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짝으로 불리던 트로트 열풍이 대단하다. 말 그대로 트로트 전성시대다. 5년 전 미스 트로트 대회에서는 송가인이 큰 두각을 나타냈고, 이후 이루어진 미스터 트로트대회에서는 임영웅이 뭇사람들의 감정을 사로잡았다.

70~80년대 이후 포크송, 발라드풍에 밀리던 트로트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TV 프로그램마다 트로트 경연대회가 한창이다. 요즘은 ‘현역 가왕’ 프로그램에서 트로트 일인자를 뽑았는데 고등학생인 전유진이 1위를 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렇게 트로트 열풍이 일자 일본에서도 엔카의 열풍이 다시 이는 것 같다. 조만간 한일(韓日)트로트 대전이 열린다고 하니 볼만한 풍경이 펼쳐질 것 같다.

현역가왕 프로그램 출연자, 출처 : 동화나라 이야기
현역가왕 프로그램 출연자, 출처 : 동화나라 이야기

트로트 노래는 대부분 음이‘쿵작쿵작 쿵자작 쿵작’으로 시작하고 끝이 났다. 그래서 사람이 이 음을 “뽕짝뽕짝 뽕자작 뽕짝”으로 부르면서 일명‘뽕짝’이라고 비하하게 됐다고 한다.

트로트는 우리나라의 국악, 전통민요에 이어 전통 가요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 시작은 일본의 엔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우리 생활과 함께하고 있다.

트로트는 미국에서 재즈와 비슷한 춤곡인 ‘폭스트롯(foxtrot)’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우리 대중가요에서 트로트 양식과 폭스트롯은 단순한 2박자라는 공통점을 빼고는 관련성이 없다.

우리 민요에는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는 한(恨)이 서려 있다. 전통 트로트도 마찬가지다. 일제강점기, 6.25 등을 거치면서 답답하고 서러운 마음을 노래에 담았다.

예전에는 주로 사랑과 이별, 고향에 대한 그리움, 부모님 등의 주제가 많았다. 그러나 마냥 슬프고 체념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주는 곡도 많았다.

트로트는 구수한 맛이다. 트로트에 랩(Lap)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랩이 들어가면 우리의 정서에 맞지 않는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따라 할 수도 없다.

1930~1940년대 격동의 시기에 백년설, 고복수, 이난영, 남인수 등 이분들이 노래를 주도했고 주옥같은 노래를 불렀다.

백년설의 ‘나그네의 설움’,‘번지 없는 주막’, 고복수의 ‘타향살이’,‘짝사랑’,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 남인수의 ‘가거라 삼팔선아’,‘이별의 부산 정거장’은 명곡 중의 명곡이었다.

어릴 적 신작로를 따라 ‘대폿집’들이 많았다. 그곳을 지나가려면 어른들이 둥근 탁자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드시면서 쇠젓가락으로 장단을 맞추며 이런 노래들을 참 구성지게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1950년 이후 박재홍, 현인, 배호 씨 등의 ‘울고 넘는 박달재’,‘유정천리’, ‘신라의 달밤’, ‘돌아가는 삼각지’ 등 주옥같은 노래로 트로트의 전성기 맞이해 트로트가 음악의 한 장르로 자리를 잡았다.

나도 대학 다닐 때 친구, 선배들과 ‘나그네’라는 술집 겸 음식점에서 막걸리를 먹으면 젓가락 장단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는 통기타를 겨드랑이에 멋지게 끼고 노래 부르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악기를 다룰지 모르는 나는 젓가락으로 장단 겨우 맞추면 노래를 불렀다.

그 후 이미자, 하춘화, 나훈아, 남진, 문주란, 현철, 주현미, 장윤정 씨 등이 트로트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이미자씨는 우리 가요계에 살아있는 전설로 ‘엘레지의 여왕’이라 불리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파월장병이었던 남진이 그곳에서 노래를 만들어 귀국 후 부른 ‘임과 함께’는 국민의 애창곡이었다.

트로트가 한창 전성기를 맞았다. 요즘은 K-트로트로 불리며, 한국 대중가요의 한 장르를 맡고 있다.

트로트가 이렇게 재도약하는 이유는 어린 학생부터 중년까지 가수의 층이 넓어지고, 옛날처럼 애환을 담은 노래를 떠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정서를 자극하고 희망과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이 정서가 바뀌어 트로트 가사에 많이 빠져든다고 한다. 농어촌에서 일할 때도 트로트 메들리를 틀어놓고 일하고, 댄스를 배울 때도 그렇고, 심지어는 북한에서도 남한의 트로트를 선호한다고 한다. 이는 그 가사와 리듬을 통해 아련한 감성이 살아나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지금도 그 풍속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트로트가 있어 생활이 즐겁다. 우리 귀에 익은 트로트는 삶의 활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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