온 것은 위례와 웅진과 사비를 통 털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그만큼 세인의 관심 속에 발굴되었지만, 졸속에 가까운 발굴현장의 모습으로 인하여 온전히 보존되어야 할 여러 유물들이 훼손되는 등 고고학계 안팎에 큰 파장을 몰고 온 사건이었습니다.어찌되었든 지금은 무령임금의 별도 명명되었고, 해마다 차를 올리는 다례회도 능 앞에서 봉행되는데 신원사 신신제 보존회를 만들어 국가제향을 복원한 구중회
위축 공주시 무궁발전삼한백제공주시누세양풍절의승선조덕치문화적관민합력필중흥원효정사주인 석일화 송삼한의 하나로 백제의 옛 도읍지인 공주는 오랜 세월동안 미풍과 양속으로 충의와 절개를 이어오는 곳이요선조들이 남긴 덕의 치세는 곳곳에 문화유적으로 남았으니관과 민이 힘을 합하여반드시 중흥을 이루어 봅시다 라는 의미로 풀이된다.아마 원효사 어른스님이신 석일화스님께서 공주시의 새청사가 지어진 것을 보고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의미로 게송을 지으시고, 쓰셔서 시청에 전해 드린것 같습니다.마침 오늘 시청에 가면서 카메라를 챙겨서 어른스님의 필묵을 사진으로 담아왔기에 한번 보시라고 올려봅니다.스님께서는 27년생으로 39년에 마곡사에 동진출가하시고,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종비
아침 여덟시 삼십분에 씩씩한 보살님들 세분과 같이 공주시 웅진동 서혈사지를 찾아갔습니다.지난겨울에 다녀오면서 부처님을 모셨던 석굴이 너무 정리가 안 된 채 방치되고 있음이 안타까워 내부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하고자 한 것입니다.낫과 빗자루 고무장갑 장화를 신고 서혈사지 아래에 사시는 보살님 댁을 방문하니 서혈사가 있는 산의 소유주이신 보살님이 나오시는데 무릎관절이 아주 안 좋아 보이십니다.“서혈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려움도 있다”며 간혹 가다가 범죄를 저지르고 피해 다니는 사람이나, 노숙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바람에 관에서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 공주시에다가 “석굴 입구를 철근으로 봉해 달라”는 청을 하셨다 합니다. 어쩌다 한번 방문하는 사람은 한
불경에는 사람마다 네 명의 사랑하는 사람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이야기합니다. 독신으로 살거나, 결혼해 살거나, 이 네 명의 사람은 불가분의 관계인데 그에 대하여 이런 비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어느 거부장자가 네 명의 부인과 같이 살아갑니다. 첫째 조강지처는 살다보니 있는지, 없는지 별로 신경 쓰거나, 챙기지 않고 살아감에도 집의 안과 밖을 열심히 정리정돈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별스런 문제없이 해결해 나갑니다.둘째부인도 첫째만큼은 아니지만 자주 연락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이것저것 어려운 일을 챙겨주며 혹시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밤잠을 잊고 간호하며 서로 헤어질 때는 아쉬운 듯 다음을 기약합니다.셋째는 그를 얻을 때부터 머리가 아프게 노력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까운 이웃들과 싸움도 하며
병원 불자들과 법회 하는 날 혹시 요즘 최대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물었습니다.마침 삭발을 한 거사 한분은 “나는 스님이 되고자 여러 번 노력했어도, 결국은 출가하지 못하였기에 그것이 고민이라면 고민이라 이야기 합니다.아직 나이가 많지 않아 보이는 보살님은 “저는 환경이 오염되어가는 것이 제일 걱정입니다” 하고, 또 한 보살은 다이어트를 걱정합니다.나는 중국에 기杞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 두려워하였다는 고사에서 나온 ‘기우’라는 말을 들려드리며 “내게도 기우에 해당하는 것이 있는데 지금 이 공간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고, 밝혀주고 있는 전기라는 것이 수요를 견디지 못해 정전사태가 되는 것이 목전에 최대 관심사입니다”라고 말하니 불자들은 그때에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를 눈치 채시고, 고개를 끄덕이
공주불교에 대해 새로운 기획 의도를 가지고 근세불교의 기사와 자료 등을 모으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공주에 많이 있는 삼국시대 이후의 사지를 엮고, 그곳을 순례할 수 있는 안내 책자를 만드는 일입니다.공주에는 마곡사,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 워낙 큰 절이 많아 나머지 작은 규모의 사찰이나, 암자 내지는 불당과 사지 혹은 마애불과 탑 부도 등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현실이다 보니 그와 같은 것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고, 정기적으로 순례계획을 세워서 불자들과 같이 불교문화 유적에 대한 조사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기초조사와 데이터를 구축하는 일입니다.만약 그와 같은 일들이 현실 속에서 이루어지고, 책이나 지도 CD같은 형태로 만들어 지게 되면 이 지역에 사는 불자들에게 도움이
'조선의 학도여'이광수(李光洙, 1892~1950)그대는 벌써 지원하였는가 특별지원병을, 내일 지원 하랴는가 특별지원병을,공부야 언제나 못하리.다른 일이야 있다가도 하지마는 전쟁은 당장이로세.만사는 승리를 얻은 다음날 일 .승패의 결정은 즉금(卽今)으로부터시각이 바쁜지라 학교도 쉬네. 한사람도 아쉬운 지라 그대도 부르시네.일억이 모조리 전투배치에 서랍시는 오늘 그대는 벌써 뜻을 정하였으리.나가리이다, 나가 싸우리이다.싸워서 이기리이다.미영(米英)을 격멸하고 돌아 오리이다.조국의 흥망이 달린 이 결전.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마루판단판일세, 다시 해볼 수 없는 끝판그대가 나가서 막을 마루판 싸움아세아 십억칠 같은 머리흑요석 같은 눈
엊그제 서울에 갔다가 조계사에서 마가스님이 불자들을 상대로 자비명상을 활용한 마음의 치유 법문을 합니다.한시간 반정도의 긴 법문이었는데 들을 때 뿐인 기억력으로는 잊어버린 것이 많고, 하나 건진 것이 있다면 이런 법문입니다.어느 보살님이 절에 와서 “남편의 성공을 위해 기도를 올리고 싶다”고 스님에게 말합니다.스님은 “아 그거 참 좋지요 부처님 전에 기도하면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으니 열심히 기도하시되, 부처님 전에 삼천 배를 같이 하시면 어떻겠느냐?”고하는 소리를 듣고는 여덟 시간에 걸려서 삼천 배를 합니다.다리는 후들거려도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다 이룰 것 같은 기쁜 마음이어서 너무 좋은데 그날따라 거사는 밤늦도록 연락도 없고, 자정이 넘도록 들어오지 않습니다.낮에 부처님께 “남편이 하
마음에 품어오던 일 하나를 결정 지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10월 3일 개천절 날 오후 두시 금학동 우금치고개에 있는 동학혁명탑 앞에서 동학혁명당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스러져간 수많은 애혼 고혼의 한을 달래고 위로하는 영산재를 봉행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예산 내포지역에 있는 법륜사 주지이자, 충청남도 영산재 무형문화재인 보명스님과 영산 중재회 회원스님들 20여분을 청하여 두 시간 반 동안 범패와 바라춤 등 작법을 통해 영산재 의식을 여법하게 봉행하고, 떡과 과일 차와 진수 다과를 준비한 다음, 참석자 모두가 동학혁명당시 돌아간 군?관?민 영가들이 안타까이 돌아가면서 품은 한과 고통을 달래드리면서 한 생각 품은 한을 돌이켜서 열반의 정로를 향해 발걸음 내디디기를 기원하는 의식이 될 것입니다.지역에 계신
공주대학교 무용과 최선교수와 제자들로 구성된 최선무용단이 펼치는 ‘춤에 취하다’라는 이름의 ‘무취’ 공연을 24일 공주문예회관 대 공연장에서 보았습니다.공연을 뒷바라지 한 나태주 문화원장님은 무몽夢에서 무취醉로, 무취에서 무극極으로,,무극에서 무여餘로 전개되는 네 단원 가운데 두 번 째 단원으로 춤에 취하고, 인생에 취하고, 사랑에 취한다는 의미라고 초대의 글에 밝히셨군요.사철가에 ‘죽은 뒤에 차려주는 만반진수보다 생전에 한잔 먹고 취하는 것이 낫다’는 말이 문득 떠오르면서 코에 향기가 벙긋벙긋 합니다.부모가 지어주신 이름도 “한번 들으면 잊지 말라”고 ‘최선’이라 지으신 모양인데 최선교수와 오늘의 춤꾼들은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하여 춤을 시로 들려주고, 또 무언의 시를 춤사위로 보여 주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서 세종시를 지나 청주로 들어가 청주대학교 인문학부에 계신 교수님을 오랜만에 찾아뵙고 연구하시는 분야에 대하여 청주문화사랑에 대한 좋은 말씀을 듣고 돌아 나오며 세종시로 편입된 보림사를 들렀습니다.지난 성도재일 날 삭발득도를 한 사미스님이 그곳에 머물며 공부를 하고 있기에 “정진 잘하시라” 격려차 들러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해결했습니다.이후 마곡사로 가서 은적암과 청련암을 방문하고, 경기도 시흥에 계시면서 부처님 몸속에 넣어 모시는 후령통등 복장물을 제작하시는 거사님과 만나서 청련암 복장 불사에 대하여 상의하였습니다.저물어 절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오늘이 목요일이라 대불련 법회가 있음을 생각해 확인을 하고, 동아리방에 여섯시에 가니 마침 학교 음악동아리의 공연 등으로 인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공주문화원장으로 계신 나태주님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평생을 어린이를 가르치신 분이시라 시에 맑고 순수한 동심이 가득 담겨져 있습니다.나는 님의 시를 기와에 적어 도량 초입에 놓아두었습니다. 이번에 문화원장에 재임이 되셨다는 기사를 보고 전화를 드렸는데, 통화가 되지 않아 축하 문자를 보냈습니다.바로 답장을 주셨는데 “부처님 오신 날 절에 오셔서 스님 염불하는 소리 듣고 점심 맛있게 드셨다” 하십니다.나는 그날 뵈지는 못했지만, 만약 그날 오신 줄 알았다면 상주에서 오신 김다솜 시인과의 만남이 있으시도록 주선해 드렸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그날 아침 일찍 김다솜님이 부군과 같이 오셔서 참배하시고, 언제 가셨는지
누가 묻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는 말이 무엇인가요?” “말 그대로입니다. 색은 곧 공하고, 공은 곧 색이라는 말이지요.”“예? 그 말은 저도 할 줄 아는 말입니다. 실제로 색즉시공을 설명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그렇게 물으니 예를 들면서 실제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시지요. “혹시 TV를 자주 보시나요?” ““예 자주 보지요. TV안에 사람이 있고 집도 있으며, 산과 바다 개와 고양이들이 나오는데 그것들이 실재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실재하지 않는 그림일뿐인가요?” “물론 그림이지요.” “그 말이 곧 색즉시공이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입니다.”“그 안에 말이나 노래가 있던가요? 없던가요?” “물론 있습니다.” “그것이 실재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거기에 있다고 보고 있음에 불과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