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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수영성, 그 절경에 ‘풍덩’
정기범의 역사산책-4
2016년 02월 27일 (토) 22:16:13 정기범 기자 jkb4412@daum.net

   
 

충남 보령시 오천포구에 에메랄드 빛 반짝거리는 물결 위 강선암을 올려다보면 충청수영성 서쪽을 감싸는 성벽이 늘어서서 장관을 연출한다.

눈에 들어온 시선을 따라 성벽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러자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애잔해 보이지만, 부드러운 무지개 곡선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홍예문이 나온다. 이 홍예문이 바로 충청수영성의 서문인 ‘용금문’이다.

4개의 문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용금문’만이 남아 방랑객을 맞아 준다. 사라져 버린 영화(榮華)에 대한 비애 때문일까? 애잔함과 아름다움이 묘하게 교차된다.

   
 

천수만 입구의 아름경관이 살아있는 이곳에는 과거 많은 시인묵객들의 사랑을 받았던 황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수영성내 대표적 건물이었던 영보정을 필두로 충청수영성이 복원되고 있어 그 화려한 부활이 기대된다.

   
 

충청수영은 조선 초기에 설치되어 서해바다 조운을 지키고 왜구를 막는 해안방어의 충청 최고 사령부로, 천수만 깊숙이 위치해 급한 조수의 물살을 피할 수 있기 때문에 수군진을 갖추는데 유리해 천연요새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이 충청수영성은 1510년 충청수사 이장생이 돌로 쌓은 성으로, 현재는 윗부분이 무지개(홍예)모양의 용금문을 비롯한 1,650m의 성벽이 남아 있다.

   
충청수영성 홍예문

북쪽 성벽과 남쪽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쌓았고, 서벽은 바다와 면한 지점에 쌓아 절벽을 이루고 있다.

서벽 앞은 U자 모양의 포구를 이루어 전형적인 조선시대 수군진의 모습을 유지했다고 하며, 그 모습까지 일부 재현을 할 계획이라고 한다.

계단을 올라 홍예문을 통과하면 세월의 황망함을 간직 한 채 홀로 덩그러니 진휼청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에 그 곳에 있었던 많은 건물들은 아픈 세월 속에 홀연히 사라졌다. 영보정은 기록 속에 충청 제일의 천하명승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산선생을 비롯해 조선시대, 내로라하는 묵객들이 찾아와 많은 시문을 남겼다.

   
진휼청

영보정의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주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명나라와 일본이 강화조약을 서두르는 어수선한 와중에 선조를 대신한 세자 광해군이 호남 땅을 통치하려 내려오게 되는데, 이때 충청도를 거치게 된다.

송유진(宋儒眞)은 이때 전란의 후유증, 1593년의 대기근으로 굶주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민심이 사나워지자 이들을 선동하여 천안과 직산 등지를 근거지로 지리산과 계룡산 일대까지 그 세력을 떨쳤으며, 그 무리는 2천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이들은 아산과 평택의 병기고를 약탈한 뒤, 이듬해 정월보름날 수비가 허술한 도성까지 공격키로 했으나, 그 직전에 체포돼 처형됐다.

당시 송유진이 반란을 일으키자 홍주성에서 충청수영성으로 광해군의 거처를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광해군의 명령으로 이항복이 미리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충청수영성을 다녀와서는 광해군에 아뢰기를 “저하! 가기가 마땅치 않사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혹자가 나중에 그 의중을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세자가 영보정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시절을 외면한 채 방탕한 마음이 생길까 우려해 거짓 보고를 했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 곳 영보정에 오른 이를 한 명 더 소개하면 조선 숙종 때의 학자 이간인데, 아산의 민속마을인 외암마을의 ‘외암’이란 단어가 이 분의 호로 알려져 있다.

그는 송시열을 잇는 수제자 권상하의 문하로서 ‘강문팔학사’에 해당하는데, ‘강문팔학사’란 권상하의 제자 중 빼어난 여덟 명의 인물을 일컫는 말이었다.

풀이하면 ‘황강(黃江) 문하의 여덟 선비’라는 뜻이다. 황강은 권상하가 거주했던 충청도 제천의 마을 이름이었으므로 이런 호칭이 생겨났다.

팔학사의 구성은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세간에서는 대체로 한원진, 이간, 윤봉구, 최징후, 성만징, 현상벽, 채지홍, 이이근 등을 꼽았다. 그중에서도 단연 두각을 나타낸 인물은 한원진과 이간이었다.

바로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인간과 동물, 마음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는 ‘호락논쟁’의 서막이 오천포구 건너 한산사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호락논쟁은 다음에 자세히 소개하기로 하고, 온산에 신록이 물들 무렵 한산사로 향했을 이들의 설렘을 따라 그 시절 묵객들의 찬사를 기억하며 새로 태어난 영보정과 바다 건너 한산사가 있던 자리를 찾아가 본다.

   
하백원의 그림(영보정의 1842년 모습)

충청수군은 임진왜란 때는 남해 바다에서 통제사 이순신과 연합작전을 전개했다. 특히 정유재란 때에는 칠천량 해전에서 충청수사 최호가 통제사 원균과 연합하여 싸우다가 함께 전사하기도 했다. 병자호란 때는 충청수군이 강화도 갑곶에서 청군을 방어하는 등 국가 위기 시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다른 수영성 유적은 대부분 훼손되고, 원래의 경관을 잃어버려 아쉬움을 주고 있지만, 충청수영성은 그나마 자연지형과 함께 경관이 남아있고, 기록의 흔적까지 남아 있으며, 2018년까지 목표로 복원을 하고 있다.

1901년 보령군수 권성수에 의해 훼철된 충청수영성을 현재 같은 직급의 보령시장의 진두 지휘아래 역사의 숨결이 살아 있는 충청수영성 복원사업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으니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지도자라면 토목공사가 난무한 시점에 몇 백 년을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전남의 여수나 경남의 통영 못지않게 역사와 전통이 함께하는 오천항도 ‘충남의 나폴리’라 불릴 만큼 미항인 만큼 역사탐방과 연결시켜 관광 활성화를 기대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이 온고지신방랑객도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옛 묵객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시 한 수를 읊어본다.

영보정을 품고

구절양장 서해바다 오천포구 언덕 위
슬프고도 아름답게 뼈만 남은 용금문은
정유년 칠천량 회자됨에 충청수군 한을 아는지
앙상함이 수줍다고 살포시 그 자태 드러내는데

홀로 남은 진휼청 뜨락아래 앞 섬 바라보며
눈을 감고 선현유학 호락논쟁 속
잔잔한 물결 넘어 한산사 고소10경 그려보니
천하묵객 절세비경 감탄사를 내뱉는 소리 들리고

공덕비는 타국 땅에 수호신 되어 바닷길 지키는
계금장군 떠올리게 하니 아 눈꺼풀이 다시 떨려
임진년, 또 임진년 정유년, 또 정유년
찰나 500년의 황망한 시간 속에 영보정이 환생으로 보이나니

그 명승이 푸른 물결 넘실거려 낮달 걸린지라
영보정을 품에 안고 기쁨으로 홀연히 찾아온 방랑객은 눈시울 붉어지네

 

   
계금장군 공덕비
오천초등학교 뒤편으로 가면 명나라 절강성의 수군장으로 임진왜란 때 3000명의 수군을 이끌고 보령 오천에 있는 충청수영성에 상륙했다가 전라도로 이동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노량대첩에 참여, 왜군을 토벌한 '계금장군 공덕비가 있으며 얼마 전 중국에 있는 후손'이 보령을 방문하여 화제가 됐다.

계금장군 비문 해독에 따르면, 계금 장군이 전쟁을 치르는 중 부하장수를 잘 보살피고 고을사람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며, 갑자기 바다에 폭풍이 일어 많은 배가 침몰하자 조선의 사공 중 물에 젖어 몸이 언자를 보고 자신의 옷을 벗어 입혀줄 정도의 인덕과 어린아이일지라도 속이지 않은 청렴함을 지녔다는 일화가 기록돼 있다.

또한, 정유재란(1597~1598) 당시 백성들이 짐을 운반해주고도 삯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우마의 나이와 털색을 기록해 삯을 지급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계금장군은 어느 사이 자연스레 보령 지역의 토속신이 돼 민속자료로서도 가치가 있다.


   
 
오천항은 키조개 산지로도 유명하다. 쫄깃쫄깃한 키조개 관자와 신선한 야채를 고추장 양념에 버무린 키조개 볶음은 온고지신 방랑객이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이 지역의 향토음식이다.

 

봄이 오는 것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매섭다. 시샘도 아랑곳하지 않고 춘삼월은 오고 있다.

꽃피는 계절에 매콤 달콤, 둘이 먹다 죽어도 모를 맛을 찾아 충청수영성이 있는 충남의 나폴리 오천항으로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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