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 바로 이어져 있는 학생의 집에 도착하여, 집에서 기르는 악어를 구경하고, 여기저기 집을 간단히 구경한 후 야외의 나무 밑에 마련된 식탁에 둘러앉았다.

학생의 통역으로 서로 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누었다. 나에게 인사말을 하라 해서, 초대를 해 주어 감사하다다는 말과 함께 건강하시고, 부자 되라는 덕담을 했다.

학생의 여동생과 다른 여성들이 미리 준비한 음식들이 나왔다. 어부이자 선장인 학생 아버지가 직접 잡았다는 청새치 회를 비롯해서 가리비 조개, 생선 구이, 꼴뚜기구이, 꼬막 조개, 굴, 채소 볶음, 돼지갈비, 대하 등 여러 음식이 펼쳐졌다.

비교적 우리 입맛에 맞게 조리되어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맥주와 양주, 우리가 가지고 간 소주 등 여러 술들이 오고가면서 즐거운 시간이 이어졌다.

중간에 학생의 외사촌 형이라는 이 지역 고위 경찰이 합석하여 말은 통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서로 고마운 뜻을 주고받았다.

나는 술을 못해서 음료수 한 캔을 나눠 마시며 자리를 지켰다. 학생의 어머니를 비롯한 여자들은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음식들을 먹었다. 도중에 학생 아버지의 동료라는 분도 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학생의 집에서 환대를 받다>

술과 음식에 배가 불러 4시 무렵에 작별을 하고 돌아왔다. 오는 길에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라이프 대학에 들러 캠퍼스를 잠시 둘러보고, 호텔로 돌아와 마사지 하는 애들을 불러 피곤을 좀 풀어 보려 했으나 솜씨가 영 시원찮아 괜히 12불만 날려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쉬다가 8시 넘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해서 넷이 나가서 한국 음식을 한다는 식당의 김치찌개를 먹었다. 우리 음식 비슷하기는 하지만 재료가 달라서인지 흉내만 내는 식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서양인이 즐비한 백사장을 산책하며 바람을 쐬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은 호텔 4층에 있는 식당에 가서 쌀죽 한 공기와 계란 프라이 한 개로 때우고, 잠시 쉬다가 10시에 오토바이를 개조한 툭툭이라고 하는 것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며 구경했다.

넷이 한 시간 정도 타는 요금이 15불이라고 한다. 바닷가의 좋은 땅은 이 나라 총리인 권력자 훈센이 차지하여 울타리를 쳐 놓고 못 들어가게 해 놓았다.

그의 집은 이 나라 곳곳에 있다는데, 이곳에도 으리으리한 규모의 저택이 전망 좋은 곳에 그림처럼 지어져 있었다.

내남없이 민주화가 안 된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통상적인 모습이랄까. 그런 풍요를 누리는 권력자 대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빈곤과 고통을 안고 살아가야 할까. 공수래공수거라 했는데 인간들의 욕심은 한이 없는가 보다. 길가의 피난민 난민촌 같은 현지인의 허름한 집이나 관광객들에게 구걸하는 남루한 복장의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배가되었다.

점심은 학생의 이모가 운영한다는 바닷가 식당에서 먹었다. 식탁과 의자를 빌려 주고 돈을 받는다고 하는데 음식을 3가지 주문하면 자리 값은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학생의 집에서 어제 먹었던 음식 재료들을 얼음에 채워 가지고 와서 여자 셋이 조리를 하여 그걸로 술안주를 하여 즐겁게 밥을 먹었다. 아내가 사서 넣어 준 진공 포장의 반찬 몇 가지가 입맛을 돋우어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난 후 학생의 아버지가 합석하여 술들을 마셨다. 햇볕은 따가우나 습도가 높지 않아 그늘 밑은 시원했다.

서양인들은 모래사장의 긴 의자에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그러다가 더우면 바다에 들어가 수영을 하고, 다시 나와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셨다.

세 젊은 여자가 정성껏 요리를 만들어 주니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우리 넷은 그녀들이 마트에 가서 구입해 왔다는 이 나라 전통의 가벼운 상의를 입고 기념 촬영을 하며 아세안 정상회담을 흉내 내는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해변 식당에서 술과 음식을 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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