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이맘때쯤이면 추위로 손등이 터지고 찬바람에 얼굴이 얼어 붉게 변했다. 그래도 딱지치기, 썰매 타기, 구슬치기, 연날리기 등은 매일 매일 신났다. 손과 발이 동상이 걸려 밤에 잘 때 얼얼하고 가려워 울상이면, 어머니가 콩 자루 속에 손발을 넣고 주무르게 했다. 어머니는 비방이라며 먹을 갈아 먹물에 실을 적시고 동상 부위를 감아주셨다.

날씨가 얼마나 춥던지 아침밥을 먹기 위해 세수를 하고 방으로 뛰어 들어가며 문고리를 잡으면,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었다. 부엌에서 밥상을 들면 김치를 담은 보시기들이 상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였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어머니는 밥만 지으신 게 아니라 뜨끈한 눌은밥을 많이 끓여 식구마다 한 대접씩 퍼 주셨다.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길게 매달렸다. 초가지붕이나 함석지붕 위에 있던 눈이 녹으면서 밤에 고드름으로 변했다. 그 고드름을 따서 으적으적 깨 먹기도 하고, 빨아 먹기도 했다.

때로는 긴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했는데 둘이 부딪히는 순간 모두 부러져 땅으로 떨어졌다. 손이 시린 것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한겨울 눈사람, 출처 : 이양덕의 시문학
한겨울 눈사람, 출처 : 이양덕의 시문학

 

이렇게 추울 때가 바로 소한(小寒), 대한(大寒)이다. 옷은 입었다고 하나 지금처럼 따뜻한 패딩이 아니고 털실로 짠 옷을 입었다.

화학사(化學絲)로 짠 옷이라 추위를 막아주지 못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요즘 추위는 추위도 아니다. 눈도 엄청 많이 내려 뒷산 소나무 가지가 ‘쩌엉쩌엉’ 소리를 내며 찢어질 정도였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갔다가 얼어 죽었다.’라는 속담이 있다. 소한은 양력 1월 5.6일 경이다. 대한은 그보다 보름 늦은 1월 20일이다. 소한이 23번째 절기, 대한이 24번째로 마지막 절기다.

입동 때부터 김장하고, 땔감을 쌓아놓고, 따뜻한 옷을 마련하는 등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이유가 바로 이 소한, 대한 추위를 잘 넘기기 위해서다.

지금은 기후가 변하여 삼한사온(三寒四溫)이라는 말을 쓰지 않지만, 소한 때부터 삼한사온 시작되었다.

그런데 대한이 더 추운데 왜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을까? 막연히 소한이 더 추운 절기인가보다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표현상으로 대한이 훨씬 더 추워야 한다. 소한이 대한보다 더 추운 이유는 사실 절기가 우리나라 기후에 맞춰진 것이 아니라 중국의 기후에 맞춰져 만들었기 때문이다.

절기는 중국 주(周)나라 때 황하(黃河) 유역의 화북지방 기후 특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위치상 우리나라 기후와는 차이가 있다.

화북지방의 대한 추위는 매우 혹독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소한 때가 더 춥다. 물론 어느 해는 대한 때가 더 추운 적도 있다.

또 이 무렵 속담으로 ‘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은 없다.’,‘춥지 않은 소한 없고, 포근하지 않은 대한 없다.’라는 말도 소한이 대한보다 훨씬 더 춥다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소한, 대한 때 동네 형들을 따라다니며 산토끼와 꿩을 잡는 일에 몰두했다. 봄, 여름, 가을에는 토끼나 꿩을 잡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 토끼와 꿩을 잡은 이유는 날씨가 춥고 눈이 많이 내려 먹이를 찾아 인가 근처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형들은 꿩을 잡기 위해 콩에 구멍을 내고 ‘싸이나’를 조금 넣고 촛농으로 땜을 했다. 그리고 밭에 뿌려 꿩이 먹기를 기다렸다 잡았다.

토끼는 지나다니는 길을 나뭇가지로 막고 구멍을 조금 내고 거기에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어 잡았다. 그러나 생각만큼 꿩이나 토끼를 잡지 못했다, 어쩌다 잡힌 꿩고기나 토끼고기를 먹을 때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밥상머리에서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토끼는 한쪽 눈만 있나 보다, 그러니 아무개한테 잡혔지”라고 하셨지만, 형은 어깨가 많이 올라가 있었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래야 농사짓는데 병충해도 적고, 철새도 많이 날아오고, 두툼한 옷도 잘 팔리고, 난로도 잘 팔린다.

가게에서 둥근 통에 쪄내는 호빵 역시 추워야 제맛이 난다. 이런 소한과 대한 추위를 이겨내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봄은 소한, 대한을 타고 아주 천천히 오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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