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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연재소설 -고마 순례기 (8)
현자들의 숲-2
2017년 09월 16일 (토) 07:08:35 박성훈 stopksk@hanmail.net
   
 

넝마도사는 창밖의 야경에 눈길을 머문 채 불쑥 입을 열었다.

“고마야, 저 성이 무슨 성인지 아느냐?”

“공산성(公山城)이 아닙니까? 그런데 제 이름은 고마가 아닌데요. 성은 고요, 이름은 마한인데요.”

“이놈아, ‘두사부일체’란 말도 모르느냐? 두목과 스승과 부모는 하나다. 내가 부르는 게 네놈의 이름이다.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두목.”

“에이, 고놈 참. 근데 공산성의 원래 이름은 알고 있느냐?”

“웅진성(熊津城)이 아닙니까?”

“그렇지. 하지만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두목, 무식하게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그리고 웅진이 공주의 옛 지명임은 천하가 다 알고 있어요. 삼국사기에 그렇게 나와 있거든요.”

넝마도사는 제자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평생 혼자 살 줄 알았는데 이렇게 살붙이가 생길 줄이야. 고마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귀찮아죽겠다고 해야 하나 아직도 감이 오지 않았다. 어쨌든 이놈을 끌고 갈 데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네놈이야말로 무식하다. 삼국사기는 알고 중국의 사서(史書)는 영 모르는군, 그래. 중국의 일부 역사책엔 저 성을 고마성(古麻城, 固麻城)이라고 했다. 김부식은 고마나루의 뜻을 따와 웅진이라 표기했고 중국 역사책의 저자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발음 그대로 표기했을 뿐이지. 즉 사람들은 저 성을 고마성이라 말하고 웅진성이라고 썼다. 그래서 저 성의 원래 이름을 웅진성이라고 하면 80점이고 고마성이라고 하면 100점이 되는 거야. 이제 알겠니? 이 무식한 놈아.”

그때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고마한은 연한 송아지고기를 맛있게 뜯으며 ‘고마’라는 말을 음미했다. 고마라는 음식점에서 고마성을 바라보며 스승은 그를 고마라고 부르고 있다. 뇌세포를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그를 넝마도사가 일깨웠다.

“고마야, 와인으로 축배를.”

벌써 햄버거 하나를 깨끗이 먹어치운 넝마도사가 와인 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어서 고마한이 와인 잔을 스승의 잔에 부딪치며 한 마디 했다.

“두사부 만세!”

넝마도사도 제자를 위하여 한 마디 거들었다.

“재물손괴범 출옥 만세!”

축배를 든 넝마도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놈아, 고마가 무슨 뜻인 줄 아느냐?”

“모르겠는데요. 저도 궁금하던 참입니다.”

“어휴, 고마가 고마를 모르다니. 고마가 진짜 무식하구나. 이놈아, 고마는 곰의 옛 말이야. 그리고 너는 이제부터 고마세계를 알아야 할 것이야.”

“네? 그럼, 고마세계는 곰의 세계라는 뜻인데 그게 뭔 소립니까?”

넝마도사는 고마한을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마야, 단군신화를 모르진 않겠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천왕이 곰 할머니와 혼인하여 단군왕검을 낳았고 단군왕검은 고조선을 세우지 않았느냐? 따지고 보면 이 땅의 모든 역사는 곰 할머니로부터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신화의 세계가 이곳 공주에 고스란히 펼쳐져 있지. 저 밖을 보아라. 고마성과 그 아래 유유히 흐르는 금강을. 금강도 곰강에서, 공주 역시 곰주에서 비롯되었지. 그러니 이곳 공주에는 곰과 곰의 이야기가 숱하게 깔려 있단다. 조상들이 이곳에 신화의 정원을 조성해 놓은 셈이지. 나는 그 세계를 일러 고마세계라고 부른다.

그럼 어떻게 되지? 고마세계를 품고 있는 공주는 이 나라의 성지일 수밖에 없지 않겠니?”

고마한에게 뭔가 짚이는 게 있었다.

“사부님이 새로 쓰고자 하는 공주의 역사가 고마세계에 관한 것인가요?”

“그렇다.”

고마한은 사학도로서 스승에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배운 역사는 신화의 세계와는 거리가 멀었다. 신화는 다만 역사책의 첫머리에 잠깐 얼굴이나 내밀고 마는 장식품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사부님, 역사는 신화의 세계와는 다릅니다. 역사는 엄밀한 객관적 실증을 바탕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는 학자들이 지금까지 펴낸 기록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 객관적 사료가 더 발견된다면 그에 따라 수정되어야 하겠지만요. 신화를 내세워 뜬 구름을 잡아서는 제대로 된 역사로 대접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신화는 역사의 근본정신을 담고 있다. 역사가 신화를 외면하면 근본정신이 빠진 허깨비 역사가 되는 셈이지. 우리는 신화에 흐르는 정신의 젖줄을 끊임없이 역사에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돼. 그래야 살아 있는 역사가 되지. 허깨비 역사는 허깨비 집단을 만들 수밖에 없어.”

“사부님, 사부님의 생각이 그렇더라도 저는 사부님의 생각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역사의 진정한 소비자는 바로 우리 젊은 세대입니다. 사부님의 역사관으로는 젊은 세대를 전혀 움직일 수 없습니다. 청년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역사야말로 허깨비 역사가 아닐까요?”

고마한의 논리 정연한 되치기에 넝마도사는 움찔했다. 어느새 송아지 요리도 햄버거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넝마도사는 남은 와인 잔을 기울이며 생각에 잠겼다.

“고마야, 너는 왜 나를 스승으로 삼았느냐?”

“사부님에게서 강한 영적 기운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럼 나를 끝까지 믿고 따라야지.”

고마한은 이럴 때일수록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된다고 다짐했다. 이전보다 훨씬 강한 톤으로 스승에게 맞섰다.

“사부님, 확실히 사부님에게는 신비의 영적 기운이 흐르고 있습니다. 사부님과 짧은 시간을 함께 하며 신비한 일도 여럿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 이 땅의 모든 청년에게 마법을 걸 순 없습니다. 아마 그럴 수 있다면 귀찮게 역사를 새로 쓰고자 하지는 않겠지요.

사부님, 역사의 마법은 역사에 객관성을 부여하는 일입니다. 그래야 역사가 역사로서 살아 움직입니다.”

넝마도사는 다시 움찔했다. 지금은 한 발 물러나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다. 만물은 때가 있다. 때를 기다리지 못하면 만사가 일그러질 수 있다. 넝마도사는 솟구치는 의욕을 지그시 눌러 앉히며 말했다.

“음,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오늘은 내가 한 발 물러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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