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금치 동학혁명탑에 올랐다가 비문에 한자가 섞이고, 파쇄된 글자가 있어서 전문을 알아보기어려울 수 있다 싶어서 후학을 위해 우리말로 옮겨 적어왔습니다. 한번 보시고 당시의 참상과 민족의 아픔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난리, 혁명을 떠나 우리나라와 민족이 겪은 아픔만 볼 생각입니다. 다음은 탑비 앞면의 전문입니다.

인내천과 사민평등의 종지아래 후천개벽의 혁명정신으로 무장하고 동학교주 전봉준이 호남의 만석보 기슭에서 수천의 농민군을 편성하여 첫 봉화를 든 것은 갑오(서기 1894년) 정월 10일. 20일께는 다시 대거하여 백산을 점거하고 습격해오는 관군을 격파하면서 승승장구 .4월말에는 전주성까지 함락하게 되니 혁명의 성공이 눈앞에 다가오는 듯하였다.

그러나 청일 양국의 무력간섭 아래 이 나라의 국권마저 위협받게 되자 정부 측이 먼저 화해하기를 청하니 우국애민의 일념에서 동학군은 마침내 양보하여 전주성을 내어주고 그 여력을 지방 조직에만 기울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군국주의 일제의 엄청난 야욕은 돌연 남의 나라 주권을 침해 독점하고자 날뛰게 되니 정녕 국가의 명맥이 통틀어 풍전등화가 되고 말았다. 이에 한동안 후퇴했던 동학군은 드디어 항일 구국의 독립군으로 재무장하고 총궐기하였다,

남북접이 호응 합세하여 20만의 대병력을 논산평야로 집결시키고, 전봉준과 손병희 두 통령의 작전지휘아래 서울까지 진격하는 주요거점으로 공주성부터 공략하게 되었다.

그 결과 10월 하순부터 전개된 공주성의 대공방전은 이 우금치를 중심으로 날이 갈수록 처참하고 가열하게 됐다. 한 고지의 주인을 4.50차례나 바꾸어 가면서 세계전사에 유례없는 격전을 되풀이하였다.

그리하다가 새로 투입된 일본군의 증원부대가 근대의 무서운 살인무기 기관총으로 연속 맹사격을 퍼 붓게 되니 악전고투하기 3일 만에 동학군은 막대한 희생자를 내인 채 전우들의 시산혈하를 넘어서 11월 11일 논산방면으로 철수하였다.

대망의 혁명 사업이 여기서 좌절당하고 계속되는 추격과 살육 속에 위국단침조차 알아줄 이 없었다.

그러나 님들이 가신지 80년 .5.16 혁명 이래의 신생조국이 새삼 동학혁명의 순국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면서 빛나는 시월 유신의 한 돌을 보내게 된 만큼 우리 모두가 피어린 이 언덕에 잠든 그 님들의 넋을 달래기 위하여 이 탑을 세우노니 오가는 천만대의 후손들이여 그 위대한 혁명정신을 영원무궁토록 이어받아 힘차게 선양하라.

서기 1973.11.11
제자 대통령 박정희
글 문학박사 이선근
글씨 양재한
동학혁명 위령탑 건립위원회 세움

뒷면에는 감사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있습니다.

이 나라 이민족을 도탄에서 건져내는 동시에 이미 혼탁해진 조정을 과감하게 바로잡고 보국안민의 대업을 이룩하기 위하여 이 내 목숨을 아낌없이 바친 동학혁명군의 10여만 영령들을 달래고자 이 고장 공주의 갸륵한 이창덕 동덕이 누구보다 앞장서 온 정성을 바치게 되니 천도교 중앙총부는 그 뜻을 더욱 널리 펴서 성취시키기로 결정하고, 금년 6월 25일 이선근 박사를 위원장으로 동학혁명군 위령탑건립위원회를 조직한 다음, 이 사실을 삼가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 품신하였던바 대통령 각하께서는 위원회가 앙청한 명예위원장과 제자의 휘호를 기꺼이 수락하시고, 특히 금일봉까지 하사하시어 이일의 거국적인 의의를 더욱 빛내주시었다.

여기에 이 고장 공주의 관민 여러분과 전국 각지의 뜻있는 인사들과 동학의 후예인 천도교인들이 물심양면으로 알뜰한 정성을 모아서 일찌기 혁명군의 마지막 결전장이었던 공주읍 우금치 이 자리에 위령탑을 세우기로 마련하고, 지난 9월 21일 기공한지 50일 만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일을 위하여 크게 진념해주신 박정희 대통령 각하와 회무발전을 보살피며 탑문을 지어주신 이선근 박사는 물론이요, 이 탑의 설계 감수를 맡아주신 정인국교수와 글씨를 써주신 양재한 동덕 여러분께도 우리 천도교를 대표하여 충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해둔다.
포덕 114년 11월 11일 천도교 교령 최덕신 심고

이상이 탑 비문 앞뒤의 전문입니다. 비문에 나오는 대통령 박정희라든지, 시월유신 5.16혁명 등 글자는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정으로 훼손된 상태이고, 천도교 교령 최덕신은 훗날 월북을 하게 되는 인물입니다.

비문의 내용이 좋다 하여도 한자가 섞여 있으므로 해서 요즘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무용지물에 가까운 비문의 내용인지라 비석을 교체할 수 없다면 안내판에 한글로 새로이 적어서 옆에다 설치해 놓을 것을 제안하는 바입니다.

우리 절에서는 10월 3일 우금치에서 모실 영산재에는 영가들을 위하여 일만 벌의 영가 옷을 접어서 제작하기로 하고 종이를 이미 맞추어 두었으니 가까운 시일 내로 공주시내 불자들에게 적당히 나누어 드리고, 종이 바지저고리를 만들게 하여 당일 재를 모신 후에 소각하여 올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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