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 마지를 마치고 사곡면으로 출발하여 사곡면민들이 세워 놓은 비석 군에 다다르니 박인묵 거사님의 비석이 조촐하게 서 있습니다.

‘처사 박공 인묵 자선 기념비’ 라는 이름과 좌우로 작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오래 되어서 잘 몰라보겠는 글씨도 있지만, 대략 풀이하기로는 부를 이루신 후에 쌓고 흩을 때를 알아서 베푸신 은택이 행려자와 곤궁한 이들에게까지 널리 전해졌으며 자비로서 지은 덕화의 향기를 끝까지 잊지 않고 충심을 다하여 두터운 공을 기리고자 주민들이 함께 세운다는 내용인가 합니다.

호계초등학교 옆에 있는 님이 사셨던 집 자리를 찾아가 대문에 달린 님의 아드님 이름을 확인하고, 이웃에 사시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 넉넉하였던 인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촐한 비석의 이름 앞에 처사處士라는 말을 사용한 것이나, 옆면과 뒷면에 님의 행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기술한 것은 없어도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님의 공덕에 감사하고 찬탄하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사곡면 고당리에 있던 외가를 가거나, 운암리에 있는 마곡사를 수도 없이 드나들면서도 그와 같은 비석 군을 스쳐 지나가기만 하였다가 오늘에서야 그 비석들에 새겨진 인물들과 비석을 세우게 된 내력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알게 되니 만시지탄의 감은 있으나, 그 자선의 공덕을 입은 이들 못지않은 감동과 찬탄의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불교를 믿는 재가 불자를 ‘처사’ 혹은 ‘거사’라 하거니와 처사 박인묵님이 보이고 행하신 보시의 공덕이야말로 금강경에 나오는 무주상보시의 전형이라 할 것이요, ‘주는 이와 받는 이 그리고 주고받는 물건 등 세 가지가 모두 공적한데 나온 것이라야 진실로 공덕이 있다’하시는 삼륜공적의 표상이라 하겠습니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사곡면을 떠나 서울에 살고, 사곡면에는 아직도 적지 않은 전답이 남아서
면민들이 나누어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으니 훗날 기회가 된다면 그 후손들 가운데 한분이라도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봅니다.

요즘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프랑스어로 ‘귀족성은 의무를 갖는다’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를 행하시어 어렵고 곤고하던 일제 시대에 희망의 등불이 되신 님들의 공적은 아무리 찬탄한들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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