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천지 어디를 가 보아도 공주만큼 아리따운 고장은 없다. 눈길 돌리는 곳마다 살가운 산천이다. 옹기종이 모여서 이루고 또 이룬 인간의 공간, 마을과 길이다.

조금은 여성적이라 그럴까. 둥그스름한 산봉우리는 여인의 젖가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처녀의 그것보다는 아이라도 두서넛 낳아서 기르는 푸진 아낙네의 그것이다. 편안하다. 가득하다. 보는 이의 가슴마저 부풀어 오른다.

어디까지나 공주의 자연과 풍광은 대칭과 짝으로 설명된다. 공주를 말하는 대표적 문장인 춘마곡(春麻谷) 추갑사(秋甲寺)만 해도 그러하고 계룡산과 금강의 어울림 또한 그러하다.

계룡산, 오악 가운데 하나인 계룡산. 상악단, 중악단, 하악단 가운데 오직 하나 남아있을 뿐인 중악단이 있는 계룡산. 산의 네 방위에 절을 하나씩 둔 산이 어디 있겠는가.

동학사, 갑사, 신원사, 구룡사. 이것만 보아도 보통의 산이 아니다. 조화요, 위엄이요, 평화요, 다시금 평등이다. 이것이야 말로 음양오행의 표현으로서 동양 철학과 인생관의 요체이다.

이러한 계룡산과 짝을 이루어 또 금강이다. 계룡산이 아버지라면 금강은 단연코 어머니. 전북 장수의 뜬봉샘으로부터 발원하여 서럽게 서럽게 한반도의 들판과 골짜기와 마을을 스쳐와 우리 고장 공주 어름에서 슬슬 그 고달픈 몸을 풀며 빛나는 육신을 드러낸 채 질펀하게 누워 있는 금강이야말로 정말로 여성성 그것이요, 정답고 마음씨 깊은 우리들 어머님의 품성이 분명하다.

한번인들 우리의 금강이 소리 내어 흐르거나 노한 것을 본 적이 있었던가. 다만 고요히 당신의 설음을 가슴에 안고 흐르고 흘러 끝내는 바다와 한 몸을 이룰 뿐이다.

이러한 품세는 공산성을 둘러보아도 마찬가지다. 조그만 성채인데도 그 네 방위에 각각 네 개의 누각을 세웠고 그 아래 인간의 통로를 두었다. 동문루와 금서루와 진남루와 공북루. 그 조화로움과 너그러움이 너무나 편안하고 당연하여 다만 사람들이 망각할 뿐이다.

백제, 아니 그 이전부터 우리들 인간의 정다운 삶의 터전이 되어준 공산성. 우리 자신 어린 사람으로 청년으로 얼마나 많이 공산성을 오르내리며 오늘날이었던가.

이러한 공산성과 짝을 이루어 다시금 제민천이다. 도시 가운데로 개울이 흐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축복이요 아름다움이요 크나큰 자연의 은택이다.

도시라 해도 개울을 끼고 있는 도시와 그렇지 않은 도시는 천양지차(天壤之差)로 다르다. 개울은 다만 물이 흐르는 길만이 아니고 인간의 마음도 따라서 흐르는 정신적 가치를 지닌 자연공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가령, 청주의 무심천(無心川)이 불교적인 의미망을 지닌다면 우리의 제민천은 다분히 유교적인 의도에서 지어진 이름이겠다. 제민천(濟民川). 구세제민(救世濟民)에서 비롯된 이름이겠는데 이 얼마나 의젓하고 공의롭고 너그러우신 이름인가.

적어도 우리 공주 사람들은 이러한 자연환경에 안겨서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너무나 가깝고 친숙해서 그러하지 그 가치와 품격이 그 어떤 도시와도 판이하게 다른 고장이 공주인 것이다.

나는 가끔 ‘정말로 공주가 아름다운 고장임을 공주 사람들만 모른다.’고 말할 때가 있다. 그러나 나는 공주 태생이 아니다.

16세 나이, 고등학교 마침인 공주사범학교에 들어와 공주에 살면서 공주의 산천에 반하고 공주 사람들에게 반하여 공주에 살기로 한평생 소원을 세우고 그것을 가슴에 안고 오늘날까지도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내가 처음 만난 공주는 세상에서 가장 선진한 고장이었고 서양 문물 또한 십분 접할 수 있는 이국적이면서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충분히 명상적이고 사려 깊고 웅숭깊은 도시였다.

영성이 느껴지는 도시라 그럴까. 어린 나이에도 대번에 그것은 감격이었고 가슴에 못이 되어 박혔다. 그야말로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절대로 나는 이러한 나 자신의 인생행로에 대해서 일말의 후회 같은 것도 없거니와 나에게 있어 공주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고장이고, 공주에 사는 일 자체가 행복의 조건이며, 그 하루하루가 행복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그러한 내가 공주 시내에서 주목하는 지역은 강북이 아니라 강남지역, 올드 공주이다. 흔히들 강남은 망했다 그러고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 큰일이다 그러는데 적어도 오늘날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지금이야말로 공주가 공주다운 모습을 보일 때라고 본다. 오늘날 많은 공주사람들은 세종시가 생겨서 우리는 덩달아 찌그러진 깡통과 같은 도시가 되었다고 상대적 빈곤감을 호소하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나의 생각은 영판 다르다. 지금이야말로 공주가 다시금 일어나 꽃을 피울 때라고 생각한다.

도시는 사람만 북적대야만 좋은 것도 아니고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다. 그 도시가 지닌 특성을 제대로 발휘할 때 그 도시가 사는 것이다. 몇 차례 세종시에 있는 학교로 문학강연을 나간 적이 있다.

그 때 만난 어떤 교장선생님은 자기네 도시 옆에 공주시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지금 건설 중인 세종시는 시멘트 숲이라서 눈길 하나 둘 곳이 없고 쉴만한 공간, 즐길만한 장소, 여유로운 풍광 하나도 없다고 그런다. 문화가 있느냐 역사가 있느냐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공주 쪽으로 발길이 흘러간다고 그런다.

바로 이 점을 우리 공주 사람들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평소 내가 자주 했던 말 그대로 공주의 아름다움과 좋은 점을 공주 사람들만 모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강남지역의 그 조금은 낡고 때 묻은 것들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오래된 골목길이며 낡은 지붕이 이마를 모은 마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것들만 잘 보전하고 가꾸고 다듬어 포장만 해도 훌륭한 상품이 되고도 남는다. 문제는 포장이고 세련이다. 이런 점은 전문가의 도움을 청할 필요도 있겠다.

‘크고, 높게, 빠르게’의 시대는 지났다. 그 병폐로 우리는 지금 얼마나 힘들어 하고 있는가. 이제는 조금쯤 ‘작게, 낮게, 느리게’가 대세인 시대가 되고 있다. 제발 공주 분들이 이 점을 서둘러 알아주셨으면 한다.

공주의 낡은 길과 후미진 골목이 공주의 재산이다. 그 길에 아무렇게나 나서 자라는 풀꽃도 재산이고 곰팡내까지도 그리움이고 끝내는 돌아가 안길 고향 같은 것이고 어머니의 가슴 같은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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