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방 안은 어두컴컴했지만 생각보다 불결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 생활해 온 곳보다 청결하다고 할 수 있었다. 넝마도사는 입고 있는 푸르스름한 수의와 가슴에 새겨진 숫자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수인번호 1365.

“낄낄낄, 좋아, 좋아. 또 다른 세상이야.”

수감자가 혼자 낄낄거리니 야릇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감방 문이 철커덩 열리며 교도관의 목소리가 철창 안을 울렸다.

“1365번, 새 식구가 들어왔어. 길 좀 잘 들여.”

교도관에게 떠밀려 엉거주춤 철창 안으로 들어선 사내는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았다. 나이 지긋한 미결수 혼자 벽에 기대어 앉아 있을 뿐이었다. 사내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귀퉁이로 가 소지품 보따리를 베개 삼아 드러누웠다. 그는 고참 미결수의 존재도,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감방 안의 분위기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잠시 뒤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넝마도사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지나갔다. 사내를 깨우기는 깨워야 했다. 저대로 두었다가는 옆방에서 항의가 들어오고 결국 교도관을 불러들이고 말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만사가 시끄럽고 귀찮아진다. 넝마도사는 사내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봐, 그만 좀 일어나지.”

사내는 넝마도사의 깨우는 소리에 한두 번 뒤척였을 뿐 여전히 코를 골았다. 넝마도사는 사내를 따끔히 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른 쪽 손가락 마디마디에 철창 안에 떠돌고 있는 음산하고 차디찬 기운을 모조리 불러들였다. 그리고 팔뚝만한 구렁이의 영상을 음산한 기운 속으로 흘려보냈다. 넝마도사의 갈고리 같이 펴진 손가락 다섯 개가 사내의 등을 훑고 지나갔다. 그러자 사내는 진저리치며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뭐야! 감방 안에 웬 뱀이야?”

사내는 공포의 얼굴을 드러내며 앞뒤를 재빨리 살폈으나 소름끼치는 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로소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넝마도사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영감, 뱀 못 봤소?”

“뱀이 어디 있다고 그래. 꿈을 꾼 게로군. 그나저나 1399번, 자네 이름이 뭔가? 신고는 해야 하지 않겠나?”

사내는 넝마도사를 위 아래로 훑어보며 한 마디 내뱉었다.

“신고? 무슨 개뼉다귀 같은 갑질이야. 영감이 나한테 먼저 신고하지 그래.”

넝마도사는 어이가 없었다. 괘씸하리만큼 젊은 놈의 입이 걸었다. 하지만 놈의 마음을 열기 위해선 이쪽부터 조금이나마 열어젖히기로 했다.

“나? 이름은 넝마도사. 죄명은 재물손괴. 자, 됐나?”

그 말을 들은 사내는 야릇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넝마도사? 이름 한 번 웃기는군. 별명이야, 뭐야? 나도 재물손괴. 자, 됐소?”

사내는 퉁명스럽게 몇 마디 내뱉곤 다시 모로 드러누웠다.

2

대전지방검찰청 공주지청 육모방 검사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영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벌써 영감을 상대로 두어 시간째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검사생활 5년째로 접어들었지만 이런 피의자는 처음이었다.

우선 영감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얼굴이 수염으로 뒤덮인 영감은 위아래에 걸쳐 달랑 넝마조각 하나만을 걸치고 있었다. 팬티는 입었는지 모르지만 상체는 알몸임이 확실했다. 그렇다고 특별히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그의 범죄행위는 별게 아니었으나 괴상하고 특이했다. 고마나루 도서관의 책 3권을 직원이 보는 앞에서 막무가내로 파손한 혐의였다. 행위는 괘씸했으나 얼마 되지 않은 피해액만 변상하면 기분 좋게 종결될 사안이었다. 하지만 사건은 묘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육모방 검사는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바짝 붙어 앉아 신문을 시작했다. 전략을 수정하여 최대한 부드럽게 피의자에게 접근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넝마도사.”

“본명입니까?”

“그렇다니까.”

몇 번을 신문해보았지만 같은 대답이었다. 영감의 눈빛이 번쩍이는 것으로 보아 도를 닦긴 닦은 모양인데 ‘넝마도사’를 피의자의 이름으로 조서에 올리자니 어쩐지 검사 자신이 무능해보였다. 육모방 검사는 할 수 없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주민등록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없소.”

“나이는요?”

“나도 확실히 몰라. 한 백 살쯤 되려나?”

기막힌 노릇이었다. 육모방 검사는 마침내 짜증을 냈다.

“누굴 놀립니까? 주민등록증도 없고 나이도 모른다니. 사회생활은 어떻게 합니까?”

넝마도사가 그 물음에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껄껄걸, 그래서 넝마 하나 걸치고 구름처럼 떠돌며 살고 있지 않소?”

검사는 그 대답에서 틈새를 찾은 듯 전의를 불태우며 다시 추궁했다.

“그 구름 한번 유치찬란하시네. 그래서 도서관에 들어가 애꿎은 책을 3권이나 찢어버렸습니까?”

육모방 검사를 빤히 쳐다보던 피의자는 대답했다.

“구름도 때론 천둥번개를 몰고 오는 법이요. 이 나이에 나도 밥값 좀 하려고 그랬소.”

검사의 추궁이 이어졌다.

“밥값? 그게 책을 파손한 이유입니까?”

“그렇소.”

검사는 차근차근 범죄의 동기를 들어보려고 마음먹었다. 어차피 말이 되지 않겠지만 되도록 빨리 사건 같지 않은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다. 그는 형편없이 찢긴 책 3권을 피의자에게 보여주었다. <공주의 역사> <백제멸망의 원인> <백제의 웅진시대와 사비시대>라는 모두 백제의 역사에 관한 책이었다.

“이 책 3권이 피의자가 파손한 책 맞죠?”

“그렇소.”

“도서관 직원이 말렸는데도 불구하고 왜 그랬나요?”

“백제의 역사, 특히 공주의 역사는 다시 쓰여야 하기 때문이요.”

“책을 파손한다고 공주의 역사가 다시 쓰이나요?”

“이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예비하기 위해 내가 상징적인 행위를 해봤을 뿐이요. 왜 ‘퍼포먼스’라는 것 있지 않소? 내, 흉내를 좀 내보았소.”

육모방 검사는 어이가 없었다. 퍼포먼스는 그렇다 치고 공주의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나라의 새로운 역사를 운운하다니,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았다.

“말이 좀 이상합니다. 공주의 역사가 마치 이 나라의 역사라도 되는 듯이 이야기합니다.”

그 말에 넝마도사는 육모방 검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뜸을 좀 들인 후 그는 무슨 비밀 이야기라도 알려주는 것처럼 속삭이듯 말했다.

“공주는 대한민국의 성지요. 대한민국의 영혼이 깃든 곳이지요. 그만하면 내 말을 알아듣겠소?”

피의자의 진지함과는 달리 육모방 검사는 더 이상 피의자를 신문할 흥미를 잃어버렸다. 공주가 대한민국의 성지라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전혀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그만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서둘러 형식적인 신문을 끝낸 뒤 지문조회를 해봐도 피의자의 신분은 오리무중이었다.

죄는 가벼워도 피의자는 피해를 변상할 생각이 전혀 없고, 신분과 주거도 확실치 않아 육모방 검사는 재물손괴죄로 피의자를 구속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