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시인님! 안녕하세요? 저는 윤 시인님보다는 후대에 태어났지만, 윤 시인님처럼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신 고마운 조상님들 덕분에 윤 시인님보다 훨씬 더 오랜 세월을 독립한 대한민국에 사는 초로(初老)의 여성입니다.

저는 10대 때부터 윤 시인님의 시가 좋았어요. 서시(序詩) 앞 구절인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를 국어 교과서 맨 앞장에 써 놓고 윤 시인님의 맑고 순수한 영혼을 짓밟은 시대의 아픔에 저 역시 분노하고 가슴 한 편이 시렸어요.

세월이 흘러 제가 자식을 낳고 보니 윤 시인님의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반듯하고 강직한 외모처럼 성격도, 인품도 바르고 올곧았다는 윤 시인님을 적국(敵國)의 한복판에서 잃고 어떻게 사셨을까 생각하니 무척 먹먹하더군요.

그리고 지금껏 살아보니 아무리 달나라 별나라를 가는 세상이라지만, 막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보다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경우가 의외로 많더군요. 특히 엄청난 시련과 슬픔 앞에서는 더욱 무력할 뿐이었습니다.

윤 시인님! 저는 약 20여 년 전 윤 시인님의 생가(生家)에 갔었어요. 백두산과 그 인근인 연변 등 조선족들이 많이 사는 지역과 윤 시인님 生家, 윤 시인님이 다녔던 대성중학교도 주요 관광 코스였어요.

해란강은 이름처럼 아름답지 않았고, 두만강도 유명한 대중가요처럼 푸르기는커녕 흙탕물이라서 실망감도 컸어요. 그래도 감개무량했어요. 유신 시절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제게 중국은 영원히 못 가 볼 금단의 땅일 줄 알았으니까요.

윤 시인님의 생가 앞에 쓰인 서시를 보면서 그만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평범한 시어로 썼음에도 그 안에 용솟음치는 감정들이 떠올라서 갑자기 울컥했어요.

학창 시절에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는 ‘참회록’이라는 시를 배우면서 ‘윤 시인님은 그렇게 참회할 일도 없는데, 정작 그렇게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왜?’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어요.

아울러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를 읽으면서 정작 그렇게 살지 못한 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과 여러 가지 회한, 삶의 덧없음이 겹쳐오면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그때 엄마의 돌발 행동에 놀란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엄마 왜 울어? 윤동주 시인이 엄마 친척이야?”라는 말에 주위에 가득했던 한국인들 사이에선 폭소가 터졌답니다.

그때 “그래, 어쩌면 당사자에겐 엄청난 일이라서 땅이든, 하늘이든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더라도 타인에게는 그저 그런 일상이거나, 심지어 재미있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섬광처럼 스쳐 순식간에 눈물이 멈췄어요.

딱히 신봉하는 종교가 없는 저는 내세나, 부활, 윤회 같은 거는 안 믿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게 내 뜻이나 의지가 아니었듯, 만일 사후(死後)에 다시 태어나야 한다면, 꼭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으뜸은 윤 시인님이고, 다음엔 악성(樂聖) 베토벤입니다.

윤 시인님께는 “그 어려운 시절에 붓을 꺾지 않고 지조 있게 저항시를 남겨줘서 고맙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덧붙여 “그 꽃다운 나이에 의문사한 시인님의 맑은 영혼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후손들도 많고, 심지어 일본인 중에도 윤 시인님을 추모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하니 조금이라도 위로받고 편히 쉬시길 바란다”라고….

저는 윤 시인님이 다녔던 연세대학교에 꼭 가고 싶었어요. 시인님은 연희전문학교를 다녔고, 교명은 바뀌었지만, 뿌리는 같으니까요.

윤 시인님! 엊그제 연세대 다니는 조카가 교정에 있는 윤 시인님의 기념관 앞에서 찍은 여러 장의 사진을 보내줬어요. 비록 저는 못 갔지만, 그래도 윤 시인님의 시와 고풍스러운 연세대 풍경을 좋아하는 고모를 기억하고 그 넓은 교정에서 일부러 찾아가서 사진으로 보내준 조카의 마음이 기특하고 뿌듯했답니다.

윤 시인님 후배인 연세대 출신 작가와 시인이 많음에도 교정에 윤 시인님의 시비(詩碑)와 기념관이 있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윤동주 거리도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 일인지요.

이제 부치지 못할 편지를 갈무리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목숨 걸고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 나라가 아니랍니다. 어느 하늘 어떤 별에 계신 지는 모르나 만일 영혼이 있다면 행복하세요. 그리고 착한 여자 만나서 결혼도 하시고 또 다른 삶도 살아보세요.

저는 이 나이에도 여전히 시, 문학, 소설 이런 단어만 들어도 설레고 좋습니다. 윤 시인님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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