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무더위에 독서삼매에 빠져 있습니다.

책 이름은 ‘고려사 불교관계 사료집’이라고 하는데

오래 전에 알던 효탄스님이 번역하고,

친절하게 주를 달은 책으로

민족사에서 나왔습니다.


지금은 절판되어서

일반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다기에

효탄스님 계신 곳으로 전화를 하여

귀한 책을 한권 받았습니다.


고려사를 한번 보려 한것은

고려사 불교에 우리 지역 공주와

공주의 사찰이 등장하는지 궁금해서입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보는데 아쉽게도

차령 이남 운운하는 훈요십조 때문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특기할 만한 기록이 있어 소개합니다.

 


숙종 6년 신사 1101년입니다


8월 계사일에 다음과 같은 조서를 내렸다.


원효와 의상은 우리나라에서는 성인이다.

그런데 비문도 시호도 없어서

그 덕이 알려지지 않고 있으니

나는 심히 유감으로 생각한다.


원효는 대성화쟁국사로

의상은 대성원교국사로 추증하노니


해당 관청에서는

그들의 살던 곳에 비를 세워

공덕을 새김으로써 영원히 기념하게 하라.

 

나는 공부가 적어

원효스님을 ‘화쟁국사’라

한다는 소리는 들었었지만.

의상대사에 대해서는 이번이 금시초문입니다.


고려가 아무리 불교를 국교로 하였다지만,

과거 신라의 고승인 원효와 의상에 대해서

국왕이 이만큼 마음을 기울여 존경하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또 인종 6년 무신 1128년 일입니다.


여름 4월에

하늘에 변괴가 생기고 기후가 순조롭지 못하니

은혜를 베풀어 형벌을 가벼이 하는 사면을 단행하면서

원효 의상 도선등은 다 덕이 높은 승려이니

해당 관리로 하여금 봉직을 추증하게 할것이다 라고

하였다 나옵니다.


또 고종 40년 계축 1253년

6월에는 사면을 단행하면서

홍유후 설총과 문창후 최치원에게

작위를 추증하였으며 라고 나오고

충선왕 즉위년 무신 1308년에도

왕이 하교하기를

“지리국사인 도선과 유종인 홍유후 설총

문창후 최치원에게는 마땅히 호를 가할 것“이다 라고 했고

 


충선왕 8년 임오 1282 5월 사면과 덕호 존호를 올리는 가운데

“도선국사, 문창후, 홍유후에게 각각 봉작을 더하여 줄 것”이며

운운하고 있으며


“충숙왕 15년 무진 1328년에는

우리나라의 문창후 최치원과

홍유후 설총에 대한 제향은

힘써 정결하게 거행할 것이다“ 라 하였다 나옵니다.


원효와 의상 설총과 최치원 도선국사가

고려국에 이르러서 존경받는 국사가 되고

작위를 받는 문창후와 홍유후가 되었으니

고려가 옛사람의 가르침이나 전통에 대하여

계승 발전시키고자 했던 단면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지만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내용입니다.


우리 공주는 시가지 중심을 흐르는

4키로미터 정도 되는 제민천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민천’이라는 이름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 생겼는지

나로서는 알 길이 없었습니다.


그 답이 될지 모르는 내용이 고려사에 나옵니다.


고종 40년 계축 1253

겨울 10월 무신일에


국내의 명산대천과 탐라의 신들에 각각

제민濟民이라는 신호를 붙였으며

…운운입니다.


결국 고려의 고종에 의하여

붙여진 ‘제민’이라는 이름이

오늘의 공주를 흐르는

제민천이라는 이름의 시작이 아닐까요.


아직 다 읽지는 않았지만,

불교가 국가를 좌우하던 시절에

여러가지 불교와 관련된 이야기를 보는 것은

한편 즐겁기도 하고 한편 안타까운 모습도 보입니다.


팔관회 연등회 우란분회 등

불교의 전통 행사와 관련한 불사 이야기와

일부 승가의 타락상으로 인하여 생겨나는

국가의 존망과 관련한 내용들입니다.


샤워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독서삼매에 드는 것은

여름 그 어느 피서법보다

즐겁고 시원한 일 같아서 추천합니다.
 

저작권자 © 특급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