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벅, 무나 두부가 잘려나가듯 한해가 가고 다시 새로운 해가 되었다. 어찌할 텐가?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각오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때 중요한 것은 새로운 시각(視角)을 갖는 것이다. 이렇게 보던 것을 저렇게 보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 지난해에 저렇게 살았으면 새해에는 좀 이렇게도 살아보아야 할 일이다. 지난해에 저렇게 보고 듣고 한 것들을 이렇게 보고 듣고 해볼 일이다.

그런 것을 우리는 ‘변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변화를 세상에서 가장 실천하는 것은 자연이다. 나무나 풀들을 좀 보시라. 겨우내 죽은 듯 있다가 봄 되면 일제히 기지개켜듯 새싹을 내밀고 꽃을 피우지 않는가.

실로 봄마다 감탄과 찬사가 거기에 있다. 그래서 풀이나 나무한테 무언가를 배우려고 해야 한다. 언제든 풀이나 나무는 나의 스승이며 성실한 이웃이며 아름다운 동행. 우리도 새해가 되고 봄이 되면 한그루씩 나무나 풀이 되어 기지개를 켜면서 마음속 함성으로 일어서야 할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그렇다 해도 나이든 사람들은 새해와 새봄 앞에서 근심이 없을 수 없다. 우리들 앞에 있는 어린 사람들과 젊은 사람들의 일이다.

그들이 진정 행복한 삶을 살고 보람찬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데, 항용 그렇지 못하다 해서 마음이 무거운 것이다.

지난해 나는 전국을 돌며 127회나 되는 문학 강연을 했다. 스스로도 그 횟수에 놀라면서 내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반응에 주목한다. 자기네들이 지쳐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고달프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기들 마음을 좀 위로해 달라는 것이다. 진정한 마음의 이해자, 친구, 이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건 놀랍게 중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확실히 마음의 위로나 축복이 요구되는 시대다. 의식주나 자동차가 없어서 사람들은 외롭고 불행하지 않다.

마음이 고달프고 구슬퍼서 우울하고 힘들고 그래서 불행한 마음을 갖는 세상이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하나의 희망이기도 하고, 가능성이기도 한다. 그동안 챙기지 못했던 자아와 정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는 이런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마치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 나오는 듯 한 빛나는 개화의 순간을 느낀다. 사뭇 진저리를 치기도 한다.

그렇다. 지금이 우리 민족이 정신적으로 다시금 깨어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것을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 교육을 맡은 분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좀 더 정신적으로 앞서고 깨인 사람들이 젊은 세대들, 어린 사람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행복이란 것도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을 때 행복감을 느꼈는가를 생각해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그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행복감을 느꼈다.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결코 어른들의 소유가 아니란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것이 그럴진대 아이들의 인생 또한 우리 어른들의 것이 아니다. 이점을 부모들은 진작부터 알았어야 했다.

어디까지나 그것은 미래의 것이고 젊고 어린 사람들, 저들의 것이다. 나는 또 전국을 돌며 현명한 중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들은 말을 잊지 못한다.

그것은 자기네들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이 의외로 어리지 않고, 미성숙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이외로 깊고, 아름다우며, 옳을 때가 있고, 완전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이것은 피차의 가능성이요 희망이요 기쁨이다.

우리 아이들을 기를 때 내가 가진 몇 가지 생각 가운데 한 가지는 최선의 선택보다는 차선의 선택이 더 좋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남자의 세 가지 불행 가운데 첫 번째를 소년고등과(少年高登科)라 했다. 그것은 어린 나이에 1등으로 과거에 급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평생을 그 사람을 따라다니며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늘상 1등만 가라고 종주먹을 댈 일이 아니다. 늘 우리 아이들이 상을 받아오는 것만을 기뻐할 일도 아니다.

새해가 되었고 머지않아 새봄이 또다시 이 땅에 벼락같이 찾아올 것이다. 새봄을 가장 정직하게 열렬하게 알려주는 건 역시 풀이나 나무들.

우리 자신도 한 그루 풀이나 나무로 새봄 앞에 서야 하고 우리 아이들, 젊은 세대들도 새 풀이나 나무처럼 눈부신 태양 앞에 새롭게 태어났으면 진정 기도하며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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