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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연재소설 -고마 순례기 (10)
현자들의 숲-4
2017년 09월 16일 (토) 07:10:25 박성훈 stopksk@hanmail.net
   
 

도시는 크지 않았다. 곧 도시의 외곽에 이르자 불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짙게 깔렸다. 간혹 외곽 도로를 지나는 자동차의 불빛만이 인도를 지나는 두 사람의 발길을 비추어주었다.

고마한은 여전히 스승의 손을 꼭 잡고 스승을 힘겹게 따라가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식당에서 있었던 황당한 일을 생각하면 온몸에서 땀방울이 삐직삐직 솟아났다.

“사부님,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땡전 한 푼도 없이.”

“이놈아, 네가 주범이야. 네놈이 뇌섹남 어쩌구 하면서 충동질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근데 그 주인의 장남 등에 막대기 하나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예언을 하려면 평소 쓸데없는 정보라도 많이 수집해두어야 한다.”

“근데 제가 공주 시장을 세 번이나 하고 고마 순례길을 완성한다고요?”

“하하하, 그게 그렇게 솔깃하더냐?”

“그보다는 그런 황당한 거짓말이 어디 있어요?”

“거짓말? 그래도 기분은 좋지 않니?”

“그 예언 어디 근거 있는 거예요?”

“이놈아, 근거는 무슨 근거? 나는 던지기만 할 뿐 나머지는 이루는 자의 몫이다. 원래 예언은 던지는 사람 따로 있고 이루는 사람 따로 있는 법이다. 예언 분리의 원칙이다.”

“또 저에게 미루는 겁니까? 비겁하게 식당에서처럼 말이에요.”

“그럼 어떡해? 무전취식으로 또다시 콩밥을 먹을 순 없잖으냐?”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죠? 사부님의 집이 있기는 한가요?”

“너나 나나 전과자다. 비바람 피할 곳이면 족하지.”

넝마도사 일행은 곧 그렇게 높지는 않으나 길게 이어지는 고갯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고갯마루에 거의 다다르자 넝마도사가 입을 열었다.

“이곳이 우금치라는 곳이다.”

고마한은 깜짝 놀랐다. 우금치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전주성을 함락하고 이곳 공주로 북상할 때 관군과 일본군에게 몰살당한 곳이었다.

“우금치요? 동학군이 몰살된 곳 말인가요?”

“그렇다. 저기 동학혁명군위령탑이 있다. 잠시 예를 표하고 가자.”

넝마도사와 고마한은 동학혁명군위령탑 앞에서 묵념을 올렸다. 넝마도사는 묵념을 끝내며 목청을 길게 뽑아 기괴한 소리를 어둠의 하늘로 날려 보냈다. 잠시 뒤 넝마도사는 고갯길을 내려가며 고마한에게 불쑥 한 마디 던졌다.

“고마야, 저들도 잘못된 역사에 대해, 지옥 같은 현실에 대해 몸을 떨치고 일어났던 사람들이야. 우리와 다르지 않지. 역사의 줄기찬 흐름에 뭔가 희망이 있지 않겠니?”

넝마도사의 이 한 마디에 고마한은 뭔가 번쩍 트이는 것을 느꼈다. 이어서 어둠의 세계에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듯한 희열이 그를 감쌌다. 지금까지의 못난 생활이 결코 부끄럽지 않았다. 어차피 직장을 일찍 잡았어도 도진개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상에 파묻혀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몸을 맡길 그저 그런 인생이었다. 비록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지만 앞으로 자신이 가는 궤적에 용솟음치는 희망을 느꼈다. 생각하면 이곳 공주 터미널에 무작정 내려 길거리에 주차한 승용차를 마구 파손한 그때가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감방에서 괴짜 스승을 만났고 스승은 지금 그의 잠자는 영혼을 깨우고 있다. 고마한은 감격에 겨워 넝마도사에게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사부님,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죠?”

넝마도사는 지체 없이 대답했다.

“어떻게 하긴? 오직 용기를 내야지. 너는 결단을 내렸어. 혼돈의 이 사회에 가차 없는 결별을 선언했지.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해. 자기가 추구하는 세계를 정립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거침없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하지. 나는 예언한다. 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야.”

그 뒤로 넝마도사도, 고마한도 일체 말이 없었다. 어쩌면 저마다 도래할 새로운 세계에 대한 꿈에 젖어 있는지 몰랐다. 스승과 제자는 우금치를 넘어 차도에서 벗어난 산길로 접어들었다. 간혹 짙은 어둠 속에서 산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고마한은 그 괴기한 울음소리에도 전혀 떨리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곤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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