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을 두어 달 앞두고 회의가 있어 모임에 가면서 유치원에 들렀습니다. 하원시간이라 아가들은 거의 집으로 가고, 몇명 남은 아가들이 교실에서 선생님의 지도로 공책을 펴놓고 글씨를 쓰고 있습니다.

아가들에게 말을 걸어 볼 양으로 우선 인사를 하고나서 “얘들아 스님이 잘생겼다고 생각하니?” 하고 물으니 대답이 시원찮습니다. “그럼 스님이 못난이라고 생각하니?” 하고 물어도 금방 대답이 안 나옵니다.

“그럼 스님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고 물으니 그중에 한 아가가 “스님은 스님 같아요.” 합니다.

“잘생겼냐?”고 묻는 내가 참 어리석어서 아가들에게는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스님은 스님이니까 스님 같다” 하는 답이 나올 줄 꿈에도 몰랐던 나는 아가들에게 큰 가르침을 받은 셈입니다.

나는 누가 나를 어떻게 보아주는가 굳이 마음쓰지 않고 그 직분에 맞게 열심히 살면 그것이 나의 본분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스님은 스님답게,,아가는 아가답게, 선생님은 선생님답게, 엄마는 엄마답게, 아빠는 아빠답게 살아가는 것이 제일인 것을 5세 어린 아가로부터 듣고 비로소 깨달으니 앞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려가는 때에는 태어나면서부터 초 견성을 하고 나온다 하던 옛 스님들의 말씀이 틀림이 없습니다.

어린 조카 단종임금을 폐위시키고, 숙부 수양이 왕에 오를 때 김종서 황보인, 정분 등 삼정승과 성삼문 이개 박팽년 등 무수한 충신들이 불충에 원통해하며 피 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그중에 우의정을 지내신 정분이라는 대감은 내게는 속가 18대 조부가 되시는 분인데 이 어른이 지으신 시에 8괴시라는 것이 전합니다.

아괴재하괴재신

我愧在何愧在身


앙괴우선부괴인

仰愧于先附愧人


차괴지중유대괴

此愧之中有大愧


충괴오군효괴친

忠愧吾君孝愧親


나의 부끄러움 어디에 있나
이 몸 있음이 곧 부끄러움 일세

우러러서는 선대에 부끄럽고
내려(둘러)보면 사람들에 부끄럽네.

이런 부끄러움 가운데에
크나큰 부끄러움 또 있으니

임금에 충성하지 못한 부끄러움과
양친께 효도 다하지 못한 부끄러움일세.

 

시에 여덟 개의 괴愧자가 들었다 해서 ‘팔괴시’라 하는데 네 구절의 칠언시속에 자식의 부모에 대한 도리가 무엇이며, 임금과 나라에 대하여 충성해야하는 신하와 백성의 도리가 무엇인지 완곡한 표현을 써서 적어 놓으신 시입니다.

세상 천지에 이 몸이 머무르고 있음이 부끄럽지 아니한가 하는 말씀에 이르러서는 여리박빙하는 벼슬길에 나아간 사람으로 참으로 얼마나 자신을 돌아보며 스스로 경책하고 연마하며 조신하고 사셨는지 그 일상을 엿보게 하는 글귀입니다.

살아생전에는 충과 불충 사이에 고초를 겪으셨으나, 지금은 공주시 사곡면 회학리 사당에 모셔지고, 돌아가신 훗날 ‘충장공忠壯公’이라는 시호를 받으셨으며, 생을 다하시면서 후손들에게는 “벼슬길에 나서지 말라”고 당부하셨다고 어릴 적에 들었습니다.

 

각설하고, 나도 우리 아가들 눈에 비친 것처럼 스님은 잘 생겼네, 못 생겼네 논하지 말고 스님은 꼭 스님 같아야 한다 하고 경책 받았으니 우리 아가들을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면 아가들을 가르치려는 마음보다는 아가들에게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스승님” 하고 큰절을 올리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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