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파 이은구씨

공주에는 금강과 함께 도공들의 피가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3대 도자기는 전남 강진의 청자, 경기도 이천의 백자, 그리고 충남 공주의 철화분청사기이다.

이렇듯 공주의 도자기는 그 명성이 자자했으며, 그 잘난(?) 일본이 도자기의 시조인 ‘도조(匋祖)’로 추앙하고 있는 사람도 바로 공주사람 이삼평이었다. 이삼평은 임진왜란 때 끌려가 일본 아리타 지역을 일본도자기의 원조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삼평의 피를 이어받아 분청사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는 공주출신의 도예가가 있으니 바로 청파 이은구씨다. 이은구씨는 경기도 이천사기막골에서 청파요를 운영하고 있다.

이은구씨는 고향인 공주에서보다 한국에서, 한국보다 외국에서 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공주시 금흥동에서 태어나 정안면 평정리에서 자란 이씨는 석송초등학교에 다닐 당시 동학사로 소풍을 갔다가 학봉리에서 깨어진 분청사기조각무덤을 봤고, “일본 사람들이 이 조각들을 많이 가져갔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후 서울의 박물관에서 동학사에서 보았던 도자기의 완성품인 분청사기를 만나게 된 이은구씨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그는 “지금도 이러한 만들 수 있느냐?”고 박물관 관계자에게 물었고, 박물관 관계자는 “지금은 이러한 도자기를 만들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이은구씨는 ”예전에는 만들었는데, 지금은 왜 만들 수 없을까?“하는 안타까움을 늘 가슴에 지니게 된다. 그러던 그가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 1학년을 마칠 무렵 경기도 광주 도요지에 놀러 갔다가 도예가 조동헌씨를 만나게 됐고,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그의 제자를 자청했다.

▲청파 이은구씨가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입문을 반대했던 스승은 그에게 6개월간 장작패기, 흙 반죽하기 등 어려운 일만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일을 즐겼다. “열정이 있는 한 이러한 작업은 ‘노동’이 아닌, ‘창작활동’이라는 것. 당시 조동헌씨는 우리나라에서 분청사기를 하는 몇 안 되는 도예가였다.

조동헌씨는 일본인들의 다도(茶道)에 사용하는 다완(茶碗)을 주로 만들었고, 이은구씨도 다기종류를 많이 만들었다.

이은구씨의 작품의 진가는 국내보다 일본에서 먼저 알아봤다. 일본 도자기애호가들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 인기가 높았다.

어느 날 일본 다나까 수상의 친구가 이은구씨의 다완을 사서 다나까 수상에게 선물을 하게 된다. 이 다완을 선물 받은 다나까 수상은 이은구씨의 작품에 매료돼 이은구씨를 일본으로 초청했고, 이씨는 이에 다완 600점을 제작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다나까 수상과 함께 일주일동안 다완박스에 서명을 했다.

 

▲ 청파 이은구씨(사진 왼쪽)가 일본 다나까 수상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서명된 작품은 다나까 수상의 의전선물로 사용됐으며, 이로 인해 그는 일본에서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몇 년 후 고 이병철 회장도 그에게 다완을 주문했다.

▲이천 청파요에 전시된 이은구씨의 작품

이씨가 개최한 전시회는 1981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유해강‧이은구 2인전을 비롯해 큰 것만 30여 차례.

1978년 일본 RKB, 1979년 NHK등 방송에서 그를 다룬 방송을 일본전역에 내보낼 정도로 인기를 얻은 이씨는 1981년 일본 아리타 도자기축제에 참석하게 되는데 여기서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된다.
당시 아리타 도자기축제는 1981년 당시에 이미 60회를 맞이하고 있었던 것. 공주사람으로서 이천 문화원장을 12년간이나 역임한 이은구씨는 그 해 가을 제1회 이천도자기 축제를 열었고,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를 개최한다.

이은구씨의 작품은 국보급 대우를 받고 있다. 1994년 4월 김영삼 대통령의 방일(訪日) 시 일본 천황에게 준 의전선물로 이은구씨의 도자기 작품이 선정됐다. 이 도자기 작품에는 당초문양이 담겨있는데 여기에는 깊은 속내가 있다.

2001년 열린 세계도자기 엑스포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이은구씨의 작품에 휘호를 하고 있다.
‘당초문양’은 고구려벽화에 있는 문양으로 전쟁 시에는 나오지 않고, 평화로울 때만 나오는 상상의 풀이다. 침략근성이 있는 일본을 향해 ‘정신을 차리라’는 의미를 도자기에 담은 것. 그는 “자기의 도자기에 이러한 뜻이 담겨있다”는 이야기를 일본 언론에 밝혔다고 한다. 공주사람의 기백이 엿보인다.


같은 해 김영삼 대통령과 이붕 총리의 한중 정상 회담 시 의전선물로 선정된 도자기 작품 8점도 모두 이은구씨 작품이다.

이은구씨는 이때 중국에 줄 의전선물로 십장생을 권했다. 이는 중국과 한국은 오랜 세월을 함께 해 왔던 나라인 만큼 앞으로 오래도록 서로 잘 지내보자는 의미를 담았기 때문이다.

김영삼 대통령시절 러시아 방문 시 옐친 대통령에게, 방미 시 클린턴 대통령에게, 김종필 국무총리 방불 시 쟈크 시라크 대통령에게, 김대중 대통령시절 미국, 캐나다, 러시아 국빈방문 시에도 이은구씨의 작품이 의전선물로 선정됐다.

 

▲이은구씨가 1995년 김영삼 대통령 방미 당시 미국 클린턴 대통령에게 의전선물로 제공했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이은구씨는 잠시 영명고등학교에 다녔던 인연으로 1984년 서울 세종문화회관 전시실에서 영명고 현광국 미술교사와 영명고등학교를 위한 전시회를 개최, 1억 5,000만원을 전액 희사했다. 이은구씨는 지난 2006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했다.

그는 앞으로 제자들을 많이 키우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고향인 공주로의 귀향을 꿈꾸고 있다. 그렇게 되면 개인적으로는 금의환향(錦衣還鄕)이요, 공주로서는 보배를 얻게 되는 것. 그의 꿈이 조속히 실현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그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한다.

 

 

 

 

 

 

 

▲고 김수환 추기경이 휘호한 도자기. 이은구씨는 명동성당 부지마련을 위해 전시회를 개최, 전액 희사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친필 휘호한 작품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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