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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학, 그 무게와 깊이
조동길 교수의 러시아 여행기-1
2017년 07월 10일 (월) 08:53:21 조동길 dkcho@kongju.ac.kr

 

   
▲ 러시아 지도 <출처> 두산백과

 ▲ 러시아와 러시아 문학

러시아는 역사가 오래된 나라이지만 나같이 좀 나이든 사람에게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나라다.

어려서 귀에 못이 박이게 배우고 들었던 공산주의 원조국가, 우리의 민족적 비극인 6.25전쟁(예전엔 6.25동란, 또는 6.25사변이라고 했음)의 배후 조종 국가라는 말이 워낙 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의 러시아와 1991년에 해체되어 사라진 소련은 분명히 다르다. 실제로 소련이라는 나라가 생기면서 러시아라는 나라 이름은 폐기되어 더 이상 사용되지 않다가 1991년 이후 부활되었다.

그렇지만 소비에트 연방이라는 나라는 없어졌어도 그 연방을 구성하던 가장 큰 나라 중의 하나가 러시아였고, 또 러시아가 빠진 소련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비중이 컸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때문에 나이 든 사람들은 종종 러시아와 소련을 혼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예전의 그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현재의 러시아는 전혀 다른 별개의 국가다.

현재의 러시아는 우리와 대등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시장 자본주의 체제의 나라다. 우리나라와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잘 맞아 매우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와는 경제 대국인 일본이나 미국, 동맹 관계라는 중국도 아직 맺지 못한 단기 비자 면제 협정이 체결되어 상호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은 두 나라의 밀접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호혜적인 관계는 우리나라 항공우주 기술 발전에 대한 러시아의 기여와 함께 엄청난 매장량을 자랑하는 러시아의 천연자원 수입 등으로 앞으로 점차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런 러시아에 며칠 동안 다녀왔다. 일반적인 단체 관광 상품으로 다녀온 게 아니라 러시아 문학의 현장을 돌아보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다녀왔다.

여행사에서 참가자를 모집할 때 내세웠던 타이틀은 <나태주와 함께 하는 러시아 문학 기행>이었다. 나태주 문화원장은 공주를 대표하는 시인인 동시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정 시인이다. 그의 ‘풀꽃’이라는 시는 웬만한 한국인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공주에서 살면서 글을 쓰는 문인 몇과 그 가족 등 16명이 그와 함께 조촐하게 한 팀이 되어 여행을 했다. 참가 인원도 적고, 프로그램 자체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문학 기행 상품인데다 시기 또한 러시아의 관광 성수기로 접어들어 자연히 여행비는 가장 비싼 가격으로 지불하는 것을 감수해야 했다.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문학에 뜻을 둔 청소년들뿐 아니라 다른 분야로 진로를 정한 사람들까지 세계문학 작품을 읽는 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되어 있었다.

당시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의 작가가 쓴 작품들은 물론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도 그 독서 목록에서 빠질 수 없었다.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한 이중 번역의 어색함이나 별로 좋지 않은 지질(地質)에 깨알 같은 글자로 세로 인쇄된 책이 독서하기에는 고역이었지만 목마른 사람이 갈증을 채우는 것처럼 밤을 새서 그런 작품을 읽었었다.

도서실에서 빌려다 보는 책은 그래도 좀 나았지만 친구들이나 선배들이 보던 책은 표지나 뒷장이 몇 장씩 떨어져 나간 것도 많았는데, 그런 책도 없어서 못 읽을 정도였다.

그 시절 그렇게 읽었던 작가들이 도스토예프스키, 고골리, 체호프, 톨스토이, 푸시킨, 투르게네프, 고리키 등이었다. 또한 그런 작가들보다 약간 시대가 떨어진 당대의 작가들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 숄로호프 등도 열심히 읽었었다.

그런 러시아 문학의 현장을 탐방한다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물론 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면서부터는 러시아 문학 작품을 다시 읽을 기회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러시아 문학 작품들보다는 문학이론가들인 쉬클로프스키나 바흐친, 베르자예프 등을 다 자주 거론해야 했다.

어쩌다 러시아 문학과 우리 문학의 관계에 대해 언급되는 것조차 고작해야 우리 문학사에서 러시아 문학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작가가 춘원 이광수고, 또 일제 강점기에 러시아로 망명했다가 일본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당한 포석 조명희,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 당국이 체제 선전 도구로 쓰기 위해 기획한 러시아 방문단을 이끌고 두 달 동안 다녀온 후 ‘소련 기행’이란 글을 썼던 상허 이태준의 사례 등을 간혹 필요에 따라 언급하는 정도였다.

그러나 내 젊은 시절의 러시아 문학 체험은 마음 속 깊이 간직되어 마치 첫사랑의 흔적처럼 뚜렷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비록 그 시절의 열정은 거의 사라졌어도 작품 활동을 하는 현역 작가로서 그 체험은 매우 유용한 창작 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러시아 문학 기행이 어찌 설레지 않을 수 있겠는가.

러시아 문학을 알려면 우선 러시아의 역사와 풍토를 알아야 한다. 어느 나라 문학이나 마찬가지이지만 한 나라의 위대한 문학은 그 나라(민족)의 역사와 문화적 풍토를 배경으로 탄생하기 때문이다.

러시아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하는 건 서양 중세인 9세기 경 슬라브 족이 이동하여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방에 세운 키예프 공화국이 그 시초라고 알려져 있다. 그 후 모스크바 공국 시절을 거쳐 몽골 족의 침략으로 약 200년 동안 지배를 받았다.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동토(凍土)와 다름없던 땅에 흩어져 살면서 약소국가로 명맥을 이어가던 러시아를 일약 유럽의 중심 국가 반열로 진입시킨 공로자는 러시아의 영원한 황제 표트르 대제(大帝)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왕위에 오른 이후 러시아를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노심초사했다. 그가 먼저 생각한 것은 러시아보다 훨씬 앞서 있는 유럽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그는 신분을 숨기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여러 나라를 거치면서 스스로 항해술, 의학, 인문, 건축, 과학 등 선진 문물을 직접 배우고 익혔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야심찬 계획은 얼음덩어리의 황무지나 다름없는 내륙 중심의 국가에서 해양 국가로의 변화를 위한 바다로의 진출이었다.

귀국한 그는 바다와 가까운 서쪽인 유럽 쪽으로 나라의 중심을 이동시키기 위해 수도 이전을 계획했다. 그는 유럽에서 직접 보고 온 여러 도시의 장점들만 모아 새로운 수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스웨덴과의 전쟁으로 확보한 핀란드 만 근처, 네바 강과 그 주변의 늪지대에 완전히 새로운 계획도시가 건설됐다. 오늘날의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바로 그 도시다.

이 도시는 이탈리아 수상 도시 베네치아를 본떠 도시 전체의 구조를 백여 개의 크고 작은 섬과 강 하구의 삼각주, 늪지대를 운하로 연결하고, 곳곳에 다리를 놓아 매우 아름다우면서 이용에 편리하도록 설계하였고, 바티칸 대성당 등 유럽 여러 대도시에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는 대성당을 벤치마킹하여 아름답고도 화려한 러시아 정교회 성당을 건립하였으며, 또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하여 거대한 궁전과 그 앞의 대로를 재현해 내는 등 철저하게 유럽식의 계획도시로 새롭게 탄생했다.

이곳으로 수도를 옮긴 황제는 귀족들을 강제로 이주시키고, 국가의 주요 기능을 여기서 수행되게 함으로써 약 2백 년 동안 이 도시는 러시아의 중심 도시로 기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 기간 동안 의욕적으로 추구했던 개혁을 통한 러시아의 근대화는 지배 계급 사이의 반목과 대립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사후 혼란기를 거쳐 즉위한 예카테리나 황제 시절에 이르러서야 개혁의 꽃을 피워 러시아의 면모가 비로소 일신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랬던 러시아가 역설적으로 19세기 나폴레옹의 침략 전쟁 때문에 유럽의 강대국 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불세출의 영웅이라는 나폴레옹은 러시아를 만만하게 보고 대규모 군사를 이끌고 침략했으나 혹한의 날씨와 러시아 군의 강력한 대항으로 결국 처참하게 패배하게 되고, 러시아는 승전국으로서 유럽의 강대국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또한 20세기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일본의 동맹국에 맞서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하여 승전함으로써 미국과 더불어 세계를 양분하여 지배할 정도로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이렇듯 공교롭게 약 100여 년의 시차를 두고 세 번에 걸쳐 러시아가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는데, 소련의 해체 이후 잠시 약화되었던 국가 세력도 그들의 자부심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170배에 이르는 넓은 국토와 지하에 매장되어 있는 엄청난 양의 자원들을 바탕으로 점점 회복하여 가고 있는 중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을 양강(G2)이라고 하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군사적으로는 최강의 핵무기를 비롯한 최신 무기 체계로 스스로를 미국과 더불어 양대 강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러시아의 역사와 풍토를 배경으로 하여 형성된 러시아의 문학은 고대 쪽은 별로 보잘 것이 없고, 러시아 제국 말기 점차 붕괴되어 가는 구체제의 제도 및 사회 변화와 더불어 젊은이들 사이에 은밀하게 퍼져 가던 새로운 사상의 확산 등이 글 속에 담기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낡은 것을 끝내 지키려는 보수적인 귀족들, 기득권을 내 놓기 싫어하는 부자들, 거기에 맞서 새로운 생각을 실천하려는 젊은이들, 두려움을 무릅쓰고 옛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려는 용감한 사람들이 맞서는 이야기는, 위험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매력을 지녔다.

비록 그 시도가 실패하는 한이 있어도 그것은 좌절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을 위한 힘이 된다. 이런 이야기들이 러시아 작가들에 의해 창작되고, 많은 독자들이 그 작품을 사랑하여 러시아 문학이라는 대하(大河)가 도도하게 흐르기 시작했다.

제국의 혼란기에 흔들리는 체제 속에서 미흡하나마 개인의식을 존중하며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풍자적 작품을 썼던 고골, 인간의 내면을 무섭도록 파고들면서 심리주의 리얼리즘의 전형을 창조해낸 도스토예프스키, 인간성의 고양을 위해 전쟁과 파괴를 멀리하고 평화를 갈구했던 휴머니즘의 전도사 톨스토이, 리얼리즘 단편소설의 양식을 정립한 선구자 체호프, 가장 유럽적인 정서를 보여주었던 심리묘사의 대가 투르게네프, 사회적 사실주의를 제창하고 그것을 스스로 실천하고 행동한 고리키 등 각각 특색 있는 작가들에 의해 러시아 문학은 더욱 빛나게 되었다.

그들의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러시아의 긴박한 역사와 역동적 사회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며, 그들이 활동했던 공간은 러시아의 광막한 자연 환경이나 귀족과 서민들의 삶이 꿈틀대는 도시였다.

그래서 러시아 문학, 특히 소설의 경우 그 등장인물이 많고, 사건이 중첩되어 복잡하고, 묘사가 지루할 정도로 치밀하고, 심리 묘사가 기가 질릴 정도로 깊고, 골치가 아프도록 주제의식이 철학적이고, 문장이 숨이 막히게 길고, 눅눅할 느낌이 들도록 문체는 무겁고, 분위기는 비 오는 날처럼 칙칙하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 문학의 특색을 어둡고 칙칙함으로 규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러시아 문학의 빛깔은 어둡다, 그리고 무겁다. 어둡고 무거운 문학, 그러나 그 안에는 단순한 어둠과 무거움만 있지 않다.

그 어둠과 무거움은 수많은 세계 사람들에게 인생과 역사를 생각하게 해 주는 힘이 되고 있으며,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 주고 있다.

밤이지만 어둡지 않은 밤, 러시아의 여름 백야(白夜)와 같은 역설, 그게 바로 러시아 문학의 핵심이자 본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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