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에 경기 남부지역에 까마귀가 떼로 출몰하여, 차는 물론 지나가는 사람 옷에도 분비물이 떨어져 매우 불쾌하고, 울음소리 때문에 기분이 나쁘다는 지역주민의 호소가 있었다.

까마귀는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다. 새 중에서 아주 지능이 높을 새로 분류된다.

사람의 눈을 피해 음식물 탈취는 물론 도구를 사용하여 먹이를 취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건망증이 심한 사람에게 ‘저 사람 까마귀 고기 먹었나?’라고 하지만 실제로 까마귀는 똑똑한 새다. 한국에서는 흉조(凶鳥)로, 중국에서는 길조(吉鳥)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를 흉조로 부른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흉조로 분류한 뒤로 확실히 흉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까마귀는 큰부리까마귀로 텃새이며 연중 도심에서 볼 수 있다.

갈까마귀나 떼까마귀는 철새로 보통 시베리아에서 날라온다. 주로 겨울철에 농촌에서 많이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도심지역에도 떼로 출몰하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도심속의 까마귀떼, 출처;다음카페 버드맨의 사랑
도심속의 까마귀떼, 출처;다음카페 버드맨의 사랑

우리 속담에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하필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졌으니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말은 원래 불가(佛家)에서 나온 말이다. ‘오비이락(烏飛梨落) 파사두(破蛇頭)’ 까마귀가 날자 배가 떨어지고, 떨어진 배가 뱀의 머리를 깼다. 멧돼지로 환생한 뱀이 지나가다 돌을 굴려 쉬고 있는 꿩을 죽였다. 꿩이 사냥꾼으로 태어나 멧돼지를 죽이려 하자 신선이 뱀, 멧돼지, 꿩의 연(緣)을 설명해주고 그 원한을 풀게 했다는 이야기다.

중국 양나라 때 천태지자대사의 게송(偈頌)으로 원래의 뜻은 우연히 일어나 의도적으로 행동하지 않은 행위라 하더라도 업보(業報)는 점점 두터워진다는 의미이다.

지금은‘오비이락(烏飛梨落)’만 취해 사용하고 있지만, 인간이 업을 짓고 업보를 쌓아가는 과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해원석결(解寃釋結)이라는 유명한 법문에 나오는 말이다.

까마귀는 사회성이 좋은 동물로 동료가 죽으면 모여서 우는 습성이 있는데 이를 ‘까마귀의 장례식’이라 한다. 또 맹금류가 다가오면 떼로 몰려들어 자기 영역에서 맹금류를 쫓아낸다.

반포지효(反哺之孝)라는 말이 있다. 새끼가 커서 늙은 부모를 섬긴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새 중에 자식이 부모를 먹여 살리는 건 까마귀뿐이라고 하여 '효(孝)'의 대표적 상징이기도 했다.

실제 까마귀들이 무리에서 경험 많은 연장자를 우대해 주지만, 사실은 털이 부풀어 어미보다 커 보이는 새끼에게 먹이를 먹이는 모습을 착각한 것이라고 한다.

고구려는 다리가 셋 달린 삼족오를 태양의 상징이라 하며 숭배했는데 그 새가 바로 까마귀다. 둥근 태양 속의 삼족오 모습은 고구려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신라 소지왕 때 사금갑(射琴匣) 설화 속에 까마귀가 나온다. 태봉을 건국한 궁예에게 까마귀가 왕(王)자가 쓰인 종이를 날아가며 떨궈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지금도 매년 칠월칠석에 까마귀와 까치가 모두 사라지는데 그 이유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烏鵲橋)를 만들기 위해 모두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반면 까치는 우리나라에서 길조로 인식되고 있다. 어릴 적 감나무 위에 앉은 까치가 아침부터 울어대면 어머니는 “손님이 오려나 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손님이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 어린아이 이가 빠지면“까치야, 까치야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라고 하고 지붕 위로 높이 던졌다. 그래서 까치를 길조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까치는 까마귀과에 속하는 새로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 인간이 사는 어느 곳에서나 잘 산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떼를 지어 살며 자기 영역을 보호한다.

까마귀와는 달리 폴짝폴짝 뛰면서 이동을 한다. 민첩한 행동은 자신보다 큰 새와 싸움에서 지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까치가 온순하고 인간에게 이로운 새로 알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잡식성으로 못 먹는 것이 없다.

심지어 어린 새끼토끼, 병아리, 꺼병이, 개구리 등을 잡아먹기도 한다. 과수원의 가장 큰 애물단지가 까치다. 그것도 잘 익은 과일만 파먹는 고약한 습성을 가지고 있어 농가에서는 골머리를 앓는다.

우리 동요에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여기서 까치는 작음을 나타내는 ‘아치’인데 그것을 부르기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 ‘까치’로 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작은 설을 아치 설이라고 했다. 까치는 우리 동요에 나올 정도로 늘 우리 주변에서 살아온 새다.

가을철 농촌에서 감을 딸 때 맨 꼭대기에 몇 개의 감을 남겨 놓았다. 이를 까치밥이라고 했는데 우리 조상들의 동물에 대한 배려심을 엿볼 수 있다.

겨울철 감나무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감을 쪼아는 먹는 까치의 모습은 모두 사진 속에 담고 싶은 풍경이다.

까치밥과 까치,   출처; 다음 카페 남한산성자연사랑
까치밥과 까치, 출처; 다음 카페 남한산성자연사랑

까마귀와 까치는 오랜 세월 사람들 주변에서 같이 살아왔다. 사람들의 신앙 속에서, 설화 속에서, 민화(民畵) 속에서 늘 함께했다.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흉하다고 싫어했고, 까치의 울음소리는 손님이 온다고 반겼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나라 국조(國鳥)를 까치라고 하나, 아직 우리나라는 국조를 지정한 적이 없다.

까치가 늘 우리 주변에 있으므로 국조로 생각하는 것 같다. 까마귀나 까치를 길조나 흉조로 구분하지 말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의 일원으로 여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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