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만나 즐거운 시간을 내내 가졌다.

점심은 보리굴비를 시켰는데, 품격있는 접시에 가로로 놓여있는 모습이 참 먹음직스러웠다. 맛을 보니 짭쪼름하면서 아주 담백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밥 두 그릇은 너끈히 비웠을 것이다. ​

굴비는 조기로 만든다. 조기의 아가미를 열고 조름(물고기 아가미 안에 있는 빗살 모양의 숨 쉬는 기관)을 떼어낸 후 깨끗이 씻고 건조 시킨 후 소금을 아가미에 가득 채우고, 몸 전체에 소금을 뿌린 후 항아리에 담아 이삼일쯤 절인다.

절인 조기를 꺼내서 삼베 보자기에 싸서 하루쯤 꾹 눌러놓았다가 채반에 고루 펴서 널어 말린다.

냉수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 얹은 밥숟가락 모습, 출처: 네이버 블로그 보리굴비 맛집 시골여행
냉수에 밥을 말아 보리굴비 얹은 밥숟가락 모습, 출처: 네이버 블로그 보리굴비 맛집 시골여행

중학교 때 사회시간에 ‘파시(波市)’라는 말을 배웠다. 말 그대로‘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을 말한다.

예전에 전라남도 영광군 앞바다의 칠산탄(七山灘)과 연평도(延坪島) 부근은 우리나라 조기의 주 어장이었다. 조기 잡는 시기가 되면 파시가 그곳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때 어린 학생들의 일손도 필요한 때이므로 학교 나오지 않자, 파시가 열리는 곳에 임시 학교를 만들고, 저녁에 공부를 가르쳤다고 한다. 학생들을 찾아 학교도 옮겨간 것이다.

이곳에서 집히는 조기는 크게 두 종류로 분류된다. 참조기와 수조기다. 참조기는 보통 ‘황석어(黃石魚)’라 불리며 몸빛이 회색을 띤 누런색으로 주둥이가 불그스레하다. 수조기는‘부세’라고 부르며 참조기보다 몸이 홀쭉하다.

3월 중순이 넘어 이맘때쯤이면 영광 법성포 칠산 앞바다를 지나는 참조기가 많이 잡히는데 이 조기로 만든 굴비를‘영광굴비’라고 하며 굴비 중 으뜸으로 친다.

제사상에서 조기는 어동육서(魚東肉西)의 첫 번째에 위치한다. 제사 후 하루 이틀 지나면 어머니께서 양념하여 쪄낸 조기가 밥상 위에 올라왔다.

조기는 가시가 많은 물고기다. 어머니는 늘 가시가 많아 목에 걸린다며 아버지만 드시게 했다. 한번은 살점을 떠내 먹어보니 약간 짜면서 아주 맛이 좋았다. 조기는 귀해서 여느 때는 먹을 수 없었고, 제사 끝에나 먹을 수 있어서 어른들만 잡수시게 했던 것 같다.

굴비(屈非)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며칠 전 끝난 ‘고려 거란전쟁’에 등장하는 공주 절도사 김은부와 관련이 있다.

김은부는 안산김씨이며, 그의 부인은 인천이씨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딸 셋이 모두 현종의 비가 되었다. 첫째는 원성왕후, 둘째는 원혜왕후, 셋째는 원평왕후다.

근친혼이 성행했던 고려 왕실의 풍습 때문에 현종의 아들인 덕종과 문종이 김은부의 손자이자 손녀사위이기도 했다.

그의 손자 덕종이 손자 문종의 친누나인 효사왕후와 결혼하고, 문종이 덕종의 친누나인 인평왕후와 결혼했기 때문이다.

이자겸과의 인연은 김은부가 이자겸의 증조부인‘이한’의 누나와 결혼했고, 아들 김충찬의 처조카가 이자겸의 조부인 이자연이다. 왕실에서의 외척은 이렇게 생겨났다.

짚으로 엮은 굴비 모습, 출처: 한국관광공사
짚으로 엮은 굴비 모습, 출처: 한국관광공사

인주이씨 이자겸은 고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이다. 임금의 외척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다.

그러나 1126년 척준경과 함께 왕위를 찬탈하려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이자겸의 난’이다. 난이 평정되고 정주(지금의 영광 법성포)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해풍에 말린 조기를 먹어보고 그 맛이 아주 일품인지라 인종 임금에게 진상하였다. 그는 말린 조기를 보내며‘자기 뜻을 절대 굽히지 않겠다.’라는 의미로 ‘굴비(屈非)’라는 이름을 붙여 보냈다. 굴비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그러나 이자겸은 제 뜻을 펴보기는커녕 그곳에서 사망했다.

굴비의 유래가 이렇게 생겨나서 그런지 우리 속담에‘굴비 엮듯이 한다.’라는 말이 있다. 줄줄이 엮어 나온다는 말인데, 긍정적인 상황보다는 부정적인 상황에 쓰일 때가 많다.

조기를 사나흘 소금에 절여 바싹 말린 후 보리 뒤주 속에 넣어 보관하였다가 꼬리 부분을 잡고 찢으면 북어포처럼 일어나는 데 이것을‘보리굴비’라고 한다.

봄을 맞아 나른하고 피곤한 요즘은 입맛도 별로 없을 때다. 이런 때 냉수에 밥을 말고 보리 굴비를 찢어서 밥숟가락에 올려 먹으면 그 기막힌 맛이 몸의 활력을 넘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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